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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 Apr 19. 2024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사이의 공기

영화 <코다> 리뷰

나에겐 청각장애인 사촌언니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아빠와 큰아버지는 꽤 나이차이가 큰 편인 데다가, 아빠가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편이라, 나의 큰아버지의 자녀들(세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과 아빠의 자녀인 우리 남매 또한 나이차이가 많이 났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막내 언니가 이미 대학생이었으니까. 아빠와 큰아버지는 애틋한 형제지간은 아니었던지, 사촌형제들은 명절에나 겨우 만났다. 차례를 준비하느라 부산했지만, 집 안의 막내였던 어린 나는 언니들의 방에 숨어들어 대학생들이 보는 멋진 책을 펼쳐 놓고 구경했다. 그러면 세상과 동떨어진 듯, 아무 말 없이 구석에서 책을 보던 큰 언니가 초등학생도 볼 만한 이런저런 책을 꺼내 내 옆에 놓아주곤 했다.


유달리 말이 없고, 방에서 책만 보던 큰언니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유치원 때쯤이었다. 어쩌면 더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줬을 수도 있지만, ‘들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내가 정확히 인지한 게 그즈음일 지도 모르겠다. 후천적인 장애라고 했다. 열병이라고 했던가…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큰 집은, 현실과 다른 공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적막과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어린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공기 속에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막연히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청력을 잃은 딸을 둔 큰 어머니는 아이들의 작은 일에도 예민한 것 같았고, 상실을 겪은 큰 언니는 슬퍼 보였다. 어쩌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불행할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된 것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분위기였다.  어느 날 막내 언니와 큰 언니가 수화로 격렬하게 (아무 말이 없는데도, 저렇게 격렬할 수 있구나. 하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화하며 낄낄거리며 웃던 모습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다음 명절엔 큰언니와 얼굴을 맞대고, 나도 낄낄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만남은 오지 않았다. 언니는 그 사이 같은 장애를 가진 형부와 이른 결혼을 했고, 자신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언니가 큰 집으로 오는 날 나도 외가댁으로 가니, 언니의 결혼 이후엔 거의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 몇 년 후 큰언니네 가족이야기가 친척들 사이에 화두에 오르게 되었다. 언니는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청각 장애가 없었던 이유였다. 둘이서만 아이를 돌보던 때였는데, 이 아기의 말을 어떻게 배우게 할지 온 가족이 모여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어린이집이나, 놀이방 같은 기관에 마음껏 보낼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고, 언니네 가족은 많은 시간을 농인들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큰어머니는 자주 언니네 집에 머물렀고, 가끔 막내 언니가 다니러 갔고, 친가의 가족들이 함께 아이를 돌보았다. 조카는 여러 가족의 도움으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아이는 영재 판정을 받게 되었다. 아니 거의 천재에 가깝다고 했다. 주변에서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농인 부모와 계속 살게 하는 게 맞나?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아이와 부모를 떼놓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언니도… 조금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누구네가 맡아서 키우면 어떠냐.’ ‘그래도 할머니가 그냥 같이 사는 게 낫지 않나?’ 백 가지 경우의 수들이 가족들 간에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입학한 어린 그 아이는 그냥 엄마아빠와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되어줄 거라고.’


영화 <코다>를 보며, 나는 조카를 생각했다. CODA는 농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한다. (Children of deaf adult) 이영화는 베로니카 폴랭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농인인 부모와 역시 농인인 오빠 사이에 유일한 청인인 영화 주인공 루비 로시는 새벽 3시에 아빠와 오빠와 함께 배에 올라타 귀가 들리지 않는 그들의 귀와 입이 되어주며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루비는 짝사랑하던 마일스를 따라 자기도 모르게 합창단에 지원한다. 루비가 합창단에 가입한 후, 음악 선생님은 루비의 재능을 알아보고, 버클리 음대를 목표로 도움을 주지만, 루비는 자신의 부재로 힘들어질 가족 때문에 고민한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 노래를 듣는다는 것의 행복과 기쁨을 모르는 가족그리고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루비아빠를 위해 간절히 노래하는 루비의 목을  손으로 감싸고 노래를 듣는 아빠는 목청의 진동과 떨림으로 루비의 노래를 느낀다. 들리는 사람들과 들리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공기와 이해,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 영화를 보며각자 나름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고 있을 나의 먼 가족을 떠올린다그리고 생각한다누구나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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