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중 11곡, “밤의 선율”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책장 속에 못치는 악보 하나 쯤은 가지고 있다. IMSLP*에서 다운받은 흐릿한 PDF를 인쇄해 끼워둔 폴더일 수도 있고, 고급스러운 빈 원전판 악보집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거다 : 그걸 당신이 못친다는 거다. 적어도 다음 10년 동안은, 그리고 아마도 평생.
읽지 못할 책을 사들이는 장서가들, 결코 들여다보지 않을 논문을 뽑는 연구자들, 할 시간이 나지 않는 게임을 사는 게이머들처럼 나는 꾸준히 연주하지 못할 악보를 뽑았다. 어떤 곡은 예상보다 지루했고(에릭 사티의 “벡사시옹”), 어떤 곡은 같이 연주할 사람이 없었으며(풀랑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엘레지 FP 175”), 나머지 곡들은 항상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양심은 있어서 뽑은 존채조차 숨기려드는 악보가 있는데,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1번 째 곡이었다. 지금도 그 곡을 듣다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에휴, 내가 뭔 생각으로 그 악보를 뽑았나.
쇼팽, 드뷔시, 스크리아빈, 라흐마니노프 같은 여러 작곡가가 피아노 연주 테크닉을 키우기 위한 연습곡(에뛰드)을 작곡했다. 하농과는 층위가 다른, 뛰어난 테크닉을 요구하면서도 아름다움의 정상에 있는 작품들. 리스트가 쓴 초절기교 연습곡은 그중에서도 이름 그대로 가장 고난도의 테크닉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유튜브의 초절기교 연습곡 영상 중에 이런 댓글이 있겠는가.
쇼팽 : 제 연습곡으로 테크닉을 키워보세요!
리스트 : 제 연습곡을 치려면 테크닉을 키워오세요!
Chopin : Play my etudes to improve your technique!
Liszt : Improve your technique to play my etudes!
12곡의 초절기교 연습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4번째인 ‘마제파’겠지만, 내가 사랑에 빠졌던 선율은 11번인 ‘밤의 선율’이었다. 밤의 선율을 처음 들었던 밤을 생생히 기억한다. 대구로 내려가던 경부고속도로 위, 늦은 시간인데도 길이 막혀 차는 느릿느릿 움직인다. 가다서다 하는 차 뒷좌석에 앉아 멀미와 지루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나 그 덕에 라디오 소리는 고속도로의 소음에 묻히지 않고 꽤나 잘 들린다. 아나운서는 새로 나온 리스트 음반의 연주를 틀어준다. 연주자 프레디 켐프, 저명한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와 헷갈리시기도 하던데 다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비단결처럼 조용하고 곱게 시작된 음악은 폭넓고 불안한 아르페지오를 지나, 점점 격정을 쌓아올린다. 어느 순간 나는 충격에 빠져 머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곡에 집중한다. 이건 도대체 어떤 곡이지? 피아노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도 있는 거였나? 곡이 끝나고 아나운서가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이었다고 얘기를 한다. 그사이 교통 체증은 풀리고 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달리고 사위에 나만 영원히 바뀐 기분이다. 피아노의 피도 모르는 중학생이 생각한다. 언젠가 이 곡을 치고 말거야!
나중에 악보를 뽑아본 후에야 내가 너무 큰 꿈을 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악보 위에는 음표가 너무 많았다. 종이 위에 흰 부분보다 검은 부분이 더 많았다. 치는 것도 그만큼 어려웠다. 손가락은 10개인데 왜 계속 건반을 12개씩 누르라고 하는 걸까? 음 하나하나를 세고 손가락을 굴려 화음 하나를 치고 다음 화음을 치고, 그렇게 나아가니 한 마디를 치는데 30초는 걸렸다. 그래서 악보 한 쪽을 치는 데 10분 정도 걸리는. 음악의 재구성물인 악보를 이런 식으로 재조립한다면, 이걸 연주라 할 수 있을까?
그럴리가. 아무리 잘 봐줘도 그때 내가 하는 행위는 연주라고 하기 힘들었다. 마디와 마디 단위의, 곡의 절개와 해부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정말정말 좋아하는 곡이라서 첫 마디의 음만 짚어봐도, 한 손가락으로 멜로디만 쳐봐도 놀라운 감동이 밀려왔다.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현할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불완전하게 재현하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나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뮤즈의 발끝만 먼 발치에서 봐도 행복한 마음이랄까.
음악을 사랑하는 모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악을 영원히 붙잡아두고자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집에 음반을 쌓아두고, 누군가는 자주 공연을 보러 간다. 이런 측면에서 치지도 못할 악보를 뽑는 행동은 연주가 아니라 음악을 소유하기 위한 불완전한 시도라고 이해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음악과 가장 가까워지는 방법은 연주, 곧 음악을 내 몸에 체화(embodied)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 정도 실력이 안되기 때문에 악보를 보면서 가끔 멜로디나 뚱땅거려보는 것이다.
초절기교 연습곡은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리스트 작품이다. 지난 겨울에는 처음으로 이 곡의 실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제 열일곱인 피아니스트가 데뷔 리사이틀 레퍼토리로 이 곡을 선택했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평소에 듣기 쉽지 않은 곡이라 바로 티켓을 예매했다. 옷깃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첫 곡을 화려하게 시작한 그는 쉴 새도 없이 초반 곡들을 쉬지 않고 연주해나갔다. 한번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질 않았다. 느린 곡에서 빠른 곡으로, 가벼운 곡에서 무겁고 거대한 곡으로. 내가 바흐 인벤션 1번과 모차르트와 브람스와 함께 거닐던 길이 동네 산책이었다면, 초절기교 연습곡은 히말라야 8000m급 거봉 12개를 한 번에 등정하는 일 같아 보였다. 저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칠 수 있는 음악을 감히, 내가 감히, 가암히 이 곡을 치겠다고 했단 말야? 임윤찬의 축축한 손등과 젖어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에서 땀방울이 반짝거렸다. 어떤 등산가가 흘렸을 것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을, 굵고 굵은 비지땀.
그렇지만 임윤찬의 연주를 들은 그날 밤 이후로 내가 초절기교 연습곡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히말라야 산맥을 등정하는 꿈을 꾸고, 초절기교 연습곡을 치는 꿈을 꾼다. 어려운 곡이라 해서 우리가 감히, 가암히 곡에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가 있을까?
이제 나는 음악에의 동경이 가망없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 느낀다. 그렇다면 내가 쌓아놓은 치지도 못할 악보는 실은 보내지 못한 연서가 된다. 만용이 아니라 음악에 조금이나마 와닿고자 하는 절박한 사랑의 증거. 가망없는 아마추어 피아노 애호가로서 나의 목적은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간단한 화음이라도 연주하면서 내 사랑의 흔적을 좇는 일이다. 대단하고 완벽하고 아름다운 연주는 연주자들의 손가락을 통해 들으면 될 일이다. 음악을 향한 열병으로 작은 화음 몇개나마 직접 울려보면서 행복을 느꼈고, 어쨌든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그 짧고 가녀린 행복을 핑계삼아 오늘도 나는 치지도 못할 악보를 또 사들이는 것이다.
* IMSLP(International Music Score Library Project) : 저작권이 만료된 악보 PDF 파일을 모아놓은 웹사이트로,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 다음 해인 2022년, 열여덟이 된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뒀다.
*** 조회수가 높아서 찾아보다가 댓글을 발견하고 글을 수정합니다. (1)맞습니다 그는 연미복을 입은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착각했습니다. (2)그전에도 공연은 꾸준히 하셨겠지만 찾아보면 2021년 롯데콘서트홀 콘서트가 첫 정식 데뷔 리사이틀로 나와 있더라고요...? 저도 헷갈리지만 우선은 공식 자료를 따라 표기했습니다. (3)이제는 너무 스타가 되어서 공연도 못가겠지...(그 이후로 모든 티케팅에 다 실패함) (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