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쓰러지던 해 우린 34년째 부부로 살고 있었다. 살아온 시간만큼 남편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남편의 차로 이동하면서 남편의 변비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결혼 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일에만 파묻혀 사는 남편에게 나를 돌아봐 달라고 무수히 많은 날들을 울어댔지만 남편은 무심히 자기 일에만 빠져 살았다. 남편과는 소소한 이야기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자기는 어릴 때부터 변비로 살고 있었다며 간난 아기 때도 3~4일에 한 번씩 대변을 봤다고 했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 음식만 입에 들어가면 화장실로 직행하는 나와는 다르게 변비로 고생하겠구나 잠시 생각하는데 남편의 "굵은 것을 엄청 많이"라는 말을 듣고 꺄르륵거리며 웃다가 이야기를 끝냈다. 남편은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매일 출근했다. 늘 있는 일이라 여느 때와 같은 기분으로 빠이 빠이~~
그랬던 남편인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에 뭐지? 머리를 휙 하고 스치고 지나가는 불안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XX님이 변비가 있잖아요?" 회사 직원도 아는 남편의 변비를 나는 전혀 모르고 살았다. 순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앗! 화장실에서 쓰러졌구나? 어쩌지?
다행히 화장실에서 느낌이 있었는지 밖으로 뛰쳐나온 듯했고,
다행히 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119를 불러 달라고 했고,
다행히 회사에 직원이 있어 119에 구급차 요청을 했고,
다행히 회사 가까이에 대형 병원이 있어 신속히 도착헸고,
다행히 신경외과 선생님이 계셔서 응급수술을 했고,
다행히 수술실에 다른 환자가 없어서 혼자 수술받았다.
수술실은 운 좋은 남편 혼자 차지했다.
내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수술준비를 시작해서 막 도착했을 때 CT 찍으러 가는 모습을 봤다. 우리 남편이 맞나? 할아버지가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아~ 살을 빼더니 저런 모습이 됐구나! 막 수술방으로 옮겨졌고 우두커니 대기 의자에 앉았다. 눈물이 났다. 그렇게나 시간 내서 놀자고 했는데 내 말은 하나도 안 듣고 뼈 빠지게 일만 하더니 이러려고? 안타깝고 불쌍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어쩌려고? 이러려고 그렇게 밤낮을 휴일도 없이 쉬지 않고 일했어? 더 악착스럽게 붙잡지 않는 내가 미웠고, 넌 일해라 난 놀란다. 하며 포기해 버린 내가 미웠다. 어쩌지? 수술은 잘 되고 있을까? 휴일이라 텅 빈 수술실 앞 대기의자에는 회사에서 오신 두 분과 나만 앉아 있었다.
2시간 정도 소요됐고, 지주막하출혈로 발생된 출혈을 제거하는 과정을 시술하고, 대퇴부로 조형제를 삽입해 출혈부위를 찾았는데 찾지 못했단다. 수술 경과를 전하는 의사 선생님이 놀란다. 목으로 가는 경동맥이 오른쪽 왼쪽 두 개가 있는데 그중 왼쪽은 완전히 막혀서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뚫지도 못한단다. 뭐야? 이 정도라면 전조증상이 있었을 텐데 보호자나 환자가 전혀 몰랐냐고 묻는다. 난 몰랐다. 그저 오른쪽 다리와 팔이 가끔 저리다고 해서 몇 년 전 진단받은 목디스크와 허리 디스크 때문이라고만 생각했고, 추나요법, 도수치료, 목 빼내기 등 열심히 했고, 그 후 걷기를 힘들어하던 남편이 잘 걸어 다니길래 그냥 디스크 외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열심히 살을 빼고 있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었다. 혈압도 정상이었고 밤낮을 일해도 힘든 기색을 안 보이니 건강하려니 했다. 믿은 내가 바보였구나!!! 노년엔 등 긁어줄 배우자가 곁에 있는 게 더 바랄 게 없는 행복이라던데... 어쩌지?? 계속 흐르는 눈물은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잘못되었을 경우 남겨질 나에 대한 연민이었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겨져서 3시간 정도 후 수술마취에서 깨어났고 통증으로 인한 반사적인 팔, 다리 움직임이 나타났다고 했다. 계속 심혈관계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해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하라고 했다. 면회도 안되니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서라도 듣고 싶었다. 외로운 병상에서 혼자 어떻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정말로 내게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어쩜 매일 야근하듯이 토요일, 일요일 회사에 나가서 혼자 일하던 열정을 자신의 투병에도 적용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난 밤 11시반 쯤까지 중환자실 병실 문 앞을 지키다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우리 집까지 3만 원이나 나온다. 내가 이런 택시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어 순간 갈등이었지만 내 몸엔 이미 집으로 갈 힘이 없었다. 그래 돈은 이럴 때 쓰는 거랬어.
다음날 큰언니와 집에서 출발해 전철을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집이 머니 1시간 반쯤 소요됐고 아침부터 힘에 부쳤다. 회사 직원이 숙소를 잡아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뿌리친 걸 후회했다. 맘속으로는 오늘부터는 숙소를 잡아서 가까이에서 있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옷가지 몇 개와 간단한 준비물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중환자실 앞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중환자실에 전화를 했다. 밤새 잘 잤는지? 별다른 호전 증상은 없었는지? 친절하게 응대하는 간호사가 고마웠다. 아침부터 본인 의지로 팔, 다리를 움직였고, 저녁 무렵에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눈을 떴단다. 그렇지만 사람을 응시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눈을 뜬것만도 어디야? 팔, 다리를 움직이는 것만도 어디야? 감사했다. 다시 나에게 돌아오려고 노력하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 떠날 땐 떠나더라도 이별은 제대로 해야지! 내가 남편을 사랑했는지? 그냥 오래 살아온 정인지? 아이들 키우며 함께한 육아 전우인지? 분간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남편은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올 때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2~3시간 간격으로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경과를 물었다.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말에 안도했다. 이 상태라면 다음날 인공호흡기를 뗀다고 하니 운 좋은 남편이 혼자 하는 싸움에서 꼭 이겨내기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