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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Nov 02. 2020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이방인의 아이러니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호주에 살고 있다. 올해로 벌써 6년이 지났다. 어릴 때부터 여행하고 방랑하는 삶을 꿈꿔왔고, 외국에 살아보아도 좋겠다 싶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의 해외살이도 계획에 없던 일을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문화 속에서 '이방인으로서' 겪는 이질감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소속감과 안정감은 익숙하고 편안했지만 거기에는 펄떡이는 생동감이 없었다. 낯선 언어, 낯선 음식, 낯선 문화, 낯선 눈의 사람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주는 적당한 불편함이 좋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그러므로 의무가 없다는 자유로움도 좋았다. 짧은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그러나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결국 소통할 수 있다는 깨달음, 언어 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언어를 발견했을 때 느낀 희열도 있었다. 그런 일련의 이유들로 나는 모든 낯섦을 좋아했다. 


해외생활을 한 지 6년이 넘어가는 지금, 낯선 타국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내게 기분 좋은 불편함을 주지 않는 익숙한 곳이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일을 하러 가고, 퇴근길에 저녁거리를 사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주 5일 근무, 주 2일 휴무, 취미생활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원서도 읽지만 여전히 한국 책이 더 편하고 좋다. 휴일 전날에는 밀린 드라마를 보다가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고 늦게 일어난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음식점이나 카페들을 꿰고 있고, 이곳에 오래 살아온 이웃주민들과도 안면을 트고 지낸다. 고로, 특별할 것은 없어도 별 일 없이 잘 산다. 


그러나 아무리 호주에서의 삶에 익숙해졌다한들 한국에서 살 때 겪었던 익숙함과는 또 다른 이질감이 이곳에는 존재한다. 제아무리 이곳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 이방인이라는 것. 운이 좋게도 친절하고 내게 우호적인 호주인들을 많이 만났지만, 호주에서 사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나와 그들 사이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언어의 장벽? 문화 차이? 혹은 둘 다? 무엇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겠다. 

애초에 이민을 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때가 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늘 생각했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벽들을 느낄 때마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인가. 소속감이 없는 게 좋아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이제 그 ‘소속 없음’에서 공허를 느낀다. 





2020년, 코로나로 호주는 3월 말부터 국경을 폐쇄했다. 그래서 호주에서 일을 하는 한국 시민인 나는 당분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호주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한국에 가지 못한 지 3년째, 키워 준 할머니가 아파도 갈 수 없고, 친한 친구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단톡방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점점 늘어가는 걸 보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가에 관하여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여행을 하며 그토록 좋아했던 ‘이방인’으로서의 신분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태가 끝나고 세상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으면 떠나고 싶은 또 다른 낯선 땅들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야자수가 늘어진 해변가에서 하루 종일 늘어져있다가 저녁이 되면 맥주나 마시고 싶다. 고산병만 찾아오지 않는다면 만년설이 쌓인 산에도 오르고 싶다.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많음이 나를 계속해서 떠나고 싶게 만든다. 떠나와서는 돌아가지 못해 공허를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떠나고 싶어 하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어쨌거나 감사하게도 별 일 없이, 그러나 복잡한 마음으로 코로나 시대를 잘 버텨내고 있다. 모두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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