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슴 Jan 18. 2023

좋지 않을 이유보다 좋을 이유

설레고 귀찮은 그런 여행, 귀찮음을 이긴 나를 칭찬해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에 깃발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 지
 저러다 깃발이 날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비가 오는지 보려고 창문을 열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5층이라 문이 조금 열릴 줄 알았는데,
 전체가 활짝 열려서 깜짝 놀랐다.
 몸을 숙이면 바로 떨어질 것 같았다.
 당황 한 사이 비가 호텔 방안까지 들이쳤다.
 
 ‘아, 이렇게 비가 많이 오다니.’
 
 그리고 생각했다.
 
 ‘너무 좋잖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창문에 타닥타닥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도
 비가 오는 날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도, 낮게 퍼지는 음악도 좋다.
 카페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도 좋고,
 축축이 젖은 길에서 나는 나무 냄새, 풀 냄새도 좋아한다.
 
 오늘 나는 뭘 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 비를 뚫고, 기차를 타고 30분 넘게 가는 루이지애나 미술관까지 가는 일정이조금 귀찮을 뿐이다.
 
 중앙역을 가서 코펜하겐 카드를 사고,
 승강장을 알아보고, 이 길이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이 맞나 하고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신경을 세우고 있어야 하는 그 과정과 시간이 불편하니까.
 마음 편하게 카페나 갈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코펜하겐에 왔는데, 루이지애나는 가야 하지 않나?
 마음의 갈등이 일어날 때는 마음이 기우는 쪽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스스로 설득하는 편이다.
 
 1. 미술관을 가면 기차를 탈 수 있다.
 2. 기차역에 내려 산책을 할 수 있다.
 3. 미술관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
 4. 그리고 미술관 카페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아, 그럼 조금의 귀찮음과 괴로움을 이겨내고
 바다가 보이는 미술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셔볼까.
 


 일단 가기로 하면 그때부터는 또 금세 신이 나는 게 나란 사람이라
 모든 순간에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방향 없이 흩뿌려대는 비에 우산을 쓰는 대신 비를 맞는 것도

 젖은 나뭇잎을 밟으며 걸으며 낮은 주택을 구경하는 것도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궂은 날씨에 미술관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 생각한 자리에
 혼자 온 덴마크 친구가 먼저 사진을 찍어 주겠다 한 것도.
 미술관의 공간 중에 아무도 없는 곳이 있었는데
 혼자 벤치에 앉아 투명한 천장에 비가 내리는 것을 한참이나 혼자 즐긴 것도.
 모두 좋았다.
 


 생각해 보면 아마 시내에서 카페를 갔어도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 날이 화창했으면,
 또 그것대로 운이 좋았다 했을 것이다.
 
 어떤 날씨든, 어떤 선택이든,
 좋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 못한 것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 본 것에, 해 낸 것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을 믿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