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태주 May 05. 2021

글쓰기의 투기 세력들

가장 좋은 어그로는 글의 진정성이다

     



낚시 글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클릭했는데 내용이랄 것도 없고, 제목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거나 오히려 제목과 반대되는 내용의 글도 있다. 매번 낚이면서도 어느새 클릭하고 있는 나도 문제지만, 그런 사기성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기자나 작가를 보면 분노나 배신감을 넘어 측은하고 가련하기까지 하다. 그런 측은하고 씁쓸한 감정이 드는 브런치 글을 종종 만난다. 맛집이라고 소문나서 갔는데 위생상태도 불량하고 서비스도 엉망이고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가게. 줄 선 시간이 아까워 음식을 시켜 먹고 나오긴 했는데 뭔가 개운치 않고 찝찝한 불쾌감이 남는 가게. 그런 글들이 조회수는 끌어올렸을지 모르지만 구독자수는 결코 늘리지 못할 것이다. 설령 구독자수가 늘더라도 구독자도 발행자도 뭔가 뒷맛이 구리지 않을까.


브런치에서 흔하게 자주 보이는 글들이 있다. 조회수가 얼마를 넘겼다는 둥 구독자수가 얼마가 됐다는 둥 자랑하는 글들. 그런 글들에는 조회수 늘리는 방법이라든지, 브런치팀에서 내 글을 메인에 띄우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라든지, 어그로 끄는 제목을 다는 방법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물론 작가 지망생들에게 이런 팁은 필요하고 요긴한 정보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칫 이런 성급한 인정에 매달리는 글쓰기에 맛들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발행된 브런치 글에 매겨지는 통계는 회사의 매출이 아니다. 그 통계 숫자가 회사에서처럼 목표가 되면, 글쓰기가 양을 추구하게 되고 기교를 추구하게 되고 독자에게 아부하게 된다. 누구의 글이 더 필요하고 더 나은지 경쟁하고 비교하는데 사용되는 글쓰기는 매출 상품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이해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욕망, 잘 쓴다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 글을 써서 인기도 얻고 명성도 높이고 인세를 많이 받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정당하고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런 욕망에 기인한다. 문제는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어떤 욕망은 추악하게 보이고 어떤 욕망은 아름답게 보인다.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욕망은 관리되고 적절하게 표현될 필요가 있다. 욕망을 드러낼 때 그 욕망이 윤리적인지 타당한지 분별해야 하고, 그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하고, 욕망을 드러내는 순서를 살펴봐야 한다. 나는 욕망이 표현될 때 욕망의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보자. 이제  직장에 취업한 청년이 있다. 그는 수도권 변두리에 5 원짜리 집을 갖고 싶은 꿈이 있다. 그가  욕망을 실현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일은 무엇일까. 돈에 대한 관념을 명확하게 확립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돈보다 중요한 것이 인생에는 너무나 많고, 돈에 끌려 다니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과, 빨리 돈을 벌어 좋은 집을 사고 싶다는 바람을 동시에 가질  있다. 인간은 이런 모순적이고 위선적인 생각들을  머리 속에 같이 담아둔다. 이런 뒤섞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집을 마련하기는 요원해진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이  먹여주지는 않으니까. 돈을 추구해서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돈의 노예가 되는 현실이니까. 돈이 밥이고 돈이 집이고 돈이 인격이고 돈이 자유니까. 자신이 욕망하는 바가 헷갈리고 흔들리지 않게 욕망의 내용을 명확히 정의하고 욕망의 목적을 확고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제 흔들림 없이 '  내에   갖기'라는 목표에 몰입한다. 눈에 보이도록 목표를 적어서 붙이거나 사명 선언문처럼 프린트해서 지갑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넣고 다닐 것이다. 5억을 모으려면 우선 1억을 모아야 하는데 1억은 작은 돈이 아니다. 1억을 우선 목표로 정하면 당장 집세 내고 남는 돈이 얼마  되는데 너무  숫자라 부담이 앞서고 암담해진다. 알다시피 목표는 작게 쪼갤수록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천만  모으기를 1 목표로 삼으면 도전해 볼만하고, 절약하면 대개는 1, 2 내에 가능해진다. 천만 원부터 시작해야 1억이 가능해진다. 돈의 속성상 천만 원이 바로 5억이 되기는 힘들지만, 일단 1억이 모이면 5억이 되는 데는 훨씬 수월하고 어렵지 않게 된다. 1억이 종자돈,  투자의 씨드머니가 되어 고정적인 수입 외에 투자 소득이 부가되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하지 않고 예금만 하는 느리고 무지막지한 방법도 있다. 돈이 일하게 하지 않고 자신이 죽어라 일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물론 그중에는 투자했다가 원금까지 날리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그건 정확하게 말하면 투자가 아니라 투기했다가 날렸다는 의미다. 짧은 시간에  이익을 남기려고 비정상적인 술수를 부렸다는 뜻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는 운이 나쁜  아니라 자신의 운을 배반한 것이다. 자신의 원래 욕망,  욕망의 대상인 집을 배신하고 돈이라는 수단에 집착하게  결과다.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간단한 기준은 시간이다. 평균적이고 정상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조작해서 축약하거나 생략하려고 들면 투기다. 그것이 한탕주의이고 탐욕이다.       


이제 ‘ 글이 인기가 있으면 좋겠다 욕망을 놓고 말해 보자.  욕망을 실현하려면  ‘인기라는 신기루부터 먼저 개념정의를 해봐야 한다. 글의 인기는 글쓰기 '실력' 대한 인정과 칭찬이다.  욕망도 집을 마련하는 일처럼 목적적이고 시간을 들여 투자를 해야 하는 일이다. 실력은  탕의 투기로 얻을  있는  아니라 부단한 투자로 얻을  있는 투자수익이다. 성급하게 인기를 얻으려고 독자에게 아부하고 낚시하는 글을 쓰기보다는 내가 나에게 만족하는 글을 쓰는  먼저다.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완결성을 추구하면서  , 그런 정성을 담은 글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알아주는 좋은 글이다. 쓸수록 조금씩 이자처럼 불어나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획득하는 것이 먼저다. 내가  글을 인정하는 것이 타인의 조회수보다  배나 중요하다. 순서는 시간의 정리정돈이다. 순서를 배반하면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실력은 결코 모아지지 않는다.   


 시골 할머니들이 <문해, 인생의 글자꽃이 피어나다> 는 제목의 시집을 출판했다. 여기서 ‘문해’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한글교육의 일환으로 행하는 ‘문자를 해독하는 능력’을 말한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일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할머니들에게 안동시에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집에는 80살 먹은 유덕희 할매가 쓴 '배추밭'이라는 시가 올라와 있다.

     

아침 일찍 배츄받에

푸을 뽀았다

갑짝기 배츄밭 글짜가

생각이 나서

호미로 땅바닥에

써 보았다

배츄받, 배츄

었떤거시 마질까?

빨리 씩고 학교 가

성생님께 물어바야지


이 시는 결코 ‘잘 쓴 글’이 아니다. 맞춤법도 엉망이고 무슨 특별한 인생의 깨달음이 담겨 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할매의 마음이 느껴진다.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제대로 된 글이 아니지만, 이 시를 써놓고 할매는 매우 흡족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글이 좋은 글이라고 판단했다. 기교도 없고 훌륭함도 없지만 진실함이 있고 간절한 마음이 있다. 반듯하고 미끈하고 무결한 문장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라도, 독자 좋으라고 아부하는 글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어그로를   있는 제목, 물론 중요하다.  전부를 읽게 만드는  단락의 리드  문장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어그로는 따로 있다. 본문이다. 구독 버튼을 누르게 하려면 어그로 끄는 제목발이나 신박한 소재가 아니라 본문의 , 진심이 들어 있어야 한다.  진심이  정서나 마음만은 아니다. 누구에겐가 필요한 실용적인 정보일 수도 있고, 자신의 체험으로 터득한 노하우일 수도 있다. 자신이 아끼는 , 요긴한 것을 정성스럽게 차려서 식탁에 내놓는 마음, 그걸 느낄  사람들은 반응한다. 융숭하고 화려하지 않더라도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자신이 손님 대접을 받았다고 느낄  사람들은 가치 있다고 여긴다. 그런 가치가 담겨 있을  독자들은 ‘좋은 이란 말로 뭉뚱그려서 인정하고 찬사한다.

      

내용이 좋으면 어그로 끌지 못하는 제목일지라도 계속 읽고 싶어하는 독자를 만날  있다. 기실 본문이 좋은 글이 제목이 나쁠 리가 없다. 연연해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려는 마음, 이것이 나에게서 시작해 나에게로 닿는 글쓰기의 마음이다. 글을 쓰는 자는 욕망의 순서를 무시하지 않는다.  태도가 좋은 삶의 요건이다. 좋은 글은 언제나 진심에서 나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