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리가
2017년 8월 18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네 시간이 넘게 달려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도착했다.
이 시점에서 다른 계획은 전혀 없었다. 생각보다 피로가 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원고는 밀렸고, 리가에서는 괜찮은 숙소를 잡아두었으니 며칠 웅크리고 쉬면서 일이나 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18일 저녁과 19일 오전까지는 그 계획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19일 낮. 그래도 점심은 제대로 먹어야지 하고 밖으로 나선 나는 느닷없이 중세 장터에 맞닥뜨렸다.
오, 토요일이라고 이런 행사도 하나. 운이 좋았군 하며 한 바퀴 돌아보았다. 기왕이면 여기서 파는 음식으로 점심도 해결할까 했으나, 족발이 딱히 당기지는 않았다. 하여 어정어정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김없이 길을 헤매기 시작했고...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으로 홀린 듯 걸어가자 강이 나왔다.
응?
으응?
거대한 특설무대에서는 공연이 펼쳐지고, 곳곳에 스크린이 놓여 실황 중계 중인 데다가, 강변을 따라 노점이 쭉 늘어서 있다. 술과 음식은 물론이고 더 뒤쪽에는 온갖 공예품이...
이제야 눈치를 챘다. 이건 축제구나. 서울숲 축제 같은 건가.
조금 더 지나서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했지만, 그 정도 규모가 아니었다. 리가 시 전역에서 벌어지는 대축제였다. 강변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과 춤 공연에 오토바이 묘기와 체스 토너먼트, 얼음조각 경연이 벌어지고 마무리는 불꽃놀이. 세인트 피터스 교회 앞에서는 이미 봤다시피 중세 장터. 길거리 곳곳에서는 공식 버스킹 공연. 국립미술관 앞에서는 마술과 차력, 서커스 공연과 라트비아 전역은 물론이고 리투아니아에서까지 짐 싸들고 온 수공예 상점 페어. 리가 전역의 레스토랑이 모인 노점 페어도 있고 프라하와 비엔나에서 보낸 축하 공연도 한다.
공연만이 아니라 전시회도 있고, 동물원과 도서관에서도 뭔가 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스포츠 이벤트도 함께 진행된다. 24시간 농구 시합, 강변의 럭비 시합, 하키 시합, 조정 경기 등등, 등등. 더불어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리가 시내 대중교통은 모두 무료!
잠깐, 어째서 이쪽이 더 중세 같지...?
아래는 이틀에 걸쳐 강변과 국립미술관 앞, 두 군데에서 찍은 사진들. 국립미술관 쪽이 과자류는 더 많았고 그 대신 술과 안주는 별로 팔지 않았다. 액세서리나 린넨, 옷은 양쪽이 겹치는 게 많았던 반면, 가죽공예류나 유리공예류는 국립미술관 쪽 압승, 그릇은 강변에 더 많았던 듯. 양쪽 다 노점이 수십 개씩 있었고, 돔 교회 광장 근처에는 뜨개질류를 주로 파는 가게가 십여 군데 따로 나와 있었다.
지갑에 타격이 가긴 했지만 축제 기간이라 정말 즐거웠다. 탈린에서 스쳐 지나갔던 여행자 몇 사람은 리가가 조용하니 좋지만 특별한 건 없는 도시였다고 했는데, 내 경우에는 정반대로 기억하게 될 듯. 우연이어서 더 즐겁기는 했지만, 만약 8월에 라트비아로 여행을 간다면 축제 기간에 맞춰서 가도 좋지 않을까 싶다.
리가 축제 안내 사이트. 영어로도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해마다 프로그램도 컨셉도 조금씩 달라지는 듯.
그리고 나는 20일에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서 다른 공연을 보러 갔다가 리가의 친절한 시민들에게 도움을 받게 되는데... 이 일은 따로 적겠다.
2017.08.1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