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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Oct 22. 2023

부모님의 싸움을 기록하다


1988년 3월 15일 화요일 흐림     
(앞부분 생략)     
아빠와 엄마가 미웠다. 그래서 조기청소(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4학년 때에는 계속 갔었는데... 어두운 밤이 되자 경찰이 왔다. 싸움을 말리고 잠자리에 들게 했다. 다행히 싸움이 끝났다. 언니의 다리가 멍이 들어 있었다. 엄마의 턱 옆에도 피가 났다. 나는 아빠가 미웠다. 나는 크더라도 이런 싸움은 하지 않아야겠다. 엄마와 아빠가 우리에게 먼저 모범을 보여야 되는 건데... 오늘은 어젯밤의 비참한 싸움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     


전날 큰 싸움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일기장에 부모님이 다퉜다는 이야기를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걸 다 썼더라면 ‘난중일기’ 시리즈가 되었을 거다. 그러니 이날의 일기는 내 인생 최초의 가정폭력 현장 기록이다. 그런데 묘사가 자세하고 생생하다. 이 글에 싣기 주저할 만큼이나. 35년 만에 일기를 읽으며 이 디테일에 무척 놀랐다. 왜 이렇게 다 드러내놓은 거지? 그것도 갑자기? 그러다 뒷장을 읽고서야 이유를 알았다.     


조기청소. 4학년부터 6학년까지 매월 15일이면 7시까지 학교에 모여 주변을 청소했다. 의무는 아니고 학교 근처에 사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 행사엔 무조건 열심히 참여하는 걸 좋아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려면 전날 엄마에게 일찍 깨워달라는 이야길 해야 한다. 그런데 전날 부모님이 크게 다투는 바람에 처음으로 조기청소에 가지 못했다.     


그냥 평소처럼 ‘평범하게’ 치고받고 접시 깨부수는 싸움이었다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엄마에게 살짝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잊고 넘어갈 수 있는 규모의 싸움이 아니었다.     


나는 조기청소에 가고 싶었으나 갈 수 없었던 이유를 선생님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다퉜다고만 써도 되었겠지만, 그냥 다투는 건 적어도 내겐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의 싸움이라면 다음날 조기청소가 아니라 수학여행이나 소풍도 거뜬히 다녀올 수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세계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하고 절실하게 상황을 알리는 방법으로 나는 일기를 택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날의 일기를 언니에게 전화로 읽어주었다. 싸움을 묘사한 앞부분을 읽을 땐 덤덤했다가, 조기청소 대목에서 둘 다 눈물이 터졌다.     


- 조기청소가 그때 우리 상황을 딱 보여주는 것 같네.     


할 마음이 없거나 하기 싫어서, 때론 능력이나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저히 할 수가 없어서 못 하는 일이 우리에겐 많았다. 부모님이 다투는 시기엔 명랑하게 웃으며 친구와 친절한 인사 주고받는 게 너무 어려웠다. 친구의 부탁을 곱게 들어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저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불안을 누르는 데 온 힘을 다 쏟는 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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