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직계비속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기군 Aug 11. 2021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무엇?

붐비는 서울역 앞 광장에서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굳이 두리번거리지 않았던 것 같다.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카키색 가디건을 걸친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총총 달려오고 있었다. 상대방도 나를 단번에 알아봤을까. 사뿐사뿐도 아니고 쉭쉭도 아니고 으라차차도 아니고 분명히 총총의 느낌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방금 기차에서 내려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군중 속에서 이상하게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컬러가 더 선명해 보였다. 서울역에 내려 어떻게 찾을까 했던 걱정은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한눈에 찾은 그 사람은 총총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방학이었는지 봄방학이었는지 기억은 가물거린다. 고2 겨울이었다는 배경만 기억난다. 아무튼 그 친구와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학원 때문에 서울에서 방학 동안 잠시 지내고 있었다. 경부선 기차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아무런 연고도, 친척도 없는 도시.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 유학 오고 싶은 도시. 신림이면 더할 나위 없고, 신촌이면 땡큐고, 왕십리여도 감지덕지였다.


친구와 만나 서울을 하루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이른바 2호선을 타고 둘러보는 ‘캠퍼스 투어’. 친구의 안내로 뉴스에서만 봤던 ‘샤’ 모양의 정문도 가보고, 독수리 동상이 있는 학교에도 가봤다. 대학교 캠퍼스도 서울역 광장만큼 무척 넓었다. 산허리가 통째로 학교였다. 건물도 많고, 길도 넓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살펴보고 갔음에도 신선하고 신기했다. 그럼에도 그날 기억에 남은 장면은 하나였다. 총총거리던 그 사람. 


회전목마는 놀이동산의 꽃이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접근성이 높아서일까. 주말의 서울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전목마가 멈추고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중 아내와 둘째 아이가 멀리서도 바로 보였다. 나는 첫째를 데리고 다른 놀이기구를 탄 후 아내와 둘째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꿈과 희망의 놀이동산답게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가족들이 엄청 많았다. 둘째는 탈 수 없는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첫째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팀으로 나뉘어 놀이기구를 타긴 했는데 어떻게 와이프를 만나러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만나자’고 따로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줄을 오래 섰다면 아직 회전목마를 타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벌써 회전목마를 타고 다른 놀이기구에 줄을 섰을 수도 있었다. 라바 캐릭터 모양의 비행기를 타고 내린 후 부랴부랴 회전목마 쪽으로 갔는데 시선에 보이지 않는 줄이라도 달린 것일까. 내가 찾던 사람들이 바로 보였다. 얼굴의 일관성이 매우 높은 모녀였다.


어린이집에서는 정기적으로 온라인 게시판에 아이들 활동사진을 업로드해준다. ‘당신의 자녀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를 보여주는 일종의 가정통신문이다. 게시판 속 사진에는 스무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뛰어다니고 있다. 사진 속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장난감을 만들고, 근처 놀이터에 가고, 하천에 나가고, 뒷산에도 가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중 내 자식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 있고 저기 있고 요기 있다. 사진마다 콕콕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아이를 찾는다. 찾는다는 표현은 조금 거창하다. 그냥 내 자식은 콕 보인다. 아이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두 눈만 빼꼼 내놓고 있는데도. 쌍꺼풀의 유무와 성별이 큰 차이일 뿐 다른 요소는 대동소이한데도. 소지품에 남은 체취만 맡고 흔적을 찾는 탐지견처럼 거침이 없다. 만약 다른 집 아이 사진을 보여주고 그 아이를 찾으라면 쉽게 구별할 수 있을까.


부모와 자식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유전자를 공유해서? 24시간 365일 함께 지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관심을 가졌으니까? 별로 관심 있는 주제는 아니었는데 아내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니 ‘연결’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접촉 빈도는 답이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 찍은 워크샵 단체사진도 몇 년 지나고 나서 쳐다보니 등장인물들을 ‘이게 누구였더라’ 하며 한참 생각해야 했다. 하루 10시간씩 옆자리에 앉아 봤던 사람들인데. 물론 접촉 빈도는 높았을 뿐 관심도는 매우 낮았지만.


엄마와 아이의 연결은 (당연히) 아빠와의 연결보다 더더욱 강(한 듯)하다. 하루는 아이들이 거실에서 놀고 있었고 아내와 나는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대답을 하며 거실로 나갔다. 아이가 불렀다는 것이다. 나는 못 들었는데...... 알고 보니 정말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고 했다. SKT, KT, 유플러스에 배정된 통신사 할당처럼 아이와 엄마만 연결되어 있는 별도의 주파수 대역이 있나 보다. 하긴 나도 어릴 적 엄마를 찾으면 엄마는 주무시다가도 대답을 하며 일어나시긴 했지. 나는 잠이 들면 아이가 웃어도, 울어도 듣지 못하는데......


반대로 아이들도 그럴까. 아이들도 아내와 나를 한눈에 알아봐 줄까. 놀이동산에서, 마트에서, 장소가 어디든 사람이 많은 어디에서도 아이들은 부모를 금세 찾아줄까. 금방 찾고 부모에게 총총거리며 뛰어올까. 꼭 그랬으면 좋겠다. 꼭 아내를 보고, 나를 보고 웃으며 뛰어와 주면 좋겠다. 소소하게 테스트를 해보자. 아이들을 부르고 앨범을 펼쳐야겠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 아래서 찍은 수학여행 단체사진을 보여줘야지. 20년 가까이 된 필름사진. 약 240명의 모습이 담긴 이 사진 속에는 나도 있고 아내도 있다. 어딘가에. 얘들아, 엄마 아빠를 찾아줘.

매거진의 이전글 얼음으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