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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ienna Aug 03. 2020

지극히 평범한 사람, 키아누 리브스

그 누구보다 사람다운 배우

어느 한 인터뷰어가 그에게 묻는다.

"요즘 인터넷에 보면 당신이 세계에서 가장 착한 남자라는 기사가 수도 없이 뜨고 있어요. 이에 대해 --"


당황한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속삭인다.

"말도 안돼요."


되돌아온 단호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계속해서 이어간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세상에서 가장 나이스한 남자라는 데 -- 이 이야기들은 --"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사실이 아니예요."


"이 이야기들은 사실인가요? 고속도로에서 어느 지저분한 한 차량이 옴싹달싹도 못하게 멈춰세워져 있었는데 그 차 주인을 -- 배우 옥타비아 스펜서이죠 -- 도와주셨다면서요?"


"아 정말 옛날 얘기에요 --"


"사실이에요?"


"네.. 네"


"정말 나이스하신데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자가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도와주겠어요?"


"아 -- 아무튼, 네 어찌되었건..."


심히 불편한가 보다. 수도없이 늘어놓는 기자의 칭찬을 회피하는 이는 다름아닌 키아누 리브스이다.


30년 넘게 할리우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지내온 그이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한결같다. 한결같이 무덤덤한 표정의 캐릭터를 맡으며 사랑받아 왔고, 한결같이 어색하기도 하고 찰떡궁합이기도 한 연기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호불호 평을 받으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한결같이 멋지고 한결같이 동안이고 또 한결같이 신비스럽다. 굳이 따지자면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는 아닐 수 있지만 이처럼 특정 캐릭터 타입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내고 A급 스타성과 흥행성을 유지하며 사생활 노출이 굉장히 적은 할리우드 배우가 또 있을까.


아버지와 보낸 마지막 밤 우린 그저 베란다에 함께 앉아 밤하늘을 바라다 보았어요. 별말씀 없으셨죠.
다음날 공항에 데려다 주시고 십년동안 단 한번도 연락하지 않으셨어요. 전화도 안 오고 편지도 안 오고 아무런 연락조차 안하셨어요.
- 2002년 어느 한 인터뷰에서, 키아누 리브스


리브스는 마약중독이었던 아버지와 어렸을 적 헤어지고 세번의 이혼을 겪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다 토론토에 정착하게 된다. 난독증에 시달려 고등학교도 네번씩이나 전학을 다니었지만 다행히 여동생과 돈독하게 지내며 그의 격려로 인해 배우라는 꿈도 키우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냐고요? 음 영향이라...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까요.
정말 정말 너무 많이 슬펐습니다. 진심으로 슬픕니다. 그리고... 그가 정말 그립습니다.
- 1995년 리버 피닉스의 죽음에 대해, 키아누 리브스


리브스의 안타까운 인생스토리는 인터넷에서 꽤 오래 전부터 알려진 이야기이다. 23살 적 둘도 없는 절친인 리버 피닉스가 다량 마약 중독으로 요절을 하고 여동생은 백혈병에 걸려 그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왔다. 다행히 건강이 많이 호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여동생이 리브스에 대해 말하길, 마치 "왕자님"같다고. "[오빠는] 내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 다 들어주고 심지어 내가 어느 부분에서 쉼표를 짓는지까지 다 알죠." 이에 더불어 사랑하는 연인과 딸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었는데 아이가 유산되었고 결국 헤어진 연인은 2년 뒤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로 인해 오랜 기간동안 사랑이란 것에 다시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때문인지 노숙 생활을 했다는 기이한 소문도 돌고 '슬픈 키아누'라는 밈까지 만들어지는 상황이 오고가곤 했다.


슬픔이란 많은 형태로 다가오면서도 끊이질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이제 다 끝났다. 나는 이제 괜찮다' 하면서 대응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데... 아니에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혼자일 뿐이에요. - 2006년 어느 한 인터뷰에서, 키아누 리브스

이쯤 되어서는 가혹한 삶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텐데 세월이 흐르면 흐를 수록 이 남자는 나날히 더 좋은 사람으로 진화되는 듯 하다. 이에 걸맞게 리브스에 대한 미담은 캐면 캘 수록 더 나온다. 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를 도와준 일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매트릭스 스턴트팀 각자 멤버에게 할리 데이비드슨을 선물했다던지 십년 넘게 비밀리에 소아과에 기부를 해왔다던지 갑자기 무단친입한 팬들에게 신고를 하기는커녕 맥주 한캔 건네면서 수다를 떠들었다던지.. 키아누 리브스, 그의 미담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정말 매트릭스의 '그', 네오, THE ONE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예전에 한 식당에서 일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는데요. 배달원 중 한명이 식당앞에 주차된 차량에 스쿠터를 들이박은 거예요. 배달원되시는 분이 영어를 잘 못하셨기 때문에 제가 달려가서 도와주려는데 알고보니 박살난 차량 주인이 키아누 리브스더라고요. 그는 바로 쓰러진 스쿠터를 일으켜 세우는 데 도와주었어요. 제가 보험처리 도와드리겠다고 보험사 연락처를 물었는데 괜찮다며 오히려 배달원 분에게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괜찮으세요? 아저씨께서만 안 다치셨으면 저는 괜찮아요'라며 너그럽게 안심시켜주더군요. 그 이후로 이 사람은 내가 팬으로서 어떻게든 지켜주겠다 다짐했습니다.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 Reddit 포럼에 어느 팬


90년대 후반에 대학교를 갓 졸업한 후 체인 리액션이라는 영화에서 소품팀 일을 했었습니다. 크랭크업 몇주 전부터 매일매일 키아누 리브스가 저희 팀과 다른 스텝들을 데리고 아침 점심 식사를 사주었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로 서른개가 넘는 세트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키아누 리브스만큼 착하고 친근한 배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배우들은 인성도 드럽고 본인들이 우월하다 생각하는 게 빤히 보이거든요. 키아누는 최소한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정말 착했어요. 언제는 한번 전혀 그럴 필요없었는데 카센터에 맡겨둔 차량을 픽업해야된다는 제 친구 도와준다고 데려다 준 적도 있었어요. 쓰면 쓸 수록 또 다른 이야기들이 더 생각날 것 같네요. - 페이스북에 어느 영화업계 스텝


하지만 정작 그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2019년 존윅 3가 개봉을 하며 키아누 리브스라는 이름은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심지어 북미에서는 '인터넷의 남친'이라 부르며 키아누 리브스를 칭송했다. '세계에서 가장 착한 남자'라 불리었을 때처럼 그는 이같은 호칭에 당황하고 만다. 본인에 대해 그런 호칭이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 그를 향한 칭찬을 수도 없이 늘어놓았다는 말에 리브스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그들을 도리어 치켜세우며 그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본인이 영광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멋쩍음에 진실되어보이는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업계 동료들과 팬들 사이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미담덕분에 네티즌들은 리브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영화가 너무 좋아요. 보는 것도 좋고 만드는 것도 좋아요.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을 별다를게 없는 사람이라 칭한다. 그저 영화를 사랑했고 지금도 한결같이 영화를 사랑한다. 한때 절친했던 친구와 의기투합하며 함께 작업했던 작품도 결국 한 편의 영화였고 (아이다호), 친구를 잃고 난 후에도 혼신을 다해 마무리한 작품도 결국 한 편의 영화였다 (스피드). 영화라는 매개체로 행복을 만끽하고 슬픔에 대응하였으며 식지않는 패기를 선보이고 있는 그. 그토록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오로지 열심히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 다만 정말 강한 사람이란 건 분명한듯 하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양의 고통과 시련을 인간에게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리브스는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고 여전히 역할을 위해 아낌없이 에너지를 쏟아낸다. 그에 대한 역량은 이미 존윅 3편과 같은 영화의 성공이 증명한다고 본다.


토크쇼 호스트 스티븐 콜버트가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웃자고 한 질문인데도 한편으론 심히 철학적인 질문에 심히 철학적인 대답이 예상되었지만 키아누 리브스는 딱히 오래 생각하지 않고 답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그리워 하겠죠."


콜버트는 한동안 돌맹이에 맞은 듯 가만히 앉아있고 관객들은 탄성을 자아낸다. 그의 말이 맞다. 더한 말이 필요한가? 사람이라면 다 같은 감정 아니겠는가?


누군가가 나타나서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마. 달콤한 거짓말을 듣고 싶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 넌 스스로 극복할 수 있어. 힘들어도 직접 부딪히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 영화 투 더 본, 키아누 리브스 대사


인간으로서나 배우로서나 변함없이 훈훈함을 자아내는 그의 행보가 앞으로도 한결같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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