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차량으로 둘러싸인 광나루로4길
서울 성동구의 광나루로4길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찾는 성수동의 윗동네이다. 준공업지역의 느낌이 물씬나는 공장, 창고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곳곳에 오래된 빌라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하신 사장님들,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 주민들이 오가며 서로 인사하는 옛동네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한편, 중간중간에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들어와 공방이나 식당, 문화공간 등을 운영하고 있어, 오래됨과 새로움이 공존하고 있는 동네이다.
그러나 이처럼 정감있고 매력있는 광나루로4길의 보행환경도 국내 도시 내 생활권의 일반적인 도로와 비슷하게 열악한 편이다. 6m 폭의 보차혼용도로로, 양방통행 차량의 교행이 일어날 경우 보행자가 통행하기 어렵고 위험한 환경이다. 도로변 건물들은 도로에 바로 면해있어 건물과 도로사이 여유공간이 없거나, 셋백되어 있는 경우에는 대부분 전면주차를 하고 있다. 또는 1층이 필로티 주차장으로 조성되어 자동차공간화 되어 있다.
좁은 골목공간이 조금 더 걷기 좋아지고, 머무르며 생활하기 좋아지기 위해서는 공공의 공간인 ‘도로공간’뿐 아니라, 도로에 면한 건물과 건물 전면 공간 즉, 사적공간의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도로공간을 걸을 때 경험하는 환경은 도로뿐 아니라 도로 주변을 둘러싼 건물과 환경이기 때문이다. 특히 좁은 도로일수록 사적공간의 환경이 보행환경 및 보행경험의 질에 더욱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골목을 걸을 때, 골목 앞이 주차장인 것과 카페 테라스인 경우 보행 경험의 질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동안 소소도시는 공공공간인 도로 내 주차공간을 활용한 파클렛만 개최해왔는데, 이번에는 도로환경을 구성하는 하나의 축인 도로변 건물앞 주차공간, 즉 사적공간에서의 파클렛을 시도해보기로 하였다.
입주민들이 건물앞 주차장 한칸을 내어주었다
이러한 실험은 광나루로4길에서 꾸준히 지역주민과 교류하며 도시건축 활동을 해온 ‘도만사’와의 협력이 있어 가능했다. 도만사에서 광나루로4길 13 다원빌딩 모든 입주민들에게 파클렛의 취지를 알리고, 주차공간 활용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다행히 입주민들은 반대의견 하나 없이 취지에 공감을 해주었고 우리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집이 많아서 인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셨다.) 대상지 맞은편 위치한 편의점, 라멘집에서도 파클렛 환경 연출에 동참하기로 하셔서 도로 양쪽으로 통일된 보행환경을 조성해볼 수 있게 되었다.
2일간의 팝업 파클렛은 동네 쉼터가 되었다.
입주민과 지역 상인분들의 협조와 기대 속에, 지난주 금요일과 토요일 2일간, 다원빌딩 앞 주차공간에서 파클렛이 개최 되었다. 다원빌딩에 사는 초등학생 아이는 토요일 아침부터 내려와 파클렛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는 같은 반 친구와 인사도 하고, 친구네가 놀러와 함께 놀기도 했다. 동네 어르신들도 함께 했다. 첫날에는 놀러와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셨는데 둘째날에는 부침개 거리를 들고 나오셔서 직접 부침개를 부쳐서 나눠주셨다..!
다원빌딩의 정기 파클렛을 기대해본다 :)
2일간의 짧은 파클렛이었지만 지역주민들에게는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다고 한다. 특히 파클렛이 개최된 건물의 입주민인 어린이와 부모님들의 재개최 수요가 높았다. 어딘가 멀리 떨어진 놀이터가 아닌, 오가는 길목에 걷다가 잠깐 들러 앉을 수 있는 파클렛 공간은 아이들과 부모님의 보행 특성에 적합했다. 작은 몸집으로 천천히 걷고, 걷다가 잠깐 쉬어야 하며, 걸으면서 구경하는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아이들에게는 길 중간중간에 징검다리 같은 포켓 공공공간이 필요하다.
한편, 동네 어르신들 또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알고보니 광나루로4길에 있던 슈퍼 앞 평상이 어르신들의 만남의 장소였는데, 슈퍼가 폐업하면서 평상도 사라졌고, 어르신들이 모일만한 외부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야외 공간이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을 만한 공간을 찾던 어르신들은 낮 시간 동안 비어 있는 필로티 주차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는다고 한다. 팝업 파클렛이 만들어지니, 어르신들은 예전 평상에 둘러앉으셨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앉으셨다.
파클렛을 철거한 후, 도만사를 통해 빌딩 입주민들이 벌써부터 파클렛을 그리워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입주민들끼리 자체적으로 파클렛을 개최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다원빌딩의 파클렛이 정례화되고, 광나루로4길이 걷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길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며 이번 프로젝트를 마무리 했다. ♣
※ 이 사업은 행복중심생협의 협동복지기금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