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 앞바다의 전쟁사, 수오멘린나
현대의 대서사시가 되어 가고 있는 대작 얼음과 불의 노래(드라마 제목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마틴의 중단편을 모은 걸작선 [꿈의 노래] 1권에 보면 '요새'라는 단편이 있다. 작가가 습작기에 쓴 작품으로, 스웨덴 왕국 산하의 장교가 이 요새에서 러시아와 전쟁 중에 겪은 일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스웨덴 지배하에 있다가 러시아에 점령, 그 후에는 다시 독일제국 산하로 들어갔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독립한 핀란드의 역사 한 토막이 담긴 소설이다. 물론 핀란드는 그 후에도 많은 곡절을 겪었고 2차 대전기 겨울 전쟁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요새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때는 소설이 그리는 19세기의 핀란드 전쟁(1808-1809).
습작이라고 굳이 이름붙여 책에 실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대학 시절에 쓴 이 소설은 어디에도 팔리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는 훗날 이 소설을 뼈대로 SF로 다시 개작하여 팔아먹는 훌륭한 재활용 정신도 보여준다. 걸작선 4권에 수록된 '포위전'이 그것이다.
화창한 날이었다. 헬싱키에 며칠 없다는 좋은 날씨였고, 주말이 지나서 관광객도 줄어들었다. 헬싱키 마켓 광장에서 페리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는 요새 공원에는 헬싱키에서 나들이 나온 게 분명한 시민과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배에서 요새를 처음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요새라며? 저렇게 평평해서 괜찮은 거야?
산성에 너무 익숙한 한국인이여.
총 여섯 개의 크고 작은 섬을 연결해서 두꺼운 성벽과 막사, 거주지 등을 지어놓았다.
언제 전쟁이 그렇게 있었냐는 듯,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수오멘린나Suomenlinna라는 현재의 이름은 '핀란드의 요새'라는 의미로 1917년에 독립하면서 바꾼 것. 처음에는 비아포리/스베르보그였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위에 언급한 단편 소설에는 당시 이름인 스베르보그로 나오는데, 이 이름은 또 무슨 뜻이냐 하면... 그냥 '스웨덴의 요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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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시내 어디서든 트램을 타고 마켓 광장으로 가서, 한 시간에 몇 번씩 오가는 페리를 타면 된다. 헬싱키의 대중 교통편은 매우 비싸서 1회 이용에 5.5유로나 하지만, 9유로짜리 24시간 이용권이면 트램은 물론이고 페리 왕복까지 이용할 수 있다. 시내 중심가에 숙소를 잡았다면 마켓 광장까지 걸어갈 수 있기도 하다. 가는 김에 마켓 광장, 헬싱키 성당과 우스펜스키 대성당을 둘러보고 부둣가를 산책하면 만족스러운 하루 코스. 내부에 박물관과 카페도 있지만, 어디 들어갈 필요 없이 마트에서 간단한 요기거리를 살 수 있다. 한가로이 뒹굴거리기 좋은 곳이다. 물론 여름이라면 말이다.
- 2017.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