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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Jun 08. 2018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사람들

만남과 이별의 도시 


 여행을 하는 동안 이별을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부다페스트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 이틀을 동행했던 한 한국인 오빠는 여행을 오기 직전에 여자 친구에게 차였다고 했고, 다뉴브 강변을 걸으며 자신을 버린 전 여자 친구를 향해 ‘나쁜 X’이라고 소리쳤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의 강에다 대고 소리치면 사무친 마음이 조금은 풀어질까. 그 시절, 아직 20대 초반이었고 절절한 이별을 겪어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차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난 후 이별을 처음으로 경험했을 때 나는 이상하리만큼 조금도 슬프지 않았다. 남들은 이별이 그렇게 슬프다던데, 누구는 헝가리까지 가서 나쁜 X을 외치고 왔는데, 정작 나는 조금도 슬프지 않아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벌써 함께 찍은 사진들이나 전화번호를 다 지워버렸다. 헤어진 다음날,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여전히 상쾌한 기분이었다. 자유의 몸이 된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며 배가 고파서 김치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밥이 눌어붙지 말라고 뜨거운 프라이팬 바닥을 긁는데, 그제야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한 달여를 틈만 나면 여기저기서 울어댔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이별을 더 겪으며 차라리 다뉴브강에 ‘나쁜 X’이라고 소리라도 칠 수 있었던 그 오빠가 부러워졌다. 나는 모든 것을 표출하지 않고 속에 쌓아두는 편이었다. 해가 지날수록 이별의 슬픔이나 삶의 고달픔, 먹고사는 문제 같은 것들이 내 안에 나이테처럼 계속해서 새겨졌다. 그래서 부다페스트를 떠올리면 언제나 그 오빠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나와는 정반대로 속에 있는 말들을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그 사람이 부러워서.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호스텔에서 만난 한 일본인 아저씨가 그 주인공이다. 나는 6인실 믹스 도미토리를 예약했었는데 숙소 측에서 예약이 꼬였는지 하루는 4인실에서 하루는 6인실에서 묵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다. 어차피 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6인실을 예약했는데 하루는 4인실에서 잘 수 있어서 나에게는 오히려 그 편이 더 좋았다. 4인실에 가니 그 일본인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는 나의 짧은 일본어, 아저씨의 짧은 한국어, 그리고 둘 다 짧은 영어까지 3개 국어로 그 호스텔에 묵는 이틀 내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아저씨는 여행이 좋아서 스무 살 때부터 프리터족으로 살며 1년 중 8~9개월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머지 몇 달은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아마 결혼은 평생 못 할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서로의 언어도 잘 모르면서 대화는 뭐가 그렇게 잘 통하던지 우리는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숙소에서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는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문화, 서로의 여행 이야기 등이었던 것 같다.  

 아저씨는 나에게 먹을 것들을 왕창 주기도 했다. 탄산수나 마카롱, 과일과 과자 같은 것들이었는데 넙죽넙죽 잘만 받아먹는 나를 보며 다른 일본인을 만나면 절대 그러면 안된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일본인 뿐이겠는가. 사실 외국에 나가면 좋은 사람도 많지만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거나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들은 숱하게 많았다. 같은 한국인 중에서도 말이다. 나는 경계심이 많은 여행자에 속했지만, 이 아저씨만큼은 어쩐지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처음부터 들었다.  

 아무튼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이틀 동안 아저씨는 나에게 배낭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털어 주었고, 속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도 털어 내었다. 나는 다음날 새벽 일찍 크로아티아로 떠나기로 했고, 아저씨는 나보다 하루 일찍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했다. 아저씨는 짐을 싸고 숙소 체크아웃을 일찍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가겠다고 숙소 문 앞에서 버티다 결국에는 기차 시간이 촉박해져서야 허둥대며 호스텔을 떠났다.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에서는 성별과 국적과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유독 마음이 맞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 가끔씩 나타나게 마련이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씩 이 아저씨가 여전히 그때처럼 결혼도 못하고 프리터 여행자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아저씨가 사는 방식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돈이나 직업, 명예 그리고 안정적인 삶 같은 것들에 크게 미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샌가부터 나의 꿈은 그냥 혼자 여행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도시가 생기면 몇 년 눌러앉았다가 또다시 떠나곤 하는, 그런 삶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7년 정도가 흘렀고 나는 유럽여행이 끝난 이후 몇 년간은 꿈꾸던 삶을 살았지만 요즘엔 어쩌다 보니 흘러오게 된 호주에 정착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도 가끔씩은 좀이 쑤실 때가 있다. 안정적인 생활은 안락하지만 내 안의 중요한 무언가가 결핍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가끔씩 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전히 헝가리에서 만난 이 일본인 아저씨가 떠오른다. 아저씨는 나와 달리 그때 꿈꾸던 삶을 여전히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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