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부모에게 가장 바라고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내 아이들을 낳은 거예요."
저는 연세가 있으신 여러 지인분들에게 이런 말을 듣곤 했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아이들입니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고민과 선택의 연속입니다. 부모 역할에도 연습 게임이 있다면 좋겠는데, 처음부터 실전입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때론 막막하기까지 합니다.
평범한 이들 모두가 하는 육아인데,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막막한 걸까요? 육아가 쉬웠던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현대 사회 육아만의 독특한 특징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부모가 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갑자기 부모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과거 어느 시대에도 부모 교육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시대는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특별히 더 부모가 되는 것에 무지한 채 부모가 됩니다. 과거에도 아무 준비 없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을 부모가 다 돌볼 수 없어 첫째나 둘째 아이는 아래 동생들 육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마을 공동체에서 아기들이 커가는 것을 오며 가며 지켜본 간접 경험들이 있었죠.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현재 부모 세대는 하나나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기에 태어나 동생들 육아에 참여한 경험도 없는 데다가 개인주의가 심화된 시대에 나고 자랐습니다. 아기가 커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세대가,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가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란 세대는 "육아를 뭘 배워야 하나, 낳고 나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전혀 보고 자라지 못한 세대에게 부모 교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육과정을 이야기할 때 언급했던 것처럼 고등학교의 필수 과목이 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금쪽같은 내 새끼'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입니다. 부모 교육을 받지 못하고 부모가 된 이들에게 절실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개인주의의 심화로 마을 공동체의 부재 속에서 육아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요. 아이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만의 힘으로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었을 때는, 부모가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볼 상황이 되지 않더라도 마을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아이가 심심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밖에서 일을 하고 엄마가 집안일을 해도 형제나 대가족, 더 나아가 이웃들이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우리 아이는 방치해도 잘 자랐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공동체에서 상호작용을 할 곳이 많았던 거예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방치하면 아이가 종일 기계나 장난감하고만 상호작용을 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공동체가 있지만, 과거의 마을 공동체에 비해 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누구나 속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문제는 심각합니다. 학교에 진학을 하면 학교가 마을 공동체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는데, 더 어린아이들은 친구를 만드는 데에도 엄마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문화 센터, 축구 교실, 체험학습 공동체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육아를 함께 하는 이웃을 사귈 수가 있어요. 아이 스스로 자연스레 친구를 만날 환경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셋째로 정서가 형성되는 어린 시절, 주양육자가 혼란스러운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육아를 도와주는 시스템이 발전하고 있고, “육아는 템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육아 아이템들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런 시스템도, 아이템도, 재미있는 장난감도 아닙니다. 주양육자의 일관되고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양육자와 보내는 시간입니다. 부모가 모두 일을 하는 경우, 아이는 베이비시터 아주머니, 조부모님, 해마다 바뀌는 어린이집 선생님 등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운이 좋아 부모처럼 사랑해주는 분을 만나 자라는 동안 쭉 함께 할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요. 그러나 많은 경우 여러 사정으로 봐주는 분이 어린 나이에 수차례 바뀌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주양육자가 수차례 바뀌면 애착 형성에 문제가 생기고 정서가 불안정한 아이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서가 불안정한 아이들이 많아지면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합니다. 작게는 불행한 가정이 많아지고, 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이나 학습에 대한 무기력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사회 정서가 불안해지고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커져 바로잡는 데 까지는 많은 시간이 들겠지요.
넷째로 부모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부모 세대가 살아온 시대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들 합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이고, 한없이 큰 존재이지만 부모 역시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답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 세대에게 유망했던 직종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미래에 대해 경험이 없기는 부모나 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살아보거나 간접적으로라도 본 적이 없는 길을 자식에게 안내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합니다. 과거처럼 공부 열심히 시켜서 대학만 잘 가면 되는 게 아니란 건 부모도 압니다. 그러나 대안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르니 자신이 아는 길인 공부라도 강요하거나, 주변 말만 듣고 좋다는 건 다 시켜보려고 하지만 “왜 그걸 해야 하나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하는 대로 두고만 보자니 불안합니다. 아이의 뜻에는 반대하면서 아이 입장에서 제대로 된 대안이나 조언을 제시하지 못하니, 아이는 부모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고 부모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이렇듯 현대인들에게 육아가 막막하다 보니, 온갖 정보와 아이템이 쏟아집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몰라 더 헤매고 혼란스럽게 됩니다. 이때 중심을 잡기 위해 생각해 볼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이 만약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부모님이 어떻게 자신을 대해주길 바랄까요?
6장 “부모의 역할에 대해 묻다”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모란 어떤 부모인지 그 역할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