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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장정리 Mar 10. 2023

충동적으로 코스 벗어나기의 즐거움

살다 보면 패턴이 생긴다. 집 근처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그 옆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주말에는 그 나물에 그 밥들과 술을 마시고, 쉴 때는 치정에 얽힌 자극적인 연애프로그램을 보고, 영양가는 없지만 재미만은 풍부한 책을 읽는다. 이유는 그 패턴이 나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가기 쉬운 집 근처 식당에 들어갔더니 입맛에 맞길래 굳이 다른 식당을 찾지 않고, 근처 카페 중 이 카페가 가장 아메리카노를 잘 타기 때문에 다른 카페를 가지 않는다.


반복은 상황을 예상하게 한다. 예상할 수 있는 안정적인 맛과 분위기는 편안함을 준다. 또한 예상이 된다는 건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러닝을 할 때 집에서 나와 2km 떨어진 근처 개천까지 뛴 다음, 거기서 3km 코스로 한 바퀴 돈다. 그렇게 5km를 뛰고 나서 2km를 걸어 오면 대충 45분 정도가 걸리는데, 6시 반에 뛰고 와서 샤워를 하면 딱 7시 반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이후의 일을 도모할 때 아주 흡족하다. 그래서 2년 동안 이 코스만 쳇바퀴 돌듯 돌았다.


다만, 일관된 패턴은 지루해진다. 예상이 가능해서 효율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어떤 지점에서 얼마나 힘들지, 언제쯤 끝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 코스의 시작과 끝을 미리 안다는 것은 안정적인 동시에 뻔하다. 그래서 종종 다른 길로도 뛰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길로 가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고, 중간에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계속 같은 코스를 택했다.


그 관성이 충동적으로 깨졌다. 러닝을 하다가 2년 동안 가던 코스를 벗어나서 새로운 코스로 갔다.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평소에는 다른 길로 가 볼까? 하다가 항상 그냥 가던 대로 갔는데, 그때는 뇌 회로 중 하나가 배선이 꼬였는지, 다른 길로 가 볼ㄲ? 하는 즉시 방향을 꺾었다. 코앞에 갈림길이 있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만약 갈림길을 만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 다른 길로 가는 것에 대한 뇌내 반박 의견들이 쏟아져나왔을 것이고, 2년간 했던 대로, 귀찮으니까 가던 길로 가자- 하며 마무리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나무가 우거진 샛길로 발을 들여버렸다. 뇌는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이 길이 어디로 통하지? 집이랑 너무 멀어져 버리면 어떡하지? 가다가 언제쯤 꺾어야 하지? 등등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하지만 반박 의견이 나와봤자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 없이 뛰었다. 얼마 뒤 펼쳐진 풍경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근처에 산지도 어느덧 4년째가 되어 가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구역이었다. 그게 대단히 엄청나진 않았다. 서울의 개천이야 거기서 거기고, 러닝 코스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안은 스릴과 유사했고, 처음 해보는 경험은 계획을 조금 망쳐놨지만 즐거웠다.


작년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강릉에 간 적이 있었다. 막상 ktx를 타니 아무것도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이 두려웠으나 오히려 들뜨기도 했다. 갑자기 도착한 강릉의 하늘은 맑았고, 바다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뜻밖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회를 먹고, 그 친구에게 별을 보기 좋은 곳을 추천받아 별을 보러 갔다. 이날 전에도 몇 번 여행을 갑자기 떠나 보자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래서는 안 될, 혹은 귀찮아질 이유들 수십 가지가 떠올랐다. 결국 재미있겠다 싶어서 떠올린 생각들은 여행이 되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대학생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대학생 때는 직장을 가지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로또가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는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도, 대학생 때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다만 얼마 후 찾아오는 비판적인 생각이 모두 지금은 안돼 하면서 쓸데없는 생각들을 청소해버렸을 뿐이다. 어쩌면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변함 없는 계획과 효율보다는 일정량의 충동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삼아 오늘은 충동적으로 러닝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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