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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Dec 31. 2020

마지막 서른 일기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안되었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항상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칭찬이라는 생각에 내심 기분 좋아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막상 어른의 나이가 되고 어른이라도 불리는 게 자연스러운 지금은 잘못 불리고 있다는 것 같다는 마음에 불편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밥벌이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정신적으로는 충분히 성숙되어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살펴볼 수 있는지, 지적으로 충분한 지식을 축적하였는지 아직도 나는 얕고 가벼운 마음과 알량한 지식밖에 갖지 못한 인간인데 이렇게 준비되지 못한 채로 어른이라니.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완벽히 성인으로 라벨링 되어. 더 이상 실수나 미성숙한 행동도 용서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더 어쩔 줄을 모르며 불안감으로 떨리는 마음에 밤을 지새웠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몇십 년 동안 한결같던 부모의 얼굴은 어느새 주름지고 머리는 하얗게 세버렸다. 부모의 청춘을 팔아가며 자란 내가 그저 이런 어른이 될 것이었으면 부모는 무엇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하며 나를 키웠어야 했는지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부모 인생을 방해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보면 일상에서의 시시콜콜함에 대해서 짜증을 토로하긴 하지만 모두 주체적인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겉으로는 나도 하하호호 함께 웃으면서도 한편으로 차오르는 불안감에 어쩔 줄 모르겠어하며 숨고만 싶었다. 뜬눈으로 밤도 지새우고, 하염없이 걸어도 보고, 마음에 있는 것들을 종이에 폭포수같이 적어보기도 하고 혼자 엉엉 울기도 하였다.


어느 날 엄마와 이야기하는데 엄마는 가끔 자신의 빠르게 나이 드는 것이 적응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마음은 아직도 고등학생 소녀시절에 머물고 있는데 외적인 것이나 외부의 것은 너무 빠르게 변해버린다고. 그리고 나에게 너무 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다가올 미래가 너무 걱정되고 두렵다면 먼저 오늘 해야 할 일부터 하고 내일 걱정은 그 뒤로 미루라고. 별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왜 항상 엄마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진짜로 괜찮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홍역 같은 것을 겪은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조용히 지나가고 나는 단지 조금 더 예민했던 모양이다. 매일 같은 하루,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들 변할게 무엇이랴. 스멀스멀 차오르고 빠지는 밀물과 썰물처럼 나의 불안과 어려움 또한 그러하리라.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남은 상처의 딱정이처럼 지금 느꼈던 것을 잘 기억해두고

다음에는 지금보다 흔들리지 않고 잘 맞아보리라 다짐한다.


서른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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