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보고 싶다, 저거 써주신 선생님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가 잘 보관해두셔서 나도 잘 모으고 있다. 내기록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썩 잘해서 나는 내가 과학자가 될 줄 알았다. 각종 고무 동력기 대회나 물로켓 대회들에서 수상을 꽤 많이 했다. 웅변대회에서도 꽤 많이 상도 받았고, 소년 소녀 일보(?)라는 신문에도 꽤 많은 글들이 연재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부모님도 나에 대한 기대가 꽤나 컸던 것 같다.
나의 모교 대 원주고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꿈이 없으면 개새끼에요. 꿈이 너무 커도 개새끼에요."
개를 비하하는 말도 절대 아니다. 그저 어른들은 강아지들은 꿈이 없다고 생각할 수 도 있고, 또 사람처럼 대하면 사람이 되는 줄 알아서 그렇게 표현하셨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고3 때 들었던 말이다. 아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다 기억할지도 모른다.
넌 장래희망이 뭐니?라는 질문을 담임선생님께서 학급 전체에게 하신 적이 있다.
절대로 선생님을 원망하는 게 아니다. 선생님 덕분에 어쩌면 현실을 더 직시할 수 있었다.
가난한 환경 속 ( 그놈의 가난 가난 글로 쓰기도 지겹다, 하지만 사실인걸..)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사치였지만, 나는 나름 무언가 기억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병을 치료해주는 일도 하고 싶었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래희망이 없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덜컥 말해버렸다.
"한의사요"
그때 당시 반에서 뒤에서 꼴찌를 앞다투던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으니, 선생님도 얼마나 기가 차고, 코가 차고 화가 나셨을까, 주변에 아이들도 비웃었고, 그 순간 현실을 직시해 버린 나는 울컥 눈물을 펑펑 흘렸다. 감정과 화가 주체가 잘 안돼서 원래 눈물도 많아 잘 우는 성격이었지만, 그날은 정말 많이 울었다. 그러고 한동안 놀림거리도 되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정말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아졌고, 닥치는 대로 뭐든 해봤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도 없었고, 안쳐본 사고도 없던 것 같다. 하지 말라는 것도 다해보고, 하란 것도 다 해봤다. 그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이건 뭐, 그냥 컴컴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친구가 명언을 남겨주었다.)
근데 뭐든 찾으려고 하면 안 찾아지는 법, 등잔 밑이 어둡다고, 평소에 작은 내 관심들을 다시 둘러보고,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냥 되는대로 살아봤다. 아빠 핸드폰으로 몰래 소액결제했다가 걸려서 뒤지게 맞은 적도 있고, 진짜 죽기 전까지 맞았다.
리니지라는 게임을 꽤 즐겼... 아니 중독이 더 맞겠다. 중독되었던 적이 있다. 동생에게 게임을 대리(?) 돌리게 하고, 가상의 인물을 창조시켰다. 현실 속의 내가 너무 싫었다. 공부도 못하고, 덩치도 작고, 돈도 없고, 뭐 하나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까만 피부, 여드름 피부에 대한 고민이 많아 공부해야 할 돈(?) 예를 들어 교재비, 학원비 등등을 부모님이 힘들게 마련해주신 돈을 나는 화장품 사서 써보는데 소비.. 아니 투자했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갖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관심사에 대해 명확해졌고,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체육시간 후에는 내 폼클렌징을 썼다. 무언가 줄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았다.
"한균아 네가 추천해준 그 화장품 되게 좋더라"
그때부터였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한 것도 했을터, 그게 하필 또 화장품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화장품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일은 찾으려면 찾을 수 없다.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온다. 단 온 우주의 기를 모아(?) 진심으로 간절하게 노력한 사람에게 더 빨리 오는 것 같다. 누구에게든 언젠가 찾아온다. 다만 그 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만약에 지금 찾아왔으면, 나는 과연 지금의 코스토리를 시작했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사업과의 인연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장품과의 인연이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화장품과 향수를 사모았다. 혹시 누가 물어보면 나는 다 알아야 해라는 생각도 있었고, 화장품 성분 책이나 화장품 관련 서적도 교과서보다도 많이 읽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이 공부가 정말 싫지 않더라. 이때 결심을 했지. 화장품을 만드는 연구원이 되겠노라, 때 마침 이과에 화학 전공에 무턱대고 화학과 관련된 학과로 진학이 목표였다. 방법을 몰랐고, 그저 화장품 연구원이 되면 이 공부를 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수능 400점 만점 시기였는데, 가, 나, 다 군 모두 화학과, 신소재 공학과 등 이과 계열의 학교를 선택했고, 부모님과 선생님과의 상담 끝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집에서 통학을 할 수 있는 강원도 원주의 한라대학교라는 사립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뭐 싫지 않았다. 교수님도 좋았고, 친구들도 좋았고, 나는 열심히 학교를 다녔고, 4.0이 넘게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도 많은 변화는 있었다. 나는 과탑이었다. 군대를 갔다 와서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를 하고 복수전공으로 예체능을 선택해서 들었다. 그러면서 광고, 홍보, 마케팅을 전공하며,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고, 그 당시 그 누구보다 디지털 마케팅에 대해 이해도가 훨씬 높았다고 자부한다. 단 하루도 조용히 사는 날이 없었고,
대학 시절 내내 학교 공부도 했지만, 피자배달, 막일, 닭갈비 숯불 알바 등 (다음 편에 쓰겠다)
무튼 그런 와중에 그렇게 시작된 파워블로그 활동, 그 활동은 평범한 나를 참 대단한 사람 같아 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그저 보통 남자 사람들보다 조금 더 화장품을 좋아했을 뿐이고, 그저 그걸 취미 삼아 재미 삼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그때 당시 네이버, 다음, 싸이월드에 1등 하는 커뮤니티에서 활발할 활동을 하며, 많은 여성 구독자들의 남자 친구 피부 고민 상담도 해드리고, 피부관리 팁이나 화장품 추천을 해주는 일이 무지 즐거웠다. 어쩌면 온라인 상에서 내가 굉장히 영향력 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전문가도 아니었고, 아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어떤 화장품을 설명해주기 위해 모르는 것은 찾아 공부하고, 사서 써보며, 아는 척을 꽤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진짜"가 되기 위해 정말 많이 갈고닦고 피땀 흘려가며 노력했다. 그리고 아직 진짜는 아니지만, 그때보다는 훨씬 진짜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진짜가 되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 잘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직 변하지 않는 믿음 하나가 있다.
화장품에는 작은 실천으로 내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힘이 있다.
나는 그래서 화장품이 좋다. 너무너무 좋다.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과 일을 할 이유는 충분하다.
꿈은 없다는 말은 결국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같다. 선생님이 한말은 꿈이 없으면이 아니라 꿈만 꾸고 움직이지 않는다면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외장하드에 사진들을 찾느라 발행이 늦었다. 나도 돌아보면 참 새롭고,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후회 없이 살았다. 그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브런치의 내 경험들이 누군가에게 좋은 간접경험이자 선한 영향을 끼치길 기대하며 글을 시작해본다.
#0. 화장품과의 인연 -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
#1. 세상에 불필요한 일은 없어 - 배달, 숯불, 공사판, 관공서, 대리운전, 주방 설거지, 술집
#2. 뷰티 파워 블로거 - 일단 하고 말해, 내 인생 첫 번째 성공과 실패
#3. 꿈같은 직장 생활 - 남자가 뭘 알아? 인턴 주제에 뭘 해?
#4. 뉴스 기사에 까지 나온 대한민국 대표 스펙 푸어 김한균 - 기본은 해야지
#5. 창업을 결심한 이유 - 사람과 시간을 얻고 싶어
#6. 내가 믿는 세 가지 - 컴퓨터, 몸, 돈
#7. 창업 보육 센터에서의 2년 - 많은 도움 주신 상지대학교 산학협력단
#8. 첫 사옥 장만하기까지 - 내 집 마련의 꿈
#9. 사업의 본질을 아는데 까지 걸린 시간 - 이커머스의 본질, 그리고 물류에 대한 투자
#10. 사람의 인연에 대해서 - 언젠가 무조건 만난다.
#11. 내가 공평하다고 믿는 것 - 시간, 노력, 운
#12. 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약한 말이다 - 만만함을 벗어나기
#13. 강원도 촌놈의 서울 상경기 - 이제는 서울 사람
#14. 중국에서 대박 난 봄비 마스크가 있기까지 - 열심히 진심으로 운이 좋았다.
#15. 강남 15층 빌딩 건물주가 되다 - 거만함을 경험했다
#16. 상해 1년 생존기 - 리셋
#17. 사장은 사장밖에 이해할 수 없다 - 힘내세요 대한민국 사장님들
#18. 코스토리에서 퇴임하며 - 나에게 중요한 것들과 또 다른 새로운 시작 abt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