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색이 아름다워, 부라노 섬
바다 위에 만들어진 도시 베네치아이기에 여느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신기하고, 그만큼 여행 후 기억에 많이 남고, 특이하게 여겨진다. 지도 없이 걷다 보면 어디가 어딘지 찾을 수 없기에 큰 미로 게임 속을 헤매는 듯하고, 운하를 따라 배에 물건을 싣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하다.
설렁설렁 골몰을 걸으며, 베네치아의 정취를 느껴도 좋겠지만, 가보지 못한 부라노 섬도 방문해보려고 한다. 무라노 섬과 부라노 섬 두 군데를 다 가보면 좋겠지만, 한 군데만이라도 제대로 보자는 생각에 부라노 섬을 선택한 우리.
바브레토 승선권을 사려고 숙소에서부터 가까운 선착장을 차례로 가보았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주위에 가게도 없고, 그나마 있는 승차권 자판기는 지폐는 먹지 않고 동전만 넣어달라고 깜빡이고 있다. 한두푼하는 1일권도 아니고, 2명분을 사려면 카드든, 지폐든 돼야 하는데 동전만 가능하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우리보다 먼저 온 옆 자판기의 또 다른 관광객은 주머니 곳곳의 동전이란 동전은 다 긁어모아 20유로를 만들었나 보다. 버튼을 누르고 발권되는 티켓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부럽다.
결국 크고 작은 다리를 다시 몇 개나 건너고, 골몰을 이리저리 헤매며 기차역으로 되돌아가 티켓을 구입하고는 부라노 섬행 바브레토에 탑승한다. 베네치아 본 섬 북쪽에 있는 정류장에서 다시 부라노 섬으로 향하는 배로 갈아타고 40분 남짓을 가면 도착한다. 배로 꽤나 길게 가야 하기에 Y가 멀미는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바다가 잔잔해서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었다.
섬 자체는 크지 않지만, 섬에 있는 집의 외벽을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아 색다른 볼거리를 주기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듯하다. 레이스 공예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레이스 장식보다는 유리공예가 유명한 무라노 섬에서 만들어졌을 법한 아기자기한 유리 장식들이 더 눈에 띈다.
어느 집하나 같은 색으로 칠해진 집이 없어 골목마다 죄다 걸어가 보게 된다. 정해진 규칙 없이 제각각으로 칠해진 집들이지만 그런 불규칙성이 더욱 자연스럽고 정겹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 동안 집을 채색해온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매년 채색을 새로 하는지 색이 날린 흔적도 없이 선명하다. 새로운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한두 해 동안 만들어낸 게 아닌,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한 것일 거란 생각에 더욱 마음에 드는 곳이다.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면 사진이 더욱 잘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다.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베네치아 본 섬과 달리 작은 섬이지만 여유롭게 다닐 수 있어 좋다. 걷다가 예쁜 색깔로 칠해진 집이 나오면 잠시 멈춰 사진도 찍어보고, 먹어보고 싶었던 머랭 과자도 사 먹으며 유유자적, 여유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