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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Oct 12. 2023

왜 공공기관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을까?

스윗스팟과 떨어진 공



'스윗스팟(Sweet Spot)'이라는 스포츠 용어가 있다. 테니스나 야구와 같이 채를 사용하는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라켓이나 방망이의 특정 부위에 공이 맞았을 때, 가장 빠르게 가장 멀리 날아가는 현상을 뜻 한다. 스윗스팟에 맞아떨어지면 힘을 들이지 않고도 명쾌한 소리를 내면서 공이 멀리 날아간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이러한 스윗스팟이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기다렸던 적이 있다. 숙련된 기술을 연마하다 보면, 딱 들어맞는 순간이 찾아오리라고 내심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공무원이 아니었던 나는 공을 제대로 쳐볼 기회조차 갖기 힘들었다. 언제까지 떨어진 공만 주워 담으며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리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부정했다. 단순하고 무료하지만 달콤한 안정감. 그러나 떨어진 공만 줍고 있는 나 자신에게 느껴지는 씁쓸한 비루함이 퇴근 후 지친 마음에 매달려 나를 매일 괴롭혔다.





사회생활을 공공기관에서 처음 시작했다. 아무 경력도 없던 나에게 이름 있는 기관에서의 첫 시작은 이력서 한 줄 외에도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을 일찍이 알았다. 


9개월짜리 육아휴직 대체 계약직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관심사가 닿아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사보를 편집하고 글을 다듬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나 9개월짜리 공공기관 경력은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서 더 높은 곳으로 점프할 수 있었다. 무려 정부기관, 정부청사에서 공무원들과 일하면서, 나 또한 단단해져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학력이 서울대인 곳. 이곳에 출입하는 기자들 학력 또한 스카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곳. 수없이 많은 기자들을 만나면서 기자들을 대하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던 곳. 월 최대 52시간의 초과근무 시간을 다 채우고도 초과근무를 해야만 했던 곳(당연히 52시간 초과되는 시간의 근무수당은 지급되지 않았...) 


그러다 세종시로 이전이 확정되면서 출퇴근이 막막해진 나는, 이 디딤돌을 발판 삼아 또 다른 정부기관으로 옮길 수 있었고 이 기관에서 7년을 쭉 일할 수 있었다. 


공무원들과 일하면서 어느새 나 또한 반공무원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무렵, 이대로 정말 괜찮은지 늘 나에게 묻곤 했다. 


내가 작성한 문서들이 공무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달고 나갈 때마다.

아이디어나 의견을 말해도 묵살되거나, 위에 보고된 후에 순식간에 뒤집힐 때마다. 

내가 하는 일들이 우물 안에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진짜 '내 일'을 찾고 싶었다. 

이 '안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멀리 날아보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일이면서 직급의 한계도 없이, 제안하면 다 같이 논의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재빠르게 실행해 결과로 내놓는 '스타트업 에디터'는 나에게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워킹맘인 나에게 '재택근무'라는 자유로운 업무 방식은 완벽에 가깝게 포장되어 나를 자극했다. 무작정 보내본 이력서는 그렇게 나를 스타트업 세계로 이끌었다. 


그러나 '스윗스팟'에 도달했을 때 공은 최대한으로 찌그러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스타트업 세계에 발을 들인 후에야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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