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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Oct 16. 2023

MBTI 모르면 일을 못해요

스타트업=MBTI

"쵸님, MBTI가 뭐예요?
"... 잠시만요, 찾아보고 알려드릴게요."



: MBTI를 모르는 가장 나이 많은 직원

스타트업에 입사하고 직원들과 처음 인사를 나눈 뒤, 가장 많았던 질문은

"MBTI가 뭐예요?"였다.

그때 나는 나의 MBTI를 겨우 알고만 있었고, 외우지 못해서 찾아보고 알려준다고 하니 다들 말은 못 했지만 미묘하게 표정이 흐트러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얼마나 할머니 같았을지... 이불킥 감이다.

스타트업 열 번째로 입사한 나는, 나이가 가장 많은 직원이었다. 심지어 대표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스물 중반에서 후반인 직원들 사이에서 서른 중반인 나는 어려운 직원이었으리라. 그런데 MBTI까지 모르는 선비 같은 사람이 들어왔으니 다들 이상했지만 내색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 변명을 해보자면

공공기관의 특성상 지방에는 신규직원들이 많이 배치되고, 본부에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직원들이 배치되곤 한다. 본부에서 일했던 나는 연령대가 높은 집단에 속해있다 보니 MBTI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다. 몇 번인가 테스트를 해보려다가 너무 긴 문항들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에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길 여러 번. 지인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한 번 끝까지 테스트해 본 것이 다였다.


: 인적사항에 MBTI를 적는 칸이 있다?

강렬했던 첫인사 후, 충격적인 상황은 또 한 번 펼쳐졌다. 직원 인적사항을 적는 리스트에 MBTI를 기재하는 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랴부랴 내 MBTI를 찾아 기입해야 했다. 게다가 격주마다 소통을 위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MBTI로 팀을 나누거나, MBTI 궁합을 봐주는 등의 MBTI의 활용은 무궁무진했다. 그 후에도 계속 MBTI 없이는 소통이 안 되는 스타트업 세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MBTI 모르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디터의 업무였지만, 마케팅팀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트렌드에 민감해야 했다. 트렌드와 거리가 멀었던 공공기관에서의 삶과 전혀 다른, 우주 반대편으로 떨어진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고, 결국에는 나 또한 MBTI의 특성을 줄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임신부 MBTI>> 마케팅에 합류하여 임신부의 MBTI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나갔다. 유저들도 MBTI와 관련된 마케팅이나 이벤트에 열광했다. MBTI는 치트키였다. 열광하는 흐름 속에 나 또한 MBTI에 심취하면서 스타트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다른 세계의 문을 열다

스타트업의 장점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빠르게 실행하고 빠르게 실패하며, 또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아직 나도 젊다고 생각했는데, 10살 가깝게 차이나는 스타트업 동료들 사이에 어설프게 끼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도 재밌었지만 그만큼 멀어져 있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했다. 스트타업을 이해 없이 발을 들인 대가는 혹독했으나, 다른 세계의 문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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