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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후 Mar 31. 2023

지금껏 몰랐다

 며칠 동안 묵직한 마음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껏 내게 말하지 않았던 당신의 속마음을 들은 이후였다. 내가 세상에 나오고도 한참,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보드라운 당신의 삶을 나는 정말 몰랐다. 이건 동정이나 연민과 슬픔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데, 마음이 쓰였다고 하면 될까? 소처럼 벽에 기대고 앉아 그 말을 되새겼다.     


 지레짐작하거나 넘겨짚을 수도 있다. 공감 수준을 넘어서 으레 그런 감정에 휘둘리다 보니 이제는 익숙할 지경인데, 예전부터 나는 어떤 장면을 보면 슬픔 스위치가 켜지곤 했다. 할머니와 혼자 느릿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이나 눈가에 깊이 파인 주름같이. 그때엔 분명 오지랖이고 어린 날의 치기였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혼자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래전 여름, 우연히 이야기를 나눈 스님께서는 “그들의 업이니 도와주려는 마음은 곧 방해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하셨다.     


 당신은 잘 모르고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남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고 했다.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가 바로 어떤 답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솔직한 마음을 적당하게 말했겠다. 그 마음에는 거짓 하나 없었다. 혹시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을 뿐. 지금껏 내 세계에서 당신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로 충분했는데, 더 바랄 것 없을 정도로 좋으니 아무 걱정 없는 줄만 알았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당신의 모든 모습을 보지는 못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 조금 목이 멨다. 몰랐다고 단정하기엔 내가 무신경했다고, 어쩔 수 없겠거니 하며 세월 따라 지나가려 했던 마음이겠다.    

 

 오래되어 자색으로 바래가는 결혼사진이 떠오른다. 사진 속 당신들과 나이가 비슷해지니 드는 생각일까? 부모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로, 우연히 연이 닿아 결혼하고 가정을 이뤄 지금까지 살아온 이들로 바라보면… 벅차다가 적적해지고 조용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일이 아침처럼 밝아진다. 이른 아침 한구석 하늘처럼 시퍼런 어스름도 여전하지만, 4월이 다 된 봄볕이 그보다 따뜻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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