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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YSBE Oct 31. 2017

2-1.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부모와 교사는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묻기 전에 ‘학교’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짚어봅시다. 배울 학, 가르칠 교.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곳일까요?

  표면적으로 학교는 교과목을 가르칩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실과, 도덕. 이런 과목들 말이죠. 여기에 더해 초등학교에서는 ‘기본생활습관’을 가르칩니다. 바르게 줄 서서 가기, 밥 먹고 양치하기, 바른 자세로 앉기, 고운 말 쓰기 등 말이죠.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이것들 뿐일까요?


  교육학 용어에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표면적 교육과정은 문서상으로 명시되어 있죠. ‘이러이러한 지식을 가르친다.’라고. 문서상으로 명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의도적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것들도 함께 배웁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만 칭찬을 받으면, ‘100점을 맞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지!’, 체육 경기에서 이긴 팀만 보상을 받으면, ‘어쨌든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겠죠? 이는 교사들이 가르치고자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배울 수밖에 없는 것으로,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배우도록 ‘잠재되어 있는’ 숨어있는 교육과정입니다.

  잠재적 교육과정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주로 지식보다는 태도나 생각에 관여하면서 아이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인성이 공부보다 중요하다.’라고 이야기를 해도, 인성이 훌륭한 아이보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인정받는다면 아이들은 결국 ‘인성보다는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가치관의 형성은 지식보다는 경험에, 이상적인 말보다는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잠재적인 교육과정’이란 용어는 교사 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많은 생각을 던지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은연 중에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는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고개가 숙여지고 슬퍼집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어느 누구도 아이들에게 ‘학교 폭력’을 표면적으로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은 가정, 학교, 사회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앞선 장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인간 존중’보다는 ‘성과주의’, 협력보다는 경쟁을 중시하는 풍토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습니다. 거기에 더해 학연, 지연, 혈연 등의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고 사회 깊숙히 뿌리를 내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댈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죠. 더 무서운 것은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학을 떼면서도 ‘현실적인 것’, ‘으레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바꾸기 보다는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죠. 그 결과,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곳곳에서 인간 소외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는 스트레스 지수가 높으며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가정은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부모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이는 없습니다. 부모는 늘 자식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길 바라죠.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해본 결과, 이 정글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아이는 어려서부터 경쟁에서 이기길 바랍니다. 친구를 배려하고 도와줄 때 선물을 사주는 부모는 많지 않지만,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장난감을 사주는 부모는 많지요.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부모는 많지만, 아이가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피는 부모는 그에 비해 적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는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값진 물건을 사주고 용돈을 많이 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이미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학생들은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내면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학교란 어떤 곳인가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시험도 보고 성적도 나오게 되죠. 그리고 교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가르치며 소통하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더 많은 칭찬을 받게 됩니다. 시험 점수는 그 과목의 점수일 뿐인데 아이들은 마치 그 점수를 자신의 가치인 양 받아들입니다. 늘 낮은 성적을 받는 아이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늘 높은 성적을 받는 아이는 우쭐한 마음이 듭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모두 아이의 성격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가정, 학교, 사회가 가치관을 이제 막 형성해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남들보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 ‘공부를 잘 못하면 나는 가치가 없다.’, ‘공부를 잘 해도 연줄이 없으면 안 된다.’,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가치관으로 만들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가치관이 내면화 되면, 자연스레 타인은 ‘경쟁자’로 인식이 되고,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은 떨어지게 되겠지요. 공감능력의 저하는 쉽게 폭력을 야기합니다.


  최근 어린 학생들의 충격적인 학교 폭력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학교 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요.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다면,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 행동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학교 폭력을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높여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학교 폭력 사례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복잡성을 실감할 수가 있는데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그 전에는 피해자였던 사례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또한 그 이면에는 많은 경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좋아하는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가진 아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아이들은 자신이 전에 받았던 상처나 또래집단의 분위기가 무서워서, 그리고 인간 이해나 공감능력의 미숙으로 인한 무지가 원인이 되어 학교 폭력을 일으킵니다.

  그렇다면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합니다.

  악을 연구한 저서, <악의 심리학>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것으로 뇌의 어느 부분이 보통 사람들과 달라서 공감 능력이 일절 없다고 하죠. 그래서 감정의 동요 없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이코패스 기질을 타고나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든 일정 비율 존재한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서로 속속들이 잘 알고, 돕고 살아야만 하는 마을에서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타고나더라도 발현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요. 그러나 경쟁이 심화되고 인간소외가 팽배하게 된 사회는 사이코패스가 그 기질을 발현해서 그 사회의 리더로 성공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학교 폭력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사회 풍토가, 가정과 학교의 환경이 공감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쪽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사회 풍토는 개인이 바꾸기 어려운 것이므로 가정에서는 부모가, 학교에서는 교사가, 우리집부터 혹은 우리 교실부터 변화시켜야지! 라고 결심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착한 사람만 손해다!’라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여러 사회 학자들의 연구 결과, 지적 능력이 동일할 경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인성이 뛰어난 어린이가 학업이나 과제에서 성공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고 합니다.


  다시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해요. 내가 평소에 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돈 걱정을 많이 하면 아이들은 ‘무엇보다 돈이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전달 받습니다. 교사가 학급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칭찬을 많이 하면, 아이들은 ‘성적이 인성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지요.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에 지나치게 무섭게 혼을 내면, 아이들은 친구가 자기에게 잘못했을 때에도 똑같이 합니다. 용서를 배우지 못하고 분노를 배우는 것이지요. 반대로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고 많은 대화를 하면, 아이들도 친구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대합니다. 학급에 장애를 가지거나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을 때, 부모나 교사가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들도 그 친구를 다르게 대합니다. 아이가 내게 해준 작은 배려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더욱 배려를 하는 사람으로 자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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