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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Oct 22. 2023

사과장사를 시작하다


1988년 3월 10일 맑음 목요일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니 구수한 냄새가 가득 퍼져 있었다. 사과쨈 냄새였다. 우리 집에서 사과를 팔기 때문에 과일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우리는 사과쨈을 퍼먹기도 하고, 빵에 발라먹기도 했습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빠의 따뜻함과 엄마의 정성이 합하여 된 맛 같았습니다.    

  

*     


1987년 여름, 아빠는 해고된 직후 오토바이를 끌고 집을 나갔다. 그러곤 한 달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전자’라고 부르던 전자부품 만드는 부업을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서 엄마가 전자를 하고 있었고, 잠이 들 무렵에도 작은 조명 아래에서 고개를 숙인 채 부품을 조립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뭔가를 하라는 지시와 명령 이외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종종 놀러 오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발길이 뜸했다. 학교를 마친 후엔 나도 엄마의 맞은편에 앉아 전자를 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법이 없었지만, 전자를 하는 건 막지 않았다. 오히려 잘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시기 엄마의 관심은 오직 전자를 많이 하는 것뿐이었다. 가출한 아빠에게 연락할 길은 없고, 그가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를 영영 버린 건지도 모른다. 엄마에겐 어린 세 자녀가 떠맡겨졌다. 엄마가 아무 표정 없이 전자에 맹렬히 파고드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은 한없이 아슬아슬했다. 엄마가 지쳐 쓰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한편으론 엄마와 아빠가 다투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아빠가 없는데 편안함을 느끼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죄스러웠다. 좋은 사람이 되긴 벌써 다 그른 것 같은 기분. 하긴,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까짓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나에게 갖는 기대는 딱 이 정도였다.     


8월 한 달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아빠의 부재는 함부로 말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다. 나를 압도한 그 비밀을 뚫고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8월 말, 밤중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 혜숙 아빠!     


엄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가 언니에게 말했다.     


- 아빠 오시면 보고 싶었다고 말해. 그리고 안아 드려.     


언니는 충실히 수행했다. 훗날 그날의 감정을 두고 “굴욕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듬해 봄, 아빠는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트럭을 한 대 샀다. 그리고 푸른색 아오리 사과를 팔러 다녔다.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사과는 점점 썩어가고 옆집에 주고도 사과는 남아 돌았다. 자존심이 강한 엄마는 다른 이웃에겐 사과를 주지 않았다.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남들에게 재확인시키는 건 너무 씁쓸한 일이니까. 대신 엄마는 사과의 곯은 곳을 도려내 사과잼을 만들었다. 일기에 쓴 것처럼 처음엔 사과잼이 너무 맛있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사과와 사과잼에 완전히 질리고 말았다. 더 열심히 먹지 못해 엄마에게 미안했다. 마당 한쪽 퇴비장에서 풍겨 오는 사과 썩는 냄새를 아빠와 엄마가 맡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을 지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모든 건 그들에게 달려 있다는 걸 알 만큼, 나의 무언가가 부쩍 자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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