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본섬, 마우나케아
내가 하와이에 가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게, 말하자면 선입견이다. 언제부터 '유명한 신혼여행지' '최고로 꼽히는 휴양지'는 내가 갈 곳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잘은 모르겠다. 태국의 푸껫 바닷가를 본 이후부터였을까. 하지만 푸껫은 푸껫이고, 발리는 발리, 하와이는 하와이, 다 다른 법이라는 걸, 그리고 유명해진 데에는 처음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걸 망각했던 게다. 발리에 가보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자, 발리가 이렇게 좋으니 그럼 언젠가 하와이도 가볼까. 생각했을 때 느닷없이 좋은 기회가 와버렸다. "하와이 갈래? 돈은 내가 낸다."라는 달콤한 제안. "갈래!" 바쁜 일정이고 뭐고 오케이하고 봤다.
그래서 조카들과 함께 한 10박 11일간의 하와이 여행.
예상을 깨고, 일단 우리가 가기로 결정한 곳은 와이키키 해변이 아니라 화산이었다. 하와이 본섬 (별명 빅아일랜드)에 화산 국립공원이 있는데, 조카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니 가는 방법을 좀 알아보라는 하명.
하와이가 섬 하나가 아니라 군도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안 나는 짧은 기간에 나름 열심히 정보를 구했다. 그러다 보니 어째, 화산 국립공원보다 마우나 케아가 더 끌린다.
마우나 케아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하지만 해발 고도는 4207미터.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산의 뿌리가 해저에 있어서 거기서부터 재면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산이라는 얘기.
아무튼 마우나 케아 정상에는 세계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천문관측 단지가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각종 천체 관측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한다. 일반인 방문객들을 위한 숙소와 별보기 센터는 해발 2800미터쯤에 있으며, 정상까지 올라갈 사람들은 고산증을 대비하여 일단 여기에서 무조건 30분 이상 적응시간을 갖도록 되어 있다. 보통 관광객들은 방문자 센터에서 휴식 후 정상에서 석양을 보고, 다시 방문자 센터로 내려가서 설치된 망원경을 보고 별을 보고 자원봉사자들의 설명을 듣는다.
자, 여기에 고민되는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상이 해발 4천 미터를 넘는 만큼 고산증 위험이 있다는 것. 운전해 가려면 4륜 구동을 빌려야 한다는 말.
나는 해발 4천 이상인 곳에 몇 번 가봤고, 지금까지 고산증은 겪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을 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운전자에게 고산증세가 나타난다면 바로 차를 돌려야 한다. 운전자가 괜찮아도, 누구든 조금만 이상한 증세를 보여도 바로 내려오기로 하자. 이렇게 정하고 행동하자니 대안인 투어 프로그램 이용은 기각할 수밖에(워낙 비싸기도 했다... 혼자 갔다면 당연히 투어를 이용했겠지만).
뒤져보니 별을 볼 방문자 센터는 해발 2800미터 정도로, 여기에서는 고산증세를 나타내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우선 목표는 별보기에 두고(사진을 찍지 못해서 그렇지 여전히 이게 메인이었다) 그 위는 가보고 대처하자, 올라가 보더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바로 센터로 돌아가서 별만 보자, 마음을 정했다.
방문자 센터에 가서 보니 공식 권고사항으로는 50세 이상, 16세 이하도 올라가기를 권하지 않는다. 이건 비유하자면 유통 기한을 넘어서 맛있게 먹으려면 바로 드시오 급이지만... 그래도 이 부분에 신경이 쓰여, 전원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위에 오래 머물지는 않고 빨리 내려가기로 했다. 어쨌든 고산증세라는 게 어떤 건지 옆에서 본 경험은 있으니 체크하고 대처하는 데 도움은 되겠지.
그래서 두 번째. 꼭 4륜 구동이어야만 하는 걸까, 그만큼 운전이 험할까? 가보지 않았으니 이런저런 경험담을 찾아보아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우나케아로 올라가는 길을 '새들 로드'라고 부르는데 이 구간에서 일반 승용차를 몰다가 사고가 나면 보험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에 대비하여 SUV로 렌트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강행해보니 우리의 경우는 둘 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보니 고산 증세에 대해서나 운전에 대해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기준으로 경고한다는 느낌. 물론 안전에 신경 써서 나쁠 것이 있겠는가. 만약은 모르는 일이니 심장이나 혈관 지병이 있는 분은 삼가시고 걱정할 일이 거의 없는 성인이라도 반드시 고산증 대비 구급약을 챙겨가기 바란다. 고산증이라는 게 아주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고, 그런 경우라도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증상이 사라지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운전의 경우. 덜컹거리는 길이 있기는 한데, 한국에서 산길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운전하기 어렵지 않다-는 게 직접 운전해본 분의 감상이다. 다만 승용차로는 오르막에 힘이 들기는 할 것 같다. 아참. 가로등이 없으니 운전자가 야맹증이 있어도 내려올 때 곤란할 수 있겠다. (별을 보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해가 지면서부터 방문자 센터와 숙소 모두 붉은 조명으로 전환한다)
물론 조금이라도 마음이 쓰인다면 정상은 버리고, 별보기만 노려도 나쁘지 않다. 날씨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열심히 달려갔을 때도 내내 날이 흐려서 걱정이었는데 방문자센터 위쪽은 구름 위라서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나온다. 단, 방문자센터에서 별을 보는 게 더 중요하다면 반드시 날씨 체크 (프로그램과 날씨 확인 모두 방문자 센터 홈페이지에서 가능: http://www.ifa.hawaii.edu/info/vis/visiting-mauna-kea/)
어째 생각나는 주의사항을 다 적다보니 잔소리쟁이가 된 기분이네.
이하 사진은 모두 구름 위로 올라가서 하늘이 맑아지면서부터 찍었다.
다른 팀들은 대개 해가 완전히 진 후 어두워지면 내려오던데, 우리는 석양을 본 데 만족하고 빨리 내려갔다. 방문자 센터에서는 해 질 녘부터 여러 대의 망원경을 설치해둔다. 다섯 대, 여섯 대쯤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토성, 목성 이외 다른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레이저 포인터로 전체 설명을 해주던 분에 따르면 사람 눈으로 별을 보기에는 4천 미터 높이보다 2800미터가 낫다고 한다. 별이 말 그대로 쏟아지는 하늘을 보고 싶다면 여기 아니라도 많이 있지만, 이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방문자 센터 사진은 제대로 건진 게 없어서 공식 사진으로 대체.
매일 밤 6시부터 10시경까지 별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 2016.06.05 (하와이 시간)
윗글에서 빠뜨린 정보 조각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는 국제선 공항인 호놀룰루(오아후 섬)로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바로 하와이안 항공 주내선으로 갈아타면 1시간 이내에 다른 섬으로 날아갈 수 있다. 배편도 알아보기는 했지만, 여러 섬을 들러가는 유람선을 제외하면 썩 좋은 선택지가 나오지 않아서 통과.
하와이 본 섬은 땅덩어리가 큰 만큼 공항이 동서 양쪽에 하나씩 있다. 동쪽에는 힐로, 서쪽에는 코나. 마우나 케아와 화산 국립공원이 주목적이라면 힐로가, 한적하게 바닷가를 즐기려면 코나가 더 좋다.
마우나케아의 오니즈카 비지터 센터까지, 힐로에서는 약 1시간 30분. 미리 확인해보니 해가 지는 시간이 7시경이었는데, 오후 4시에 출발하니 넉넉했다.
방문자센터에서 30분을 보내며 적응하는 동안 대부분 도시락을 먹는데, 뜨거운 물이 제공된다는 정보가 있어 컵라면을 가져가서 먹었다. 방문자 센터에서도 판매한다. 이외에 인스턴트커피와 핫초코도 판매.
상당히 춥다. 긴 바지는 물론이고 고심 끝에 전원 얇은 패딩 점퍼를 챙겨갔는데, 그게 정답이었다.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에는 두꺼운 옷도 다 빌려준다. 운전 피로나 거추장스러운 짐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겠다. http://www.maunakea.com/ 에서는 1인당 200달러를 약간 넘기고 더 싼 업체는 150달러 정도라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