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욕심내자
로메오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통해 본격화된 좀비물은 오랜 시간 헐리웃 B급 영화의 전유물이었다.
하위 문화 취급을 받던 좀비들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레지던트이블 시리즈와 월드워Z의 흥행 이후다.
왜 사람들은 뒤늦게 좀비에 열광하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세상이 좀 더 암울해지고 탐욕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좀비는 탐욕의 희생양이다. 17세기 카리브해의 작은 섬 아이티에서 태어난 좀비는 야근수당 없이 일해야만 했던 노예 노동자들이었다.
밤새워 일을 시킬 요량으로 농장주들이 부두교 주술사들을 동원해 시체들을 살려냈다는 설도 있지만 실제로 흑인 노예들에게 독약을 주입해 뇌기능을 정지시키고 가수면 상태에서 일을 시켰다고도 한다.
그 당시 농장주들이 얼마나 악독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은 많다. 사탕수수 압착기계 앞에는 칼을 든 감독관이 있었고 그들은 졸음을 못이긴 노예들의 팔이 기계안으로 들어갈 경우 기계를 멈춰 세우는 대신에 그들의 팔을 잘라내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악랄한 노예 노동을 통해 얻는 설탕을 기반으로 영국은 산업혁명을 위한 자본을 축적했다고 하니.. 어찌보면 지금의 자본주의는 그 좀비들의 희생위에서 탄생한 것일 수도 있다.
서설이 길었다...
부산행은 좀비가 상징하는 탐욕의 시대를 기대 이상으로 잘 표현한 수작이다.
주술사에 의해서 되살아난 존재는 아니어도 사건의 발단과 그 중심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다.
주인공 공유는 펀드매니저다. 그는 주가 조작을 통해 파산되어야할 바이오 회사를 살려냈고 그 곳에서 재앙이 시작된다.
펀드매니저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마동석이 '개미핥기'라고 비아냥대는 그들은 미국 금융위기의 주범이자 모럴해저드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단, 공유 뿐만이 아니다. 열차안의 사람들도 이기심의 극단을 보여주고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한다. 물론 그 결과는 비극이다.
공유에게 애끓는 부성애를 주입시켜 가족극으로 탈바꿈시키려 애써보지만 별무소용인듯 하다.
영화적 상상력이긴 하지만 실제 우리 주변에는 좀비로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얼마전 뉴스에서 보았던 축사노예 아저씨나 최저시급 조차 받지 못하는 젊은이들까지..
케인즈는 '네 이웃이 불행하면 너도 불행해진다'고 경고했다. 탐욕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날 퇴근 길 골목에서 좀비들을 진짜 마주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