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여성 과학기술학자 4명의 선언문
“최근 포스트휴먼 담론이 유행하면서 성형 수술을 몸의 생물학적 한계를 초월하는 철학적이고 진보적인 기술로 논의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성형 수술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울도 잘 안 볼 것 같은 중년 남성 학자들이 갑자기 몸과 외모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성형 수술과 같은 인간 향상 기술이 얼마나 철학적으로 심오한 문제인지 가르치려 드는 것은 정말 봐주기 힘들다. 성형 수술과 몸에 대한 사유는 그것이 삶인 사람들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물질성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소연, “성형외과에 연루되다” 중. <겸손한 목격자들> 286쪽.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핵핵핵심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겸손한 목격자들>은 우리나라 여성 과학기술학 연구자 네 명의 연구를 모아놓은 옴니버스이다. 각자의 주요 연구 주제였던 철새, 경락, 자폐증, 성형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의 최전선 작업을 담아낸 책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사실 책은 작년에 나왔는데 시기를 놓쳐서 읽지 않고 있다, 이번에 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임소연 선생님의 신간이 나온 김에 읽어보게 되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이 작동되는 방식을 사유하는, 메타-과학에 가까운 학문이다. <겸손한 목격자들>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연구자는 (과학) 지식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각각 철새연구자들이 철새를 세는 습지로, 한의학과 물리학을 연관지으려는 경락연구실로, 자폐증에 걸린 자식과 자폐증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엄마들 곁으로, 그리고 성형외과의 수술실로 들어간다.
전통적인 실험실이 아닌 이 네 곳의 장소들은 ‘과학 연구’는 접점이 전혀 없어보인다. 하지만 외려 이런 장소에서 어떻게 지식이 만들어지는지 목격하면 과학과 지식 생산에 관한 오해(대단한 과학은 멋지고 삐까뻔쩍한 연구실에서 만들어진다! 흰 옷 입은 중년 남자들이 최고의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 응당 과학이라면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것처럼 대단히 심오해야 한다! 운운)를 풀 수 있다는 것이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의사 못지 않게 공부한 지식으로 자폐증 아이를 돌보며 새로운 차원의 앎을 만들어낸 엄마들, 사이비 아니냐고 내외부로 비판받지만 실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한의학물리연구실, 수많은 얼굴들을 찍어 측정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통해 미의 기준을 만드려 하는 성형외과에서도 앎과 지식은 우리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만들어지고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들이 수 년 간 다양한 형태의 지식 생산 현장에 머무르며 모인 목격담이자 연구 후기이다.
저자 네 분은 대학원 선배인데, 한 분을 제외하고는 여러 이유로 나와는 연(친분의 연이든, 연구의 연이든)이 닿을 일이 크게 없었다. 학위 논문의 연구 주제만 전해 들어서 아는 정도였지. 하등 관련 없어 보이는 네 가지 연구 주제가 어떻게 옴니버스로 묶여 책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내가 읽으면서 찾은 키워드 두 가지는 ‘세대’와 ‘연루’이다.
세대
“우리는 스스로 이전 세대 연구자들과 뚜렷이 구분된다고 느낀다. 1세대와 2세대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연구 방법 그리고 연구의 지향 등 여러 면에서 다르다. …1세대는 ‘과학기술과 사회’에, 2세대는 ‘과학기술연구’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위험, 사회적 영향 혹은 규제 등을 직접 다루는 연구보다 과학기술의 실행과 본성을 탐구하는 데에 더 관심이 많다.”
임소연, “들어가며 - 이것은 과학기술학 책이다” 중. <겸손한 목격자들> 11~12쪽.
‘세대’는 임소연 선생님이 쓴 이 책의 서문에 잘 드러난다. 서문의 소제목 중 하나인 ‘우리는 한국의 2세대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이다’처럼, 이 서문은 과학기술학(sts)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한 깔끔하고 훌륭한 소개글임과 동시에 저자 네 명이 스스로를 국내 2세대 과학기술학자라 호명하는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떤 문제의식과 지적 영향 속에서 이전 세대와 다른 관심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이 책을 선언문으로 읽으면 왜 네 연구자가 각각 학부 시절의 과학 공부에서 비슷한 좌절을 겪었는지(왜 연구가 잘 안되지?), 그로 인해 어떤 의문점을 가지고 과학기술학 연구를 시작했는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해 본 과학(연구실 생활)은 내 생각하고 다르더라, 직접 새로운 지식 생산 현장에 뛰어들어 보고 싶더라’라는 그 문제의식이 개성 넘치는 네 연구들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연루
“김연화 : 그래서 저는 현장이라는 게 과연 나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예요. 그리고 내가 어딘가에 들어가서 연구한다고 해서, 들어가서 계속 보고 있으면 다 볼 것 같지만 사실은 다 못 보는 거예요. …심지어 그 실험실의 책임자인 교수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는데. 현장이 무슨 내 손바닥처럼 펴고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거죠.
방금 하원이가 현지인들이 상처받을 것을 우려해서, 혹은 마음의 상처를 좀 줄여주는 방식으로 하려고 조심했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 저도 두 가지 이유에서 똑같았어요. 하나는 내가 현장에 관찰자로 들어갔는데, 내가 뭔가를 하다가 이 실험실을 망쳐 놓을까 봐. 그래서 내가 잘못된 걸 보게 될까 봐. …(하략)
장하원 : 그게 현장연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단순한 인터뷰라면 한 번 하고 끝날 수 있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니까.”
“나가며 - 과학기술학에 대하여, 글로 못다 한 이야기들” 중. <겸손한 목격자들> 309~310쪽.
또 한 가지 키워드는 이들의 방법론적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현장 연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연루’이다. 격주간지 기사 쓰면서 매번 연구 현장을 된장 찍어 먹듯 후딱 취재하는 나는 현장 연구자들을 엄청나게 존경하게 된다. 3년 동안 성형외과에서 일하며 현장을 목격한다던가, 그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27명의 자폐증 아동 엄마를 인터뷰한다거나…. 길고 깊은 현장 연구를 통해 연구자들은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는다. 보통 생각하는 ‘객관적인 연구자’를 넘어, 연구 대상과 섞이며 외부자도 내부자도 아닌 겸손한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이 잘 공유되는 부분은 책의 말미에 실린 네 연구자의 대담이다. 현장에서 자신들이 바뀌는 경험을 나누며 현장연구의 특성,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네 연구자가 연구하는 주제도 이 땅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상황적 지식이라는 이야기까지.
이 책에 대해 얘기한 독서 모임에서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과학기술의 일상사>와 비교하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과학기술의 일상사>가 팟캐스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좀 더 넓은 독자를 향한 과학기술학 개론이라면, <겸손한 목격자들>은 실제 과학기술학 연구 사례와 그 방법론, 고민을 다루는 더 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한 목격자들>을 다 읽고 며칠 후인 오늘 문득 세상을 자신의 성찰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높은 성의 남자들을 떠올렸다. 그런 사람들 있잖아. 자신을 도덕윤리적 계급적 젠더적 영점의 위치에 두고 투명한 존재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며 고찰을 풀어가는 존재들. 세상을 무결하고 매끄러운 공간으로 추상화하려는 지성들. 이들이 서있는 ‘완전한 객관성’은 권위가 담보되지 않으면 취할 수 없는 입장-그래서 사실 아무에게도 허용되지 않은, 불가능한 위치-일텐데, 어떻게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쉽게도 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걸까(물론 나도 이러한 비판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다).
<겸손한 목격자들>의 연구자들은 자신의 비가역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갖출 때만 보이고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이것이 2세대 여성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정면으로 도전하고 돌파하고자 하는 지점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