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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Apr 29. 2024

일요일엔 주차가 어렵습니다.

오래된 빌라의 필연적 과제, 주차난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집을 보고 온 후 매수를 고민할 때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 바로 주차였다. 1988년 지어진, 총 여섯 세대가 살고 있는 이 세 층 짜리 빌라 앞엔 달랑 차량 두 대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만 있었다. 오갈 때마다 주차된 차가 바뀌는 걸 보니, 아마도 빌라에 사는 여섯 세대가 상의해가며 주차장을 공유하는 듯 했다. 우리는 이미 차 두 대가 있다. 이 집을 매수하면 우리 차는 대체 어디에 주차해야 하나.



이 동네는 주차난으로 유명하다. 주민들의 경계도 꽤나 살벌해, 골목 사이사이 빈 공간에 얌체 주차를 해두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신고로 차에 딱지가 붙는다. 우리가 기존에 살던 전세집은 1가구 2주차가 가능한 곳이었기에 주차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곧 매수하려고 이 빨간 벽돌의 오래된 빌라는 애석하게도 1가구 1주택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냥 인근 유료주차장에 월주차를 하자. 월주차비를 매수비용이라고 간주하고 아까워하지 말자고.
딱지가 붙거나 견인되어서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잖아.



평소 주차 복지에 민감한 신랑은 우리 차량 두 대를 모두 근처에 위치한 유료주차장에 대자고 했다. 집 앞에 댔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받고 차를 옮겨주면서 불안하게 사느니, 그냥 돈을 주고 유료주차장에 월주차를 하잔다. 다행히 우리 둘다 친환경 차량을 갖고 있어 차량 당 월 9만원만 내면 월주차가 가능했다. 
그러나 유료주차장도 이미 만석으로 월주차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유료주차장 자리가 날 때까지는 불편하더라도 집 앞 주차장에 차를 대야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빌라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요 뭐. 허허. 이 동네가 주차 난이잖아요. 서로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우리 골목은 신고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서로서로 배려하는 편이에요. 저는 여기 오래 살아서 골목 사람들이 제 차를 다 아니까, 제가 골목에 차를 댈게요. 두 분이 주차장을 쓰세요. 



102호에 삐삐 반장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주차 자리를 내주셨다. 

집 근처 식당을 운영하는 101호 분들도 차를 가게 주차장에 옮겨두겠다고 하셨다. 옆 집 할머니는 아이고, 나는 젊은 부부가 이사와서 너무 좋아, 나는 차도 없고 우리 자식들만 가끔 오니까 주차장 마음대로 써요. 라며 웃어주셨다. 이 넉넉하고 인심 좋은 배려 덕에 우리는 딱 두 달 동안만 염치를 법리기로 했다. 딱 두 달 만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담장 구분선



평화롭던 주차 일상이 깨진 건 이사 온 후 처음으로 맞이한 일요일이었다.
이른 아침 차를 끌고 외출을 했다가 돌아오는데 웬걸, 처음보는 차들이 빌라 주차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를 막는 것도 모자라 골목 전체를 가득 메운 주차 행렬에 당황한 우리는 곧바로 102호  삐삐 반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201호입니다. 일요일 오전부터 죄송합니다. 저희 차를 집 앞 주차장에 주차해둬야 하는데.. 주차장이 다른 집 차들로 가득 차서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아, 그거요. 일요일엔 옆건물 교회에서 우리 집 주차장을 종종 씁니다. 허허. 오늘 주일이라 그래요.


네? 왜 교회에서 우리 집 주차장을 쓸까요..? 제가 전화해서 차를 좀 빼달라고 할까요?


아, 이게 참 애매합니다. 허허. 우리 집 주차장이 사실 모두 우리 집 땅인 건 아니거든요. 주차장 가운데 쯤을 자세히 보시면 구분선이 있는데, 그 구분선 너머 땅은 옆건물 땅이에요. 그래서 나눠씁니다. 서로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



나는 운전석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과연 주차장 가운데에 희미한 구분선이 보였다. 추측건대, 이 건물들이 생긴 1980년대엔 우리 건물과 옆건물 사이에 담장이 있었던 것 같았다. 구분선은 그 담장의 흔적이고. 지금은 이 담장을 허물고 우리 집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엄연히 말하면 이 주차장은 우리 빌라 땅 60%와 옆건물 땅 40%으로 이루어진 공용 공간인 셈이었다.



아.. 몰랐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해 둘게요.



우리는 근처 골목을 뺑뺑 돌며 안전하게 주차할 곳을 찾았다. 어디에 차를 대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던 때, 삐삐 반장님의 차가 눈에 보였다. 이 분이라면 분명 안전한 곳을 찾아 주차한 것이리라. 삐삐 반장님의 차 바로 옆에 우리 차를 대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당황스럽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밤에 동네를 산책해보니 우리처럼 빌라와 빌라 사이에 담장의 흔적이 남은 곳이 꽤 보였다. 대개는 담장을 허물고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일부는 여전히 담장을 세워두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 빌라에 사는 세대에만 양해를 구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맘껏 사용한 주차장이 실은 옆건물의 땅이기도 했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심리적 적응을 하는 덴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쩌겠습니까, 서로 배려하며 사는 거죠, 허허.



이후에도 일요일 오전엔 골목 전체가 교회 방문 차량으로 뒤덮였다.

아침부터 들리는 찬송가, 새까만 차량 행렬. 모든게 그 날 그 일요일처럼 흘러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토요일 밤마다 우리가 우리 차량을 빼 골목 어귀에 세워져있는 삐삐 반장님 차 옆에 세워뒀다는 것.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다시 집 앞 주차장에 차를 댔다는 것. 두 달 후 우리 차량이 공영주차장에 들어가게 되면서 더 이상 주차장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 이외엔 오늘날까지도, 모든 것이 그 날 그 일요일과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사 후 집 앞 주차장에 우리 차량을 댈 수 있었던 데엔 우리 빌라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가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집 앞 건물의 교회 관리자들도 우리 집 앞 주차장에 댄 차들이 눈엣가시였으리라. 배려하며 살 수 밖에 없다며 늘 자기 차량을 골목에 세워 둔 삐삐 반장님이 옳았다. 맞다. 이렇게 오래된 구축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주차도. 소음도. 그 외의 다양한 불편함들도.


우리 빌라와 옆 건물의 구분선. 옆 건물 땅에는 건물 교회에서 가꾸는 화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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