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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Nov 03. 2016

"왜 '디자인'하세요?"

번외 - 그래도 디자인이 즐겁다.

"디자인을 하시면 아마도 쭉 미술을 하셨겠네요."

"아니요, 제가 실은 영어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영어 선생님이 될 뻔했죠."

"그럼 영어교사 자격증도 있으신거에요? 근데 왜 디자인을 하세요?"


이번 글은 다른 매거진 글들과는 달리 조금 자전적인 에세이에 가까운 글입니다. 다른 배경에서 디자인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지만 디자인이 가진 매력이나 달랐기에 개척할 수 있었던 부분들로 조금은 독특하게 디자인을 해오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이나 배웠던 것들을 부족하나마 글로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조금 더 객관적이고 이론적인 눈으로 디자인을 대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의 대화는 제가 처음 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듣고 있는 말입니다. 왜 디자인을 하는가, 정답부터 이야기하면 '너무나 즐거워서'입니다.



알량한 호기심으로 출발했다.



처음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것은 지금도 참으로 어이없고 철이 없었다고 생각되는데, 군대에서 복학하고 나니 '공부할 마음이 안 들어서' 였다. 20년이 넘도록 쭉 공부만 했는데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마침 '이중전공' 제도를 통해 다른 과의 전공을 이수할 수 있었는데, 원래는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학교에 음대는 없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미술, 그 중에서도 디자인이었다.


학창시절에도 미술은 못했지만, 디자인은 조금 다르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기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철이 없었다.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필요로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처음 디자인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디자인 수업을 맡았던 교수님은 훗날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지도교수님이 되었다. 그 수업은 충격적이었다. 디자인에 대해 그 전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편견을 한꺼번에 부정당했고,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계산과 기획이 필요한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많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가 훨씬 컸다.




표현 기술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같이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디자인과 학생들은 스케치도 잘하고 컴퓨터 툴을 다루는 능력도 뛰어났다. 그 당시만 해도, 아직 그러한 '표현 자체'를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스케치를 연습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을 컴퓨터 툴을 다루는 것으로 극복하려 했다. 다행히 포토샵은 꽤 했었으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툴은 다행히 금방 배울 수 있었다. 컴퓨터 게임으로 다져진 눈과 손으로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 없이 기술만을 가지면 결국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고비였다.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디자인'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책이라면 뭐든 빌려서 읽었다. 대체 디자인이 뭔지를 알아야 따라갈 수 있었다. 어떤 책도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더 알 수 있었다. 디자인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면서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할 수 있었다. 디자인 수업들을 들으면서,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과 부대끼면서 알게 모르게 디자인을 배워갔다.



시간만이 답이었다.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스스로도 모르게 조금씩 나아졌다. 1년이 지나서 보면 1년 전의 결과물과 너무나 달랐다. 애초에 디자인에 정해진 답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답이었던 것이다. 처음 디자인을 공부했을 때에는 좋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디자인은 좋은 아이디어보다 많은 경험이 더 중요한 분야였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해낼지를 고민하는 분야인데 이러한 기획은 결국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직관과 기술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무작정 읽었던 디자인 관련 서적들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다. 사실 디자인을 공부한다고 해서 관련 서적을 찾아 읽게 되는 경우는 일반적이지는 않다. 결국은 언제나 상황과 대처 방법이 다른 정해진 답이 없는 분야이기 떄문에 어떤 책도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험은 비록 답을 알려주지는 못했어도 다양한 시각에서 디자인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디자인을 바라보고 정의하는 어떤 사고의 틀 같은 것을 만들어주었다.


결국은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책도 많이 읽고, 길거리도 많이 돌아다니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것이 디자인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정해진 답이 없는 만큼 더 오랜 시간을 들일수록 더 좋은 답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디자인, 그래서 디자인.



디자인은 어렵다. 지금은 나름대로 디자인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디자인은 아직 어렵다. 그러나 디자인을 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만족하면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이러한 성취감은 갖은 어려움에도 결국 디자인을 계속 하게 만들었다.


부모님께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2년이 지난 뒤에야 말씀드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해서 말씀을 못드렸고, 나중에는 제목과 같은 질문을 많이 듣다보니 디자인을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전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전했을 때 당연히 놀라셨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에 다행히 계속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영어교육을 전공했었다는 사실을 숨겼었다. 스스로의 디자인 능력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은 아킬레스건과도 같았다. 마치 '순수혈통'이 아닌 느낌이었다. 온라인 프로필에서도 숨기고, 누가 물어보면그냥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디자인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다른 배경은 차별화시키는 개성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어떤 분야이던 결국 끝에서는 통한다던데, 이 경우가 그랬다. 오히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에는 이전의 전공지식을 이용하여 디자인을 언어기호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하려 하기도 했고, 이것이 차별화시켜주는 좋은 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매거진 글 '새롭지만 친숙한 느낌으로요.'(https://brunch.co.kr/@yjjang/12)에는 이 때 연구했던 내용이 살짝이나마 들어있다.


꿈이 있다면, 외부의 어떤 요인에 의해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디자인과 관계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에토레 소사스(Ettore Sottsass)는 90세를 일기로 운명하기 전까지 자신의 작업실에서 고령의 나이에도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 그와 같은 거인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삶을 살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디자인한다.






매거진 [디자이너 모놀로그]가 브런치북 프로젝트 #3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https://brunch.co.kr/brunchbook/prize/3#medal_type_gold_1) 부족한 글이지만 구독해주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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