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농가맛집 방문기
우리나라 농업 농촌 정책의 많은 부분이 일본을 벤치마크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의 정책이 그대로 이식되었던 것의 영향도 크겠죠. 때문에 쉬웠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지만, 반면에 일본 농업농촌의 한계와 문제도 고스란히 이식되었습니다.
제게 이번 일본 농촌 여행은 의미가 컸던 게, 우리가 따라 하고자 했던 일본의 모습, 그 원류를 볼 수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일본에서 학위를 해서 일본에 대한 이해가 높고, 우리나라에서 농촌정책과 6차 산업이라는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인 연암대 채상헌 교수님이 기획을 했으니 더더욱 그랬죠. 무조건 따라나서야 헸습니다.
여행을 갈 때는 사전에 아무런 정보를 보지 않고 가기도 합니다. 일부러 채교수님이 보내주는 자료를 하나도 안 봤습니다. 완전히 낯선 눈으로 아무런 편견 없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식이 모자라지는 않을 것이기도 하고, 어차피 다녀와서 다시 볼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이번에 소개할 곳은, "Farmer's Cafe 채"입니다.
다카마쓰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농촌마을인데, 어지간한 농촌이 아니고 정말 깡촌입니다. 큰 마을도 없고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산으로 둘러싸인 농촌입니다. 2시에 예약하고 방문을 했습니다. 농가와 이야길 나누려면 점심시간이 마무리되어야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야채밥, 수프카레가 전부입니다. 주변에서 나는 식재료를 주로 사용해서 만듭니다. 음식은 채식이 중심인 집밥 정도의 느낌인데 훌륭합니다. 차와 디저트도 훌륭하고요. 그렇지만 이 음식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갈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와 특별한 식사를 기대한다면 충분히 먼 길을 달려갈 만한 곳입니다. 잊지 못할 추억 하나는 가지고 가겠죠.
밥을 먹고 나서 손님이 뜸한 시간에 주인 부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농번기에는 농사에 집중하고, 농한기 그것도 주말에만 (대체로) 예약제로 식당을 운영합니다. 그냥 갈 경우 야채밥이 있으면 먹을 수 있지만, 수프카레는 예약을 해야만 가능합니다. 여기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아마도 "생명의 낙원"이라는 잡지에 소개된 걸 보고 많이 방문한다고 합니다. 일상을 벗어나 다른 삶, 다른 우주를 경험하고 싶은 분들이겠죠.
저는 밥을 먹은 후 주변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마을이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인데, 주변에 서너 집이 있었지만 들에는 일하는 노인 한 분만 보였습니다. 인근 마을까지 걸어가 봤지만 적막함과 쓸쓸함만 느껴졌습니다. 겨울철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죠. 솔직히 이 주변 전체가 조만간 사라져 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를 가보고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정리가 잘 안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 사회의 깊은 속살을 잘 모르니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고, 대화를 복원하고 일행과 새벽까지 토론하던 걸 소화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곳을 보면 전형적인 농가입니다. 가정집을 손님을 받을 수 있도록 살짝 손을 본 느낌입니다. 돈을 열심히 벌겠다라는 생각은 애당초 없는 듯했습니다. 그냥 소박하게 조금 나아가는구나 싶은 정도랄까요. 우리나라에서도 농가맛집이라고 지정한 곳이 더러 있지만 약간 느낌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기대했겠지만 제가 가본 대부분은 작정하고 식당 영업을 하는구나 싶더군요. 이건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과 주체가 달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 "무리하지 마세요"라는 표현이 정말 많이 나옵니다. 전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無理をしないで" 방식이 삶의 전반에 녹아있는 사회와 빨리빨리가 모토인 사회의 확연한 차이도 보게 됩니다. 뭐가 낫다가 아니라 다른 것이죠. 그러니 같은 귤나무를 심어도 다 귤이 자라는 건 아닌 거고요.
이러한 접근방법이 농촌을 유지하고 도시와 접점을 만들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될까?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농가맛집을 운영할 수 있는 분들은 도시에서 요식업에 종사하던 분들 정도겠다 싶습니다. 귀촌한 분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 영역이겠죠. 그런데 그분들은 도시의 식당을 농촌에 옮겨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기대와는 많은 차이가 나죠. 일본과는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할 텐데, 그 정도의 고민이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는 생각은 솔직히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종갓집 같은 한옥이 있는 곳은 약간 다른 결과를 내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서로의 기대를 충족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Farmer's Cafe 채"처럼 농업과 병행하는 부업 정도의 개념을 가지고 무리하지 않으면 가장 이상적일 텐데, 우리나라의 개념에서는 난이도가 꽤나 높겠다 싶습니다. 전업으로 야무지게 하는 게 아니면..... 제 느낌은 그랬습니다. 낭만은 좀 덜어내고 냉정해질 필요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1) 파머스 카페 채를 소개하는 홈페이지
(2) 채상헌 교수의 브런치에 소개된 방문전 조사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