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워킹데드를 봤습니다.
2020년을 대표한 키워드를 뽑아보자면 '무기력'이 단연 일등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모든 게 유예되어 집콕만 하고 일 년을 보냈다.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도 상황은 여전하다. 무기력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들뜬 마음에 여기저기 약속을 잡는 일도 없고, 연말이라 바쁘게 쳐내야 할 회사일도 없다. 그냥 이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며 넷플릭스를 켜는 게 일상이다. 그러다 워킹데드를 발견했다.
워킹데드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미국 AMC에서 2010에 첫 시즌을 방영하고 난 후 레전드가 된 작품이다. 난 좀비물 매니아여서 열광하며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는 공포와 미국 자본이 만들어 낸 좀비 아포칼립스가 좋았다. 다시 정주행하며 보니 좀비보다 사람이 더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 릭과 일행은 살아있는 매시간을 생존을 위해 싸운다. 좀비 떼는 수시로 습격해오고 벽과 지붕으로 둘러싼 건물도 안전하지 않다. 안전한 곳을 찾더라도 식량과 물은 금방 떨어진다. 또, 사람들마저 서로 공격하고 안전한 장소, 물과 식량을 뺏으려 한다.
안전한 장소와 물자만 있으면 어떻게 존버가 가능하지 않을까? 워킹데드의 시즌2 이상을 본다면 그건 불가능하단 걸 알게 된다. 좀비가 됐든 전쟁이 됐든 재난 상황은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다. 내가 알던 사회와 멀어진 채 매일의 생존을 스스로 구하는 일은 말 그대로 사람을 피 말리게 한다.
생존을 위해 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길거리를 나서야 하고, 안전한 쉴 곳을 찾기 위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새로운 장소를 탐색한다.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인류애, 도덕, 사회성, 약속, 이런 것들은 생존 앞에서 무색하다. 에피소드가 거듭될수록 메인 캐릭터들은 무표정이 되어간다. 지쳐있단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겠다.
워킹데드 속 재난 상황이 아님에도 코로나 속 백수인 나는 전의를 상실해버렸다. 새로운 시작을 해야겠다고 다짐은 하고 있다. 회사를 알아보고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고. 추위만큼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선뜻 출사표를 던지기란 어려웠다. 그런 무기력함이 쌓이고 쌓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저기 얻어맞고 뻗어버린 복서처럼 침대 위로 쓰러져 버렸다.
워킹데드를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생명력은 저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자가 아무리 풍부하고 안전한 곳에 머무른다 해도 내면의 투지가 사라진다면 생존은 계속되지 않는다. 이 사람들과 내일 하루를 더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그들은 하루를 더 버틴다.
무기력한 나를 인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뒤쳐진 사람이란 낙인이 싫었다. 그래서 무직 상태인 것과 무기력한 나를 숨기고 싶었다. 유튜브 브이로그 중 별거 다 싶었던 게 백수 브이로그가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썸네일은 보통 침대 위에 널부러진 내 또래의 사람들이었다. 사실 궁금하긴 했으나 클릭하고 싶진 않았다. 또 다른 백수의 무기력이 옮을까 봐. 그 안에서 내 모습을 찾게 될까 봐.
무기력한 상황과 감정 속에서 좀 먹히지 않기 위해 하루를 더 써워본다. 좀비떼를 해치고 생존하는 저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