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어두운 그림자
'용암같은 영화'
어느 영화 평론가의 한 줄 평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보여준 괴물같은 에너지 때문일 수도 있지만 상영시간 내내 숨막힐듯 분출되는 인간의 탐욕과 그 충돌에서 기인한 인상일 듯 싶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끝자락에 시작된 석유재벌의 탄생과 그 자본을 필요로 했던 복음주의 기독교의 탐욕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1898년'이란 자막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황무지를 비추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황무지 아래에는 홀로 땅을 파헤치는 한 남자가 있다.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그는 아직 엘도라도의 꿈을 안고 금맥을 찾아 땅속을 헤매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연한 기회에 구덩이에서 금이 아닌 석유가 새어 나오고 다니엘은 석유시추업자로 업종전환을 한다.
이후 석유를 통해 성공을 맛본 다니엘은 점점 더 석유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석유는 절대 가치이고 모든 것에 우선한다. 석유에 대한 그의 집착은 단지 부의 축적만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경쟁을 통한 승리의 노획물이고 자존감의 실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욕망의 실현은 스스로를 자가발전 시키고 어느 순간 무엇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희생도, 위선도, 악조건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을 버리고 믿지도 않는 신 앞에서 회개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니엘의 대척점에는 젊은 목사 일라이가 있다. 강한 신앙심으로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자신의 교회를 키우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인물이다.
다니엘에게 노골적으로 헌금을 요구하고 귀신을 내쫓는다며 신도를 폭행하고 결국엔 하나님이 대공황을 알려주지 않았다며 신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다니엘과 일라이의 모습은 탐욕에 눈 먼 미국 자본주의와 교회의 의인화에 다름 아니다.
석유를 위해 거짓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하고 교회는 십자군 전쟁이란 대의를 부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911이후 미국의 추악한 자화상을 이 영화를 통해 상기시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다니엘과 일라이의 파멸을 보여줌으로써 거대 자본과 대형 교회의 탐욕적 야합에 대한 경고를 하려했던건 아닐까..
내게 이 영화가 먼 나라의 역사극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건 우리가 처한 상황이 남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하는 재벌출신 시장이 대통령이 되고 무당인지 목사인지 모를 사람의 딸이 무서워서 기업들이 하루만에 수백억을 갖다 바치는 것을 보면 닮아도 참 나쁜 것만 골라 닮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폴 감독의 경고문을 보여주고 싶다.
'There will be blood'(피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