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에세이클럽
'장정일, 기형도, 이정록, 이성복, 유하...'
서재의 시집을 보다 온통 70, 80년대 시인들의 작품으로 채워진 것에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배우고 읽어온 시가 선생님들 세대나 윗 세대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대의 시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보고 이해한 시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것 아니었을까.
최근 읽은 시집의 작가의 면면은 문태준, 심보선, 한강, 허수경 어쨌든 나보다 윗세대이시거나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다.
시는 서정적인 것이나 일상 속의 작은 것에서 큰 감동을 주는 게 좋다.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인 시도 물론, 세계 문학과 세상을 위해 필요하지만 내 마음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시만큼은 전작주의자나 작가주의가 되기 힘들다. 시집 한 권이 품고 있는 모든 시의 완성도가 균일하지 않고 시집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그래서 시 한 편, 시집 한 권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더 높은 시의 세계로 나아가는데 나란 독자는 초기작이나 시 한 편을 고이고이 갖고 있는 것이다. 내게 그런 작가가 있고 그 중 한 명이 문태준 시인이다.
시라는 게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때가 있지만 내 삶에 녹아들 때 더한 감동을 주는 법이라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읽었던가, 한창 아프실 때 읽었던가. <가재미>라는 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하지만 최근 시집은 <가재미> 때와는 다르다. 작가도, 나도 늙었고 감정도 달라진 터라. 시어를 따라가는 맛이 서로 예전같지 않아졌다.
고로 최근작보다 예전작, 예전작보다 데뷔작을 선호하게 되었고 시인들이 세상에 갓 내놓은 첫 시집을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많이 받아왔다.
엊그제 인스타그램을 보다 창비 신인문학상 시 당선자가 2000년생이라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10대의 끝자락에 서 있는 청년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최근 시집을 여러 권 읽고 있는데 88년생, 85년생 시인이다. 추천해준 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두 권 다 첫 시집들. 물론 30대 초중반의 나이를 마냥 어리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시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세대다.
세상이나 시대에 대한 아픔보다 시선이 밖에서 안으로, '나'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게 이전 세대와의 차이라면 차이겠고. 작가가 느끼는 고통이 개인적인 감정에 빗대어 서술되다보니 공감하며 같이 아프기는 어려웠다. 꼰대 같을 수 있지만 요즘 시가 언어를 갖고 노는 게 예전과 달라진 게 뭐지? 미친 게 아니라 미친척 하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보다 잘 가공된 것을 보는 느낌이 컸다. 싫다는 게 아니다. 그저 비평적인 관점에서 보는 게 버릇일 뿐.
내가 배우지 않은 시, 처음 만나는 젊은 작가, 그야말로 요즘 시들을 읽어보려 한다. 시시한 세상 시집을 읽으며 시덥지 않게 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