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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국내여행

음성을 남기고 싶어서

목소리 없는 음성 기록

by 트래볼러
경기도 이천과 맞닿아 있는 충북 서북단 음성에 다녀왔다.
아니, 다녀왔다는 말보다는 들렀다는 표현이 맞겠다. 반나절 여행이었으니까.
반나절로는 조금(많이) 부족했던, 목소리 없는 음성 기록이다.



충북 최초의 성당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무교지만 성당 구경은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무 성당이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이나 명동성당, 전주 전동성당처럼 서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을 좋아한다. TMI지만 유럽여행을 가면 숙소 주변을 걸어 다니며 동네 성당 도장깨기를 하는 게 여행루틴이자 필수 여행일정 중 하나다.

음성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 찾던 중 마침 서양식 성당이 있어 이곳을 음성여행의 시작점으로 잡았다. 위치도 경기도 이천과 맞닿아 있는 음성의 최북단이라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는 음성이었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 매산 자락 아래 위치한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이다.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은 충청북도에서 최초로 설립된 성당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라는 감투도 쓰고 있다. 멀리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높고 뾰족한 첨탑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서양의 고딕양식. 제대로 유럽 냄새가 난다. 거짓말 조금 많이 보태서 주변 풍경은 날려버리고 성당만 보고 있으면 마치 이곳이 충북 음성인지 유럽의 어느 소도시인지 착각이 들정도. 물론 서양식 성당을 아주 좋아라하는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니 참고만^^;;

유럽의 대성당 같은 웅장함은 없었지만 대신 아담하고 아늑한 매력이 있었던 본당 내부
매괴박물관은 구 사제관을 개조하여 만든 충북 최초의 석조건물로 역사적인 서적과 가톨릭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짜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
매괴쉼터에는 성물숍과 카페가 있다

시골(?)에 있는 성당이라 아담하겠거니 싶어 성당 한 번 스윽 둘러보고, 인증숏 찍고, 본당에 들어가 잠시 기도드리고 나오면 아무리 천천히 돌아다녀도 30분이면 족할 줄 알았다. 하지만 미리 스포하자면 성당을 떠나면서 시계를 봤을 때 이미 1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일단 주차장부터 관광버스 여러 대가 주차를 해도 남을 만큼 전체적으로 넓은 부지를 자랑했다. 그 말인즉슨 각 스폿 to 스폿 간 이동거리가 짧지 않다는 얘기. 만보기가 있다면 전원을 켜두자. 가벼운 산책 코스보다는 가벼운 걷기 운동 코스에 더 가까울 테니까. 성모순례지답게 매괴박물관, 매괴쉼터, 성모광장, 십자가의 길, 가밀로 영성의 집, 가밀로 신부의 묘까지, 모두 성당은 물론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함께한 곳들이라 한 번쯤 둘러볼만하다.

최후의 만찬 스테인드글라스
성모광장
성모동굴 속 수난받은 성모님상
고행길;;;
신부님! 고행길을 올라왔으니 가르침을 주십셔!
가본 적은 없지만 유튜브로 봤던 브라질 예수상이 떠올랐다. 살짝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나 할까?
INRI, 라틴어 ‘IESVS NAZARENVS REX IVDÆORVM’의 약자로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뜻.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을 때의 죄명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딱 하나를 꼽으라면 십자가의 길을 추천한다. 매산(161.8m) 등산로이기도 하다 보니 약간의(?) 고행길이 기다리고 있지만 길지 않아 충분히 견딜만한 고행이고, 특히나 정상에서 만나게 될 예수상이 고진감래의 묘미를 제대로 경험하게 해준다.

예수상을 봤다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고 예수상을 지나 반대편 길로 하산하자. 중간에 임 가밀로 신부님의 묘까지 덤으로 만나 볼 수 있다. 묘를 지나 계속 내려오면 매교박물관과 매교쉼터 사이의 등산로로 하산하게 된다. 고행을 마치고 하산했으니 이제 매교쉼터에서 성물쇼핑과 커피 한 잔으로 잠시 쉬어가자. 에너지가 충전됐다면 바로 옆 매교박물관에도 잠시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나가는 길에 가밀로 영성의 집을 거쳐서 나가자. 그러면 성지순례 완성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십자가의 길로 가는 길에 성모광장을 지나게 될 수밖에 없기에 결국엔 매괴 성모순례지를 한 바퀴 돌며 다 둘러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말이다. 이게 내가 십자가의 길을 추천하는 이유다.

임 가밀로 신부님의 묘
가밀로 영성의 집
역대 본당 주임 신부님들
가밀로 영성의 집에서 바라본 성당



변기 천국

라바크로 카페


통유리창에 높은 층고, 빵과 커피는 물론 브런치와 맥주까지 가능한 대형카페들이 그야말로 대유행 중이다. 개중에는 크기만 큰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인스타 갬성 시그니처 메뉴나 독특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곳들도 있다. 하지만 워낙에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어느 정도 테마가 겹치는 곳들도 당연히 존재하기 마련. 그런데 이런 카페는 전국 팔도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일명 변기카페. 실화인가? 콘셉트가 변기라고? 혹시 내가 아는 그 변기 말고 또 다른 의미의 '변기'가 있는 걸까? 순간 내 한국어 어휘력이 의심돼 혹시나 싶어 사전을 검색해 봤지만 역시나 변기는 우리가 아는 그 변기뿐이었다.

변기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바크로 카페는 '보여주고 싶은 욕실'을 모토로 욕실과 욕실용품을 생산, 가공하는 인터바스(주)에서 운영하는 이색카페다. 카페 주소로 찾아가면 대형창고와 공장단지 입구에 도착하게 되는데 어리둥절해할 필요 없다. 주소만 정확히 입력했다면 거기가 맞으니까. 실제 공장단지 안에 있다.

약 15,000평에 달하는 이곳은 일종의 거대한 전시관이다. 이름하야 바스 엑스포(BATH EXPO). 화장실 테마파크다. 사실 라바크로 카페가 주인공인 곳이 아니라 세계 다양한 브랜드의 욕실용품이 전시된 욕실 전시장, 견학 체험관, 박물관들이 찐 주연이라 볼 수 있겠다. 카페가 변기의 덕을 많이 본 덕분에 변기가 압도적으로 부각되어 그렇지 엄밀히 따지면 욕실테마카페인 셈이다.

공장 부지가 넓어 주차장도 넓다는 것 또한 장점 (왼쪽에 저분이 대표님이란다)
창고 건물 벽을 활용한 변기 전시
서로 등 돌리고 볼일 보는 배트맨 앤 캣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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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변기들 (축구공 변기는 손흥민 헌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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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전시관마다 테마가 있고 변기 뿐만 아니라 욕실 타일 전시도 있다
앤티크한 문양의 타일과 미니어처 변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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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크로 카페로 가는 관문

카페 앞 야외는 변기테마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곳곳에 파라솔과 테이블이 있는데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의자가 모두 변기다. 변기 위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과 브런치. 어쩌면 화장실에서 남몰래 무언가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은 마시라. 군대에서 초코파이 화장실 취식을 종종 해본 경험자로서 무언가를 먹기에 변기가 제법 편하다. 그리고 여기는 야외라 냄새가 안 나니 전혀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겠다.

정원 중앙에는 수영장 타일이 도넛처럼 동그랗게 둘러져 있다. 경주의 포석정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여름 시즌한정으로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물을 채운다고 한다. 너비와 깊이가 어른들은 딱 발 담그고 앉아서 쉬기에 적당하고, 어린이들은 수영복 입고 안에 들어가 놀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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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앞 도넛 수영장

정원에서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건 자칭 세계최초라 자랑하는 변기타워다. 같은 모양의 변기를 같은 방향으로 오와 열을 정갈하게 딱 맞추어 자칫 딱딱하게 다가올 수 있는 디자인을 알록달록한 색으로 커버했다. 모서리에서 보면 피라미드처럼 세모지게 사선으로 칠해져 있고 진한 원색과 부드러운 파스텔톤이 적절히 섞여 있어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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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크로 카페는 카페도 되고 음식도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향긋한 커피향과 맛있는 냄새가 동시에 코를 자극한다. 여느 대형카페와 다르지 않게 통유리창으로 바깥 풍경이 훤히 보이고 층고가 높아 답답함이 없다. 반면에 여느 대형카페와 다른 건 카페든 음식이든 라바크로만의 시그니처 메뉴가 따로 없다는 것.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마르게리따 피자와 베이컨 크림파스타를 먹어본 사람으로서 맛은 평균이상이었으니까.

특히 카페 구석에 있는 화덕에서 직접 구워 나온 피자는 적당히 짭조름하면서 얇지만 쫀득한 도우가 일품이었다.

시그니처 메뉴의 빈자리를 채워줄 또 한 가지 라바크로 카페만의 특색은 테이블에 있다. 모든 테이블 상판에 욕실 타일이 깔려 있다. 각각 다 디자인이 달라 취향 따라 마음에 드는 타일의 테이블을 골라 앉는 소소한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라바크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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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게리따 피자와 베이컨 크림파스타, 그리고 맥주
피자는 화덕에서 직접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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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있는 테이블의 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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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위 냥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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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 강림하게 만드는 찻잔세트 (왼쪽 사진 상단에 전시된 변기모양의 그릇에 아포가토가 나온다)

라바크로 카페의 화장실은 과연 어떨까...? 별명이 변기카페이고 콘셉트가 변기이다 보니 화장실이 궁금했다. 피자와 파스타에 맥주 두 병을 클리어하고 나니 드디어 화장실에 가라는 신호가 왔다. 몸은 생리적 욕구에 이끌려 화장실로 향했지만 머리는 온통 화장실에 대한 기대와 상상으로 가득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 순간, 눈이 부셨다. 온통 황금으로 뒤 덮여 있었다. 설마... 이게 다 진짜 금?!은 아니겠으나 세면에 물이 닿는 부분과 거울, 화장실 바닥을 제외하고는 사방팔방 온통 금이었다. 카페니까 혹시 커피잔 모양의 변기로 되어있지는 않을까 정도 예상했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단연코 기대이상. 흔히들 황금변이 건강한 장의 상징이라 하는데, 장이 건강한 사람이 이곳에서 볼일을 본다면 일을 봤는지 안 봤는지 분간이 안 될 것 같았다. 갑분 이야기가 '변'쪽으로 흘러가 다소 유감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여기는 세계최초, 국내유일의 변기타워가 있는 변기카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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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세면대와 눈이 부셨던 화장실 내부

https://www.instagram.com/lavacros_cafe



세계를 나는 장끼(수꿩)의 탄생

반기문 생가


음성군 원남면 행치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푸근하고 반가운 얼굴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다. 그가 이곳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유는 바로 행치마을이 그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 마을 초입에 있는 보덕정을 지나 바로 보이는 초가집이 그의 생가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반겨주시는 반기문 전 총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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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치마을 초입의 보덕정과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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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그의 유년기지만, 어릴 적부터 세계평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공부를 특히나 열심히 하고 잘했던 덕분에 고2 때 영어경시대회에서 최고 점수를 받으며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외교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해 제8대 UN사무총장이 되기에 이른다.

흔히 이런 걸 두고 개천에서 용 났다 하겠지만 그의 태몽에 따르면 그는 엄연히 용이 아닌 장끼다. 그의 어머니인 신현순 여사가 어느 날 꿈속에서 집에 오는 길에 호두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나무꼭대기에서 장끼 한 마리가 내려와 '그놈'을 잡아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발목에 끈을 묶어 방문 고리에 매어 두었더니 방 안 구석구석을 쉴 새 없이 날아다녔다고. 여기서 '그놈'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고, 방 안 구석구석은 그가 UN사무총장이 되어 누비고 다녔던 세계였던 셈이다. 물론 꿈보다 해몽이라고 지극히 결과론적인 해몽이겠지만 그래도 결과를 꿈에 매칭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놈'은 태어날 때부터 UN사무총장이 될 운명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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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평화기념관과 평화랜드

생가를 둘러본 후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다면 생가 뒤에 있는 반기문 평화기념관에 가보자. 인간 반기문과 UN사무총장 반기문으로서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다. 만약 자녀들과 함께 방문한다면 꼭 둘러보시길. 혹시 또 아나? 이 여행을 계기로 외교관의 꿈을 키우게 될지.


참조 : 음성문화관광, 위키백과, 카카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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