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에서 휴양여행
겨울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삿포로 여행 뽐뿌가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대체 그놈의 먹고사는 일이 뭐길래 역시나 올겨울도 나가리. 또다시 다음 겨울을 기약하며 대신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렸다. 서울에서 가까운 충청도로. 그런데 이게 웬걸, 삿포로에 있어야 할 눈구름이 충청도까지 내려왔나? 발목까지 덮이는 눈을 밝아본 건 군대를 제외하고는 불혹 평생 처음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고 마침 행궁(사찰면 연례행사처럼 삿포로 여행 뽐뿌가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대체 그놈의 먹고사는 일이 뭐길래 역시나 올겨울도 나가리. 또다시 다음 겨울을 기약하며 대신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렸다. 서울에서 가까운 충청도로. 그런데 이게 웬걸, 삿포로에 있어야 할 눈구름이 충청도까지 내려왔나? 발목까지 덮이는 눈을 밝아본 건 군대를 제외하고는 불혹 평생 처음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고 마침 행궁(사원)과 약수(온천)도 있으니 흔한 일본 겨울여행 코스가 완성됐다. 겨울의 삿포로가 대충 이런 느낌이려나? 충청북도로 떠난 삿뽀로, 아니 충뽀로 여행이다.
삿포로 대신 선택한 충청도 여행의 메인 콘셉트는 겨울캠핑이었다. 캠핑 중에서도 텐트 치고 난로 때우는 혹한기 훈련에 버금가는 오토캠핑 말고, 바퀴 달린 집에서 편하고 따숩게 즐기는 카라반 캠핑. 주변에 바다가 없는 완벽한 내륙인 충청도에는 산이 많아 캠핑장도 많다. 수많은 캠핑장들 중 '초청힐링캠핑장'을 택하게 된 데는 캠핑장의 위치 때문. 평소 좋은 물, 약수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초정약수'로 유명한 청주 내수읍 초정리에 위치해 있다. 주변 볼거리와 즐길거리로는 초정행궁과 초정약수원탕이 있다. 먹고, 자고, 먹고, 자며 캠핑장에서 힐링하다가 먹고, 자는 게 지루해지면 초정행궁 마실을 나가면 된다. 궁궐산책을 마쳤다면 나름 (걷기) 운동을 했으니 이제 초정행궁 맞은편 초정약수원탕에서 약수탕에 몸이 지지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완벽한 힐링 끝! 전신이 개운해지고 삐그덕 거리던 관절 마디마디에는 구리스가 발린 듯 부드러워지는 신기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캠핑장 이름 한번 참 정직하게 지었다. 초정리에 있는 힐링캠핑장.
초정리는 예부터 약수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초정(椒井)'이라는 지명 자체가 '후추처럼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이 초정약수가 눈병에 좋다는 소문을 들은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에 몰두하고 있을 당시 앓고 있던 눈병을 다스리고자 초정리에 행궁을 지었다. 이것이 초정행궁의 탄생 배경이다. 세종대왕은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총 두 차례에 걸쳐 머물면서 초정약수를 마시고, 눈에도 담그고, 목욕도 하면서 병이 호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한글 창제 마무리 작업도 이곳에서 진행이 되었단다. 어떻게 보면 한글 창제에 있어 초정행궁도 약간은 지분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금의 초정행궁은 1448년에 방화로 소실된 이후 약 2년에 걸친 재현 및 복원 작업을 통해 지난 2020년 6월에 재개장한 것이다. 이때 숙박시설인 한옥체험관도 함께 만들어졌다. 총 객실 수는 12개. 모두 겉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식인 퓨전한옥이다. 혹 한옥 숙소라 해서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랑 고이 접어두자. 예능프로그램 촬영장소로 섭외될 만큼 잘 관리되어 있으니까. 어디에 나왔느냐? 바로 마성의 남자 13기 광수를 세상에 알린 그 프로그램이다. 당시 출연자들은 각 한옥체험관에 머물렀고, 초정행궁 안에 있는 초정행궁 전통찻집에서 쌍화차도 마셨더랬다. 과거에는 치유의 공간으로 핫플이었던 곳이 이제는 사랑의 공간으로 핫플이 되었다.
겨울에 왔으니 여름쯤 다시 한번 찾기로 했다. 세종대왕처럼 눈병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온갖 자질구레한 잔병들을 치유하기 위해. 마침 여름이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축제'가 열리는 시기라 하니 개이득. 힐링과 즐거움, 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는 힐링 여행이 될 것 같다.
초정행궁 맞은편 초정약수원탕에서는 초정약수를 온몸으로 느끼고 맛볼 수 있다. 동네에 있는 흔한 목욕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반 목욕탕에 냉탕, 온탕, 열탕이 있다면 거기에 초정약수를 채워둔 약수탕이 하나 더 있는 셈. 약수의 성분만 총 스물한 가지다. 그렇다 보니 물감도 이것저것 다 섞어 놓으면 결국엔 검은색이 되듯 약수의 색도 그리 맑지는 않다. 거의 녹물 색과 흡사하며 냄새 역시 쇠냄새가 난다. 물색과 냄새 때문에 약간 신뢰가 떨어졌지만 여기 있는 이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바보는 아닐 터이니 속는 셈 치고 약수탕에 발을 담갔다.
"앗차거!"
약수라길래 당연히 따뜻한 온탕일 줄 알았건만 얼음장까진 아니어도 제법 냉랭한 탕이었다. 이 겨울에 냉탕에 들어가는 게 맞나 싶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일반 수돗물에 샤워만 하고 갈 수는 없으니 건강을 위한 테라피다 생각하고 다시 용기를 냈다.
"으으으~"
발목까지 담그기 성공. 발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이제는 난간에 걸터앉아 앉아보았다.
"으으으~"
반신욕까지 성공. 반신욕을 하며 손으로 물을 떠 천천히 상체를 적셨다. 그 사이 발은 이제 거의 무감각에 가까울 정도로 편안해졌다. 하체마저 적응이 되어가고 있을 때쯤 숨참고, 눈감고, 머리까지 완전히 퐁당 빠졌다. 그 상태로 수초 간 잠수 상태를 유지했다.
"후아아아~"
처음이 어렵지 막상 담그고 나니 머리끝부터 발끝은 물론 심장과 뼛속까지 개운해졌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슬슬 피부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꼈다는 탄산의 톡! 쏘는 느낌. 아니나 다를까 피부를 쓱 문지르니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알알이 기포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촉감이 느껴졌다.
약수탕의 진짜 진가는 약수탕에서 나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탕 밖에서도 탄산의 잔여감으로 몸이 청량해지고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이때 주의할 점 하나. 탄산의 잔여감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열탕이나 온탕에는 들어가지 말 것. 탄산과 고온의 만남? 그 뒤는 상상에 맡긴다.(특히 열탕은 지옥이다) 물론 옛말에 몸에 좋은 건 입에 쓰다고 했다. 도전은 자유.
충뽀로 힐링여행의 완성을 위해 저녁은 특별히 외식을 하기로 했다. 메뉴는 닭요리를 택했다. 힐링에는 역시 몸보신이고, 몸보신에는 닭만 한 게 없으니까. 초정힐링캠핑장 근처 초정약수 먹자거리에 있는 청일가든으로 향했다.
초정힐링캠핑장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청일가든은 어릴 적 할머니댁에 온 것 같은 시골 감성이 묻어나는 가정집 형태의 닭요리 전문점이다. 닭뿐만 아니라 사촌인 오리도 있고, 특이하게 토끼탕도 있었다. 종분류학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어 처음엔 다소 의아했지만 생각해 보니 몸보신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어 수긍이 갔다. 궁금은 했지만 감히 도전해 보지는 않았다. 우리는 애초에 물에 빠진 닭을 먹으러 왔으니까. 주연배우는 정해졌고 장르를 정해야 하는데 하얀 물에 빠진 닭이냐 vs 빨간 물에 빠진 닭이냐, 그것이 난제였다. 아내와 나 둘이서는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던 이 난제를 단박에 해결해 준 건 충청도 지역소주, 시원한 청풍이다. 이름처럼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풍기는(그래서 청풍인가?) 소주를 보자마자 동시에 외쳤다.
"저희 닭볶음탕 주세요!"
역시 소주와 페어링 하기에는 빨간 국물이 최고다.
청일가든의 닭볶음탕은 겉보기엔 평범한 비주얼이지만 속을 들쳐보니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패션으로 치자면 꾸안꾸 스타일이랄까? 여느 집의 닭볶음탕과 마찬가지로 닭과 감자를 기본으로 깔고 고구마줄기로 멋을 냈다. 한 번도 매치해 본 적 없는 조합이라 고구마줄기의 맛과 식감이 닭볶음탕과 어울릴까 싶었지만 전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살코기와 함께 먹든, 따로 먹든 주인장의 노하우가 녹아있는 닭볶음탕 국물과 함께 하니 원래 닭볶음탕에 고구마줄기 들어가지 않나? 싶을 정도로 재료 본연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로운 맛이 났다. 또 한 가지 평범하지 않은 것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마법 같은 양. 이유는 닭에 있다. 국내산 토종닭. 그래서 둘이 먹기엔 제법 양이 넘친다. 원래 음식 잘 안 남기기로 (우리끼리) 유명한 부부이거늘, 눈물을 머금고, 살기 위해 닭고기 몇 덩이를 포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을 둘러보니 둘이 온 손님은 우리뿐이었다는 그리 놀랍지는 않은 사실. 다음에는 우리도 부모님 모시고 오자 다짐하며 충뽀로 힐링여행의 마지막을 알차게(정말 배에 알이 찼다) 마무리했다.
참고 : 위키백과, 청주시시설관리공단(초정행궁), 대한민국구석구석, 문화도시청주, 카카오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