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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상명 Sep 03. 2023

우린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

삶의 의미에 대한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대답

각자의 인생 속 무수한 사건들. 우린 어쨌든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과는 같은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우주 아래 뿌려진 덩어리 같은 사건도 사람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나름대로 쪼개질 테지만, 사건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결국 땅과 우주를 바라보며 무한한 의미를 찾고 있음은 우리 모두 같다.

"아직도 이 연극이 이해가 안 돼요."
"상관없어. 그냥 계속 연기해. 지금 잘하고 있어."

배우의 물음에 연출 감독의 대답.

한낱 인간의 물음에 전지전능한 누군가의 대답처럼 들리기도 한다.

'연극'이 '인생'으로, '연기'가 '삶'으로 들리는 건 나뿐일까.

"아직도 이 인생이 이해가 안 돼요."
"상관없어. 그냥 계속 살아. 지금 잘하고 있어."

우리는 영화를 보고도, 연극을 보고도, 그림을 보고도, 책을 읽고도, 음악을 듣고도 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죽을 때까지 고찰한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보고도 많은 이들이 질문한다. '이 사건은, 이 인물은, 이 장면은 왜?'

이에 대한 은유는 영화 속에도 등장한다.

"오기는 왜 전기 버너에 손을 덴 거죠?"
"의도와 달리 쓰다 보니 그렇게 됐어. 솔직히 나도 잘 몰라."

소설을 쓸 때 내가 창조한 소설 속 인물이 어느 순간 세계 속에서 알아서 행동하고 움직이며 말하고 듣는다. 쓰는 이는 결국 그를 따라가고 관찰하며 그저 받아 적는 것일 뿐.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원인과 이유는 늘 사후적이기에. 대부분의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 그 삶의 의미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무수한 사건들 역시 그저 발생한 것일 뿐, 사건의 의미는 우리의 몫이듯.

(이렇게 나도 의미를 붙이고 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영화에 해박한 의미가 담겨있어서가 아니다. 영화 속의 연극 속 살아 있는 인물들은 그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움직이고 생각하며 말을 뱉을 뿐. 그들의 삶은 내 삶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 별사탕 박히듯 콕콕 찹찹 들러붙는 대사들이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각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고, 삶을 이어가는 이유이며,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연대하는 방식이라 믿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난 줄도 모르게 만나는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난 줄도 모르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난 줄도 모르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가 마음에 별사탕처럼 들러붙는 것.


서로가 서로를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타이밍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 (스탠리 잭이 사위에게)
"'시간이 약이다'. 아냐, 반창고는 될 수 있겠지." (어기스틴백이 아이들에게)
"편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이 시대에 태어나면 안 되죠." (그리프 깁스의 연설)
"나도 이제 내가 안 보여. 하지만 난 여기 있어." (밋지 캠벨의 독백 연습)
"좀 알 것 같네요. 우리가 왜 가까워졌는지."
"그래요?"
"우리 둘 다 아픔을 드러내기 싫어서 꼭꼭 숨긴 채 살고 있어요."
(밋지 캠벨이 어기 스틴백에게)
"왜 늘 내기를 하려고 해?"
"모르겠어요. 아마 두려워서 그러나 봐요. 그거라도 안 하면 내 존재를 알아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요. 이 우주 어디에도."
(클리포드 켈로그가 아버지에게)

#영화 #애스터로이드시티 #웨스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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