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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릎 Mar 06. 2023

선망과 혐오

<뱀>

내 목에 긴 뱀을 둘렀던 날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담이 올 것처럼 목 주변에 긴장감이 스며든다. 처음 뱀을 둘렀을 때 나는 "으으" 하면서도 괜찮았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두를 수도 없는 뱀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몰랐던 공포는 알아버려서 혐오가 되는구나.


여럿이 모여 술을 진탕 먹고 나면 뱀처럼 주사를 늘어놓은 사람이 등장한다.


"그거 내가 알지. 잘 알지."


내가 살아봤어서, 살아봐서 아는데 라며 주도권을 쥐고 얘기한다. 그 사람의 레퍼토리가 뻔한 궤도에 진입할 때 나는 일자형의 긴 몸통을 하나 상상한다. 그리고 그의 얘기를 그만 듣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 긴 몸통에 다리를 하나씩 붙인다. 왼쪽에 하나 붙이고 그다음에 오른쪽에 하나를 붙이고... 그렇게 긴 몸통은 너무도 많은 다리를 갖게 된다. 다리를 몇 개나 붙였는지 잘 모르겠을 때, 더 있다간 내 헛구역질이 진짜 돌출할 것 같을 때 나는 최대한의 사과나 변명을 지불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집으로 가는 길은 내가 아까 상상한 최초의 몸통 같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그가 했던 말들이 떠오를 때 나는 질끈 질끈 눈을 감는다. 그의 말들은 왜 자꾸 나를 떠오르게 할까. 나도 누군가의 선망이고 싶을 때가 있었지. 지금도 그렇지. 누군가에게 살아봤다며 했던 내 말들이 떠오를 때 내 시선은 자꾸 내 발끝으로 몰린다. 모양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방향이 있는 발. 이 발이 없다면 나는 긴 몸통이 될 수 있을까. 없던 것이 있던 최초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은 둘러 둘러가며 발 없이 내 몸통으로 집에 가고 싶다. 그것이 내 선망이다. 체념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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