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본섬, Hawaii Volcanoes National Park
마우나로아(Mauna Roa)와 킬라우에아(Kilauea), 두 개의 활화산을 품은 하와이 화산 국립공원은 힐로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달려가면 나온다.
가는 길도 그렇지만, 국립공원 안에서도 걸어 다니기는 무리다. 차로 돌아다녀도 하루 종일을 국립공원 안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공원 입구로 들어가서 방문자 센터부터 들렀는데, 직원이 지도를 주면서 추천한 기본 코스는 이랬다.
1. 재거 박물관(연기 오르는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증기 배출구(여기저기 연기가 올라오는 들판), 서스턴 용암동굴 - 모두 킬라우에아 칼데라 주위를 도는 '크레이터 림 드라이브' 안에 있다. 세 군데 돌아보는 데 두 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2. 그 후에 시간이 남으면 'Chain of Craters Road'를 따라 차를 몰아서, 용암이 바다로 쏟아져내리던 지점까지 가서 '바다 아치문Sea Arch'을 보고 와라. 왕복 세 시간쯤 걸린다.
이 두 코스만 다 돌아봐도 하루 종일이 걸리게 생겼다. 일단 국립공원에 온 사람은 다 가보는 1번 코스부터.
오호, 여기는 분화구가 솟아 있지 않고 푹 꺼져 있네!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활화산이다 보니 안전을 위해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고, 재거 박물관 전망대에서 쌍안경과 망원경으로만 봐야 한다. 하와이는 지속적인 화산 활동으로 지금도 섬이 성장 중이라, 이런 상태로도 밤에는 붉은 용암이 비치기도 한다는데... 동행한 조카들은 붉은 용암이 없다고 실망했지만(얘들아 여기서 시뻘건 용암이 보일 정도면 우리가 올 수가 없어) 그 거리에서 망원 렌즈 없이도 이 정도 사진이 찍히는 위용이다.
덧붙이자면 하필 한 달 전에 브로모 화산 분화구 입구까지 올라가서 어마어마한 진동을 느꼈던 터라 나도 감흥이 좀 덜했다. 그때는 화산을 찾은 게 처음이라, 화산재가 섞인 비가 내리는데 난간도 없는 돌계단을 기듯이 올라가서 분화한 지 얼마 안 되는 화산 분화구를 들여다보면서 무섭기도 하고 신이 나기도 했으나... 되짚어보니 안전 기준이 너무 없는 거였지 거긴; 아이들에게 화산을 보여주고 싶다면 하와이를 권하지, 인도네시아를 권하지 않겠다. (이 글을 올리고 나면 비교 삼아 바로 브로모 화산에 대해 정리해 쓸까 한다)
박물관 안에는 이전의 분화 기록, 이 화산을 둘러싼 하와이 신화들이 정리되어 있다. 불의 여신 펠레가 태어난 곳이 바로 여기.
이어서 Steam Vents로 표시된 지점에 이동. 길가에 인공으로 만든 증기 배출구도 있지만, 주변을 걸어보면 그냥 곳곳에 연기가 모락모락 오른다. 땅이 뜨끈뜨끈하니 온기가 느껴지는 지점도 있다.
그다음에는 다시 차로 이동, 큰 분화구가 내려다보이는 산책로를 잠시 걸어서 용암동굴로. 아무래도 동굴이라면 석회암 동굴을 주로 본 터라, 용암이 깨끗하게 밀고 지나간 흔적이 새롭다.
잘 보면 아래 분화구를 걷는 사람들도 보인다. 트레킹을 신청하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처음이었다면 걸어보지 못해 아쉬울 뻔했으나, 이것도 역시 브로모에서 해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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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해서 1번 코스는 다 보았다. 여기에서 끝내고 나갈 것인가? 아이들은 흥미가 다한 듯 빨리 해변으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이대로 나가기엔 뭔가 아쉬웠다. 하지만 방문자 센터에서 추천해준 다음 코스를 왕복하면 세 시간이 걸린다는데, 그 정도 시간은 없다. 우리는 결국 타협을 보았다. 일단 가보고, 어떤지 보자. 바다까지는 못 가더라도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오자- 는 어정쩡한 안이었다.
결과를 보자면, 그렇게라도 가보기를 잘했다. 몇십 년 전에 용암이 흘러 굳은 들판을 달릴 수 있고, 가는 길 여기저기에 차를 세우고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이쪽은 분화구들이 더 작고 활동은 중지했으나, 지형이 다양하고 오히려 실감은 더 난다. 내 경우에는 이 두 번째 코스가 더 만족스러웠다. 시간 관계상 중간에 차를 돌렸으나 아마 바다까지 갔어도 좋았으리라.
누군가 작정하고 이 국립공원을 찾는다면 하루를 통째로 들일 생각을 하고 가라고, 이 길 끝에서 바다로 용암이 쏟아진 흔적까지 보고 오라고 하고 싶다.
- 2016.06.06 (하와이 시간)
- 국립공원에 갈 때는 도시락과 간식을 싸가라는 정보는 여기저기에서 보았지만, 미처 물을 넉넉히 챙겨 가지 못했다. 묘하게도 당연히 물이나 음료수를 팔 거라 생각했던 방문자 센터에서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다. 자판기도 없다. 방문자 센터에서 걸어갈 수 있는 식당에서 겨우 음료수를 사기는 했는데, 그쪽도 탄산음료만 팔고 물은 팔지 않는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국립공원 안에 주둔한 육군 기지 매점(...)에서 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필품을 판다고 하더라. 참고하시길.
- 군대는 왜 주둔하는가 자문자답해보니... 분화가 격해져서 대피해야 할 때에 대비해서일까?
- 입장료는 따로 없고, 차 한대당 10달러였나 15달러였나 냈다. 영수증 챙겨두면 일주일 안에 재입장도 가능하다고 한다.
- 산으로 올라가니 추워지지 않을까 했는데, 용암 위라 그런지 의외로 따뜻하다. 바람은 많이 불지만, 마우나케아처럼 든든하게 옷을 준비할 필요는 없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