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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이미 봄일 줄 알았다

1박 2일 제주 출장 기록

by 트래볼러 Mar 25. 2025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도. 육지보다 한 걸음 앞서 봄이 시작되는 곳. 그래서 2월의 제주는 이미 봄일 줄 알았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뻣뻣한 내 반곱슬의 억센 머리카락이 다 까뒤집어져 이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바람이 불었고, 바람을 등에 업은 공기는 본연의 온도보다 더 차가웠다. 2월의 제주는 육지만큼이나, 아니 육지 보다 더 차가운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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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주의 목적은 여행이라고는 정말 눈곱만큼도 없는 찐출장이었다. 협력업체와 함께 하기에 단독 스케줄을 짤 틈이 없었고, 무엇보다 1박은 출장으로 쳐주지도 않는 쪼잔한 회사의 구두쇠 같은 출장 규정으로 '무려 제주에서' 렌트를 하지 못했다.(말로는 가급적 렌트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가급적'이 결코 가급적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협력업체에 민폐를 끼친 덕분에(?) 협력업체 담당자를 운전기사로 고용해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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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복리 태양광 테스트 베드

여행이든 출장이든 그 외에 뭐든 간에 마찬가지지만 낯선 곳에 머물게 되면 머무는 주변을 탐색하는 다소 집착적인 버릇이 있다.(이 동네는 뭐가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가 그렇게 궁금하다) 출장 업무 후 아무리 고되고 피곤해도 버릇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엔 자다가 일어나거나 자기 바로 직전 버릇대로 하고야 만다. 과거에는 버릇을 고쳐보려 노력도 해보았지만 그랬다가 결국엔 그냥 미루는 셈밖에 되지 않는 걸 이제는 잘 알기에, 몸이 피곤한 걸 알면서도 오히려 그럴수록 빨리 쉬고자 더 빨리 나갔다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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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 오션뷰의 숙소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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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쪽 함덕. 꼬맹이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완전체 제주가족여행의 추억이 있는 곳. 이번 제주 출장의 베이스캠프였다. 물이 얕고 맑아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가 많이 찾는 함덕해수욕장에서 놀며 미역을 주웠던 기억이 있다. 물놀이 후 먹었던 삼양 '쇠고기면'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무려 30년도 더 숙성된 기억이다. 당시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거나 혹은 느껴보고자 난 그 빛바랜 기억을 구태여 꾸역꾸역 되새김질해 낸 후에 숙소 주면 동네 마실을 나갔다. 하지만 30년이면 강산이 3번, 아니 요즘 같은 속도로는 30번도 충분히 바뀔만한 시간이기에 그때의 흔적은 해변의 모래알 한 톨 하나 찾을 수 없었다. 한껏 추억에 젖어 나갔다가 메몰차게 부는 바닷바람에 젖어 추위에 젖은 다소 처량한 추억 하나 만들었다. 다리는 오들오들 떨리고 몸은 휘청휘청거렸던 함덕해변산책. 이 추억의 유효기간이 꼬꼬마 시절의 옛 추억만큼 길 것 같지는 않지만 당분간 내 기억 속 함덕은 추운 겨울로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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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간의 짧은 제주 출장 업무를 마치고 이제 다시 육지로 가는 길. 날씨가 기가 막히게 바뀌었다. 진즉에 좀 이렇게 좋으면 좋았을 것을. 날씨는 왜 일할 때만 좋고 일이 끝나면 나빠지는가? 이건 기상청 슈퍼컴퓨터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을 땐 나쁘고 내가 떠나면 좋아지는가? 이건 내가 날씨 악마니까 그러겠지. 어쩌면 제주가 추웠던 건 내가 내려갔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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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창해진 제주, 구름위를 날아 김포로
p.s. 실제 내가 다녀간 그다음 주부터 날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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