엄마 사장 오늘 기록
불안하다. 지금도 불안하다
뱃속에 험한 것들이 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멘붕이었다. 1월 31일 수술, 2월 7일 진단 이후 2월은 거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불안에 시달렸다.
덕분에 불면증은 사라졌다. 잠이라도 잘 자서 험한 것들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딸을 부여잡고 일찍 잠을 청했다. 매일 잘 자진 못했지만 이전보다는 더 잘 자면서 몸이 개운해지는 효과도 누렸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은 요원했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나는 그냥 나일롱이다. 소위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며 형식주의와 믿음의 강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늘 초연한 자세로 종교를 마주해야 광신도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광신도가 될거라면 신앙은 없는게 낫다.
그런데, 복음주의 신앙의 잔재가 남아서일까.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는 거면 어떻하지‘하는 구시대의 걱정이 순간적으로 휘감았다. 병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믿음에 대한 도전도 시작됐다.
내 편들이 많구나
나의 불안을 같이 사는 사람에게 드러냈을 때 그가 말했다. “너를 사랑한다는 걸 더 알게 하려는 거지“
엄마에게 말하니 엄마가 말했다 “기도하라고 하시는 거지”
모임의 클럽장님에게 이야기하니 그녀가 말했다. ”더 기도하라는 뜻이겠죠“
이런 이야기들에 위로받으며 스스로 기도했다. “이번 일로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해달라고”
그리고 수술하기 직전 의사가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더 알게 해달라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해주었다. 정말 한 마음으로.
자기 편만 드는 사람 vs 남의 편도 들어주는 사람
나를 스쳐간 이기적인 사람들이 떠오른다. 기를 쓰고 이용해먹으려고 애쓴 그들은 그저 각자 자기 편이었을 뿐. 악연이란 이기심에서 탄생하고 인연이란 연민에서 출발한다.
타인이 나에게 베푼 사랑과 친절 덕에 어떤 타인이 내게 가한 상처가 저 멀리 날아간다. 살만하지 않았던 세상도 다시 살만해진다. 불안감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그렇게 작은 말들이 모아모아졌을 때다.
다시 믿음을 생각해본다. 나는 나만 믿고 나를 위해 살아가는가, 나는 남을 믿고 남을 위해 조금이라도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가.
앞으로 내가 세상에 하고픈 이야기는 아마 이런 생각들의 연장선이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