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모임이 있어 일요일 아침이지만 서둘러 집에서 나왔다.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남편은 출근길 길목인 이촌역에 나를 내려 주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이동하기로 한 장소였다. 오랜 외국생활에서 돌아온 나를 친구들이 환영 겸 점심을 같이하자고 자리를 만들었다. 오늘따라 남편의 해맑은 웃음이 예뻤다. 남편에게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도 우리 남편 칭찬을 한참 했다. 어깨가 으쓱했다. 이 나이에 저런 인상을 남들에게 준다는 건 그가 편안한 시간을 살고 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남편이 남편 특유의 웃음으로 나를 송별해 줬는데, 오후에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친구들과 막 점심식사를 끝냈고 개인적인 이야기 봇다리를 펼치려고 할 때다. 남편의 전화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가 한국에 들어오고 난 뒤 뜸하게 오던 전화였다. 이상한 예감이 스쳤다. 늘 예감은 적중한다. 낯선 목소리가 남편의 전화기에서 들려오다니... 단 몇 초 사이에 난 알것 같았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잠시 난감,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굴러 다녔다. 어쩌지?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나서 막 이야기 꽃을 피우려 할 때... 친구들에겐 뭐라고 말하지? 아무 일 없는 듯 모른 척 앉아 있어야 하나? 친구들에게 말하고 이 자리를 떠나야 하나? 즐거운 분위기를 깨지 말고 조금 더 있다가 가야 하나? 난 어떻게 가지? 남편이 잠시 현기증이 나서 쓰러진 걸까? 금방 깨어났다고 다시 연락이 오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한지 수 초의 시간이 흘렸다. 그럼에도 내 얼굴은 굳어지고 있었나 보다. 내 얼굴이 굳어진 게 보였는지 친구가 묻는다. 전화받더니 너 표정이 왜 그래? 나도 모르게 얼버무려진다. 웃으며 아무 일 아닌 듯 말하려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됐다.
빨리 택시를 타고 가라는 친구와 데려다준다고 하는 친구 사이에서 글쎄 정신 좀 차려보고.. 생각 좀 해 보고... 택시비는 친구들과 만난 파주에서 남편의 회사부근에 있는 평촌 병원까지 65,000원 1시간 남짓이 걸린다. 전철을 타면 1시간 57분... 그 와중에 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느 게 경제적인지, 잠깐만 잠깐만 하며 머리를 굴려 보는데 명쾌한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화장실을 다녀오고 택시를 불렀다.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빨리 가야겠다는 결론을 화장실에서 내렸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월요일에 떠나기로 되어 있는 제주도를 보내기 싫었나? 내가 외국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나? 언제나 내게 YES맨인 남편이 내 허락도 없이 누구 맘대로 병원에 있다고 내게 통보해 오는지? 살면서 전혀 예측해 보지 않았던 일이었다. 남편이 찾아간 응급실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병원이고, 집에서 아주 먼 병원이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야 할까? 어쩌자고 거기에 있는지? 뇌출혈이라니 시간을 더 끌 수가 없을 듯하여 그냥 그 병원 응급실에 머무는 것을 승인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불티나게 온다. 상황이 시급해서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수술동의와 수술을 하기 위한 문진을 전화통화로 하기 시작했다.
도착하니 이미 응급처치에 들어갔다고 함께 있던 회사 직원이 알려준다. 보호자 도착을 알렸다. 곧 CT를 찍으러 이동한다고 옆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응급실에서 CT를 찍으러 옮겨가는 침상에 누워있는 남편은 이미 혼수상태에 빠졌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잠을 자듯이 누워있었다. 머리를 밀어버려 낯설지만 자는 듯이 평온한 남편을 보니 울음이 안 나온다. 자고 있을 거야! CT촬영 후 수술방으로 옮겨졌고, 남편이 벗어 놓은 껍데기들과 대면했다. 외락 눈물이 나온다. 꼬질꼬질한 회사 가운과 슬리퍼, 다 늘어진 팬티, 변이 묻어있는 바지까지... 그제야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전 날 살이 빠져서 허벌레 한 바지를 보고 옷 사러 가자니깐 바빠서 못 간다고 할 때 입었던 그 바지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나도 모르게 엉엉 소리가 난다.
다리 분쇄골절로 깁스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는 혹시 모르니 대기하라고 했고, 미국에 있는 딸에게도 조심스럽게 아빠 소식을 전했다. 시동생에게 전화 걸어 알리고 친정 언니들 카톡방에도 소식을 전했다.
남편은 두 시간쯤 뒤에 수술실에서 나왔다.
의사 선생님 왈... 뭐라고 뭐라고 귓가에 맴돌기만 할 뿐, 딴 나라 말 같았다. 모르겠다. 잠시 녹음을 해서 시동생과 가족 카톡방에 올려줬다. 알아서들 들으라고.... 내겐 일일이 사람들에게 전달할 힘이 없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뇌출혈이며 지주막하출혈이라고 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다. 지주막하출혈은 쓰러졌을 때 30%가 사망하고, 이송하다가 30%가 사망하고, 수술하다가 30%가 사망하고, 나머지 10% 기적으로 살아난다 해도 수술 후 완쾌가 불가능하고 한쪽 편 반신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은 목으로 올라가는 경동맥 한쪽이 완전히 막혔으며 전혀 기능하지 않는단다. 언제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3시간쯤 지났을 때 의사 선생님이 다시 나오셨다. 수술을 하지 못했고, 혈관 터진 곳을 찾지 못했다. 그냥 스며들거나 다시 지켜봐야 한다며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했다. 환자는 깨어났나요? 의사 선생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중환자실도 면회가 안 됐다. 수술 마취에서 의식이 깨어나길 빌 뿐이고, 죽음과의 사투에서 이겨내길 빌 뿐이었다. 나에게 인사 없이 떠나는 건 예의가 아니니 그렇게 가지 마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래도 우린 잘 살고 있었는데... 퇴직시기를 서로 맞춰 4년쯤 뒤에는 더 잘 살자고 했는데... 내가 공부하고 온 영어를 잘 활용해서 이나라 저나라 옮겨 다니며 즐거이 살아보자고 했는데... 결혼 후 거지도 논다는 주말까지 온통 회사일에 바치고 자신을 위해 한 시간도 투자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동안 너무 피곤하게 살아왔으니 병원에 온 김에 오늘은 푹 자고 낼 아침엔 입원실로 옮겨가서 "여기 어디야?" 하고 내게 물어오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