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는 맛이 좋다. 집 앞 제과점에서 갓 구워진 슈크림빵을 한입 베어 문 후 찬 우유를 들이키면 부드러움이 아주 그만이다. 혹은 신선한 첵스초코 시리얼에 고소한 우유를 듬뿍 부어 탐욕스럽게 입에 부어넣으면 맛있고 든든한 아침 식사가 된다. 우유는 그냥 마셔도 맛이 있고, 무언가와 함께 먹어도 맛이 있으며, 우유에서 파생된 버터나 치즈도 훌륭하다.
맛이 좋은 음식들은 많지만 대부분의 맛좋은 것들은 몸에 좋지 않다. 청소년기에 매일 맛이 없고 양도 적은 급식을 먹다가 주말이 되어서 치킨이나 햄버거를 먹을라치면 어른들은 항상 그런 것을 먹지 말고 김치를 먹으라고 역정을 내었다. 왜냐하면 햄버거 치킨 피자 라면 등 패스트 푸드는 청소년기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유는 맛이 좋으면서 동시에 몸에도 좋다. 심지어 키도 크게 해준다고 하니 정말이지 완전식품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유를 많이 먹는 것은 사회적 질타의 대상이 아니다. 매일 아침 우유를 배달해 먹는 사람은 있지만 매일 아침 비슷한 가격인 짜파게티범벅을 배달해 먹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 봐도 이는 자명하다. 교양있는 모임에서 점잖게 손을 들고 매일 아침에 우유를 마신다고 하면 건강하고 활기찬 청년이라고 흐뭇해 하겠지만 연단에 올라 매일 아침을 거르지 않고 라면을 처먹는다고 할 경우 무릎이 세 치나 늘어난 츄리닝을 걸친 골방 백수로 여길 것이다. 고로 건강도 챙기고 이미지도 챙기고 맛도 챙기는 우유는 완전식품인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던 우유가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어느 방송사에서 우유의 실체를 까발리겠다며 <우유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낸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우유는 완전식품이 아니며, 안전하지도 않고, 칼슘 흡수도 딱히 잘 되지 않아 뼈나 키에도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심지어 우유가 여러 질병들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유의 과장된 실체는 낙농업계의 설계였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매일 아침 우유당번이 가져온 우유에 네스퀵을 타먹는 것이 보람찬 하루의 주된 일과였던 나는 그만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우유에 대한 배신감을 삭이고 있었는데, 비슷한 뉴스를 찾다 보니 김치 역시 완전식품이 아니라는 뉴스를 접하고 말았다. 세계적인 영화배우 니컬러스케이지가 “김치는 내 영혼과 마음의 균형을 잡게해준 좋은 음식”이라며 격찬한 그 음식이, 사스를 비롯해 각종 암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유산균이 요구르트의 십만배인 줄 알았던 그 음식이 항암효과에는 쓸모가 없고 오히려 나트륨이 과다하게 함유되어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화가 나고 슬펐다. 엄마는 언제나 김치를 먹어야 키가 큰다고 나를 겁박했는데, 그래서 햄버거와 피자 대신 김치와 우유를 먹었는데 둘 모두 완벽한 식품이 아니라니. 좌절한 나는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라면과 햄버거와 치킨을 모조리 사서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