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인간관계
회사를 비롯한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은 친구들과 다르다고들 합니다. 동의합니다. 친구와 만나는 건 즐겁기 위해 만나는 거고, 동료들은 각자의 사회적 목표를 위해 만나는 거니까요. 그래서 공적인 관계에 중요한 건 서로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느냐입니다. 사적인 관계처럼 서로 친하게 지내는 건 딱히 중요하지 않아요. 같이 일하고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게 중요하지, 각자가 얼마나 진심으로 그 시간을 함께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사람들과 진심으로 함께 한다 느껴지는 순간에 가장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래서 회사와 같은 공적 관계에서도 사적 관계처럼 진심이고 싶고 그럴 수 있다 믿었습니다. 꽤나 거대한 가설이었죠. 그렇지만 막연하기만 한 건 아니었던 게 대학교 때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거든요. 여러 학생 활동들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일로 만난 사이여도 서로에게 진심일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심은 표현을 아끼지 않는 건데, 그게 가능해지는 순간들을 마주했었거든요. 일을 잘하기 위해 진심을 담아 표현하다 보면, 단순한 동료 이상의 관계가 되어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 느꼈습니다. 마치 그냥 알고만 있던 사이에서 정말 친한 친구로 넘어가는 것 같달까요. 서로의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게 자연스러운, 친밀하고도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공적 관계에서도 사적 관계처럼 진심을 다하는 실험 말이죠.
물론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학생 활동이었다 하더라도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이었으니까 사회에 나가면 똑같기는 어려울 거라는 직감이 있었죠.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 하루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곳에서 진실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공적 관계로 얽힌 사람들에게도 진심이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밖의 경험은 제 직감의 손을 들어주었어요. 대학생 시절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아부었던 교외 활동에서는 동료가 저에게 쌍욕을 퍼부었고, 대학원에서는 제 행동이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져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습니다. 저는 단지 일이 잘 되기를 바라서 진심을 표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죠. 왜인지 모르게 오해를 풀려 애쓸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숨이 안 쉬어질 만큼 힘들었기에 진심을 다하는 건 공적 관계에서는 추구하면 안 될 것이라 느껴지기도 했어요. 혼란스러웠습니다. 공허하기도 했고요.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에서 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었을 때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방어적으로 표현했어요. 제 기준에서 진심을 다하지 않은 셈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어선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어요. 이번에는 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커졌거든요. 인원이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합류했고, 처음부터 함께하며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었고, 적은 인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았기에 꽤나 진심 어린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개인적 성공이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일로 만난 사이로써 일을 잘되게 하기 위한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관계 말이죠. 그렇게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어느 정도는 그렇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똑같았어요. 여전히 개인으로서의 진심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동료가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로써 일에 접근했던 사람은 오직 저 하나였고, 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합류하며 점차 드러났습니다.
저는 당연하게도 새로운 사람들이 반가웠습니다. 얽힐 이유가 단 하나도 없는 인연이 회사라는 이름으로 만났으니, 합류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하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모두에게 말씀드렸어요. 그들과 함께 즐겁기 위해서는 일을 잘 해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경험한 저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앞선 겪었던 문제를 두 번 다시 겪지 않기를, 제가 경험한 내용들을 투명하게 공유해서 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기를, 과거 경험을 토대로 보다 나은 계획과 도전을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저에겐 조직적인 권한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행동에 옮겼어요.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예상했던 문제들은 계속해서 드러났습니다. 프로젝트의 일정은 빠듯하고 문제는 점차 심각해져 갔지만 조직이 도와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특히 처음부터 저와 함께하며 이 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았습니다. 다소 방임하는 그의 방식을 이해하고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빠르게 일이 잘 되어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즐거워지기를 바랐던 저로서는 점차 괴로워졌습니다.
힘들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행동하고, 화를 내거나 울기도 해 보았습니다. 심지어 책임을 지겠으니 자리를 달라고 말하는 부담스러운 발언도 해보았어요. 수 싸움을 하고 필요한 걸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일이란 걸 잘 해내기 위해 모인 소중한 인연들이기에 제가 가진 모든 패를 버려가며 진심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모든 패를 다 버렸기에 남은 건 고통스러운 대가뿐이었습니다. 초기 멤버로서 쌓아온 신뢰는 다 사라지고 같이 일하거나 다가가기 불편한 사람이 되어있었어요. 표현에 날이 서있는, 본인 고집이 강한, 승진 욕심이 많은 불편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으니 의견을 반영해 주거나 의견이 틀렸다면 대안을 알려달라는 메시지는 가려진 지 오래였어요. 저는 그저 울부짖음으로써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와 가장 진심으로 표현하고 맞춰가려 애쓰고 있었는데 말이죠. 단서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피드백을 줬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어디까지나 사적 관계가 아닌 사회생활을 함께 하는 공적 관계의 선에서 말이죠. 조금만 더 깊게 들어와 주었다면, 조금만 더 마음을 써주었다면 좋았을 겁니다.
제 잘못입니다. 누굴 탓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어요. 살아오며 공적 관계가 사적 관계와 다르다는 신호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무시한 저의 미숙함입니다. 낭만을 쫓았다고 표현하기에는 여러 경험들이 있었음에도 외면했던 저의 객기였습니다.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감히 모든 패를 내던지고 올인 전략을 선택한 저의 패착이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제가 추구하는 진심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걸 공적인 관계에서까지 녹여내고자 했던 건 지나친 욕심이었어요. 공적인 관계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제 삶의 중요한 관계들처럼 많은 것을 맞춰갈 의향이 있다 생각한 것이 위험했을 뿐입니다. 공적인 관계는 다소 차가운 정의가 말하듯, 서로의 사회적 목표를 위해 우연찮게 얽힌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본질인 것뿐이었습니다.
이로써 10년에 가까운 제 실험은 끝이 났습니다. 일로 얽힌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얽힌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결론과 함께 말이에요. 그들은 저의 진심을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일터는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대학생 때 그런 희열을 느꼈던 것은 정말 지독하리만치 강렬한 예외였던 것이었어요. 공적 관계로 만난 누군가 저의 진심을 궁금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애쓴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던 거죠. 그런 행운이 없는 상황에서 행운을 바랐던 저의 행동은 제 자신을 다치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받아들여야죠.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회사 동료는 제 친구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