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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Bar exam 시험장 / 컨벤션센터

by Cactus
시험일 2주 전 안내되는 시험장소




Washington DC주 변호사 시험은 통상 매년 2월과 7월에 DC 시내의 주요 장소에서 치뤄진다.



DC bar exam 응시자 수는 2월 대비 7월이 월등히 많다. 아마도 응시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로스쿨 졸업생들이 여름학기를 마치자마자 7월 시험에 바로 응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응시자의 규모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2월 시험은 시험장이 한 곳인 반면 7월 시험은 시험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된다. 실제로 최근 2년 간 2월 시험은 모두 Armory 한 곳에서 치러졌고 7월 시험은 컨벤션센터, 항소법원 등 다양한 곳에서 치러졌다. 이 말인 즉슨, 7월 응시자는 확정된 시험장이 안내되는 시험 2~3주 전까지는 어디서 시험을 볼지 모르는 상태로 불안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험은 이틀간 진행되지만 한국인 수험생들은 시차적응 등을 고려해 첫 시험일로부터 1주일 전쯤 출국한다. 대부분은 DC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호텔로 직진해 24시간 룸에 머물며 시차 적응, 컨디션 조절, 막판 공부에 집중한다. 고로 수험생에게는 호텔의 컨디션과 치안, 시험장과의 거리가 가장 중요하다.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호텔은 예약이 빠르게 차는데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숙박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에 좋은 호텔을 빠르게 선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아쉽게도 현 구조에선 7월 시험 응시생의 경우 출국 1주일 전까지도 내 시험장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 수험생들은 각 시험장에서 가까운 호텔들을 무료 취소 조건으로 여러 개 예약해두었다가, 최종 시험장이 안내되면 관련 없는 나머지 호텔들을 주르륵 취소한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7/29-7/30 시험을 위해 막판 스퍼트를 올리던 7월 중순, 정확히는 7/14일 오후에 나는 CoA로부터 내 최종 시험 장소는 "컨벤션 센터"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컨벤션 센터. 응시생들의 후기가 압도적으로 좋은 곳. DC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치안과 인근 호텔로의 이동이 용이하고, 공간이 넓고 쾌적해 집중하기도 괜찮기로 입소문이 난 곳. 나는 함께 컨벤션 센터로 배정받은 스터디원들과 기쁨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다른 시험장 인근으로 예약해두었던 호텔을 모두 취소했다. 시험장소를 컨벤션 센터로 배정받은 것 만으로도 시험장의 문턱을 한차례 넘은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수험생들이 컨벤션 센터가 최고라고 칭송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어?






Washington DC / convention center


컨벤션 센터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있다. 우리나라 코엑스와 같이 각종 포럼/전시 등을 하는 곳으로 인근에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있다. 나는 스터디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컨벤션 센터에서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이었다. DC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매일 아침 일부러 컨벤션 센터까지 산책을 하며 가볍게나마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시험 장소는 Convention center 지하 1층에 위치해있었는데, 함께 공부했던 한 분은 인터넷으로 컨벤션 센터 내부 설계도까지 확인한 뒤 호텔에서 시험장소까지 이동하는 최적/최단 거리를 공유해주셨다. 당시엔 와, 이런 것까지 찾아보셨어요? 라며 다같이 웃었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라도 1분 1초를 아껴야 할만큼 절실했다.



시험 당일. 엎어지면 코 닿을만큼 가까운 위치에 숙박하고 있긴 하지만 시험장에 일찍 가야 적응도 쉬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지인들과 시험 40분 전 로비에서 만나 다함께 출발했다. 사실 나는 시험 당일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동행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큰 일을 앞두고는 그저 조용히 기도하며 마음을 다듬는 데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시험 첫 날의 긴장감을 동료들과 나누는 것도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만 같아 함께 이동하기를 선택했다. 힘겹게 준비해 온 이 길이 비단 나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에 어느정도 위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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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벤션 센터 인근엔 누가 봐도 수험생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일부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일부는 공부자료를 훑어보고 있었으며, 일부는 함께 온 연인, 친구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야 한여름 내가 DC에 시험을 보러 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초시생이 아닌데도 시험장에서 느껴지는 텐션에 온 몸이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건물은 듣던대로 외부와 내부 모두 상당히 쾌적했다. 수험장이라기보단 그저 깔끔한 글로벌 회의공간 느낌. 건물 입구로 들어서 앞서 걷는 사람들을 따라 나는 한 층 아래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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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Armory에서 2월 시험을 봤을 땐 그 흔한 자판기 하나 찾을 수 없어 개인적으로 챙겨온 물과 음식에 모든 걸 의지해야 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도 살 수 있는 곳이 없어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컨벤션 센터는 곳곳에 스낵과 음료를 구매할 수 있는 자판기가 설치되어있었다. 게다가 1층엔 바리스타가 내린 커피를 살 수 있는 카페까지!

이미 컨벤션 센터와 가까운 호텔을 예약한 터라 점심시간에 호텔 숙소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때나 카페인 음료를 사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혹여나 갑자기 졸리거나 커피가 땡길 때 호텔 룸까지 가지 않고도 컨벤션 센터 안에서 해결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입장 대기 줄에 선 많은 응시생들이 자판기에서 탄산 음료나 물, 스낵을 사 먹었고, 나도 혹시나 갈증이 날까 하는 마음에 물을 몇 병 더 구매했다.


시험장 문이 열리자 긴 대기 줄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줄에 서있지 않고 복도 구석에서 공부를 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대기줄에 합류했다. 미국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드문드문 나와 같은 한국인 응시생들도 보였다. 나는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직원에게 별도로 출력해 온 seat ticket을 보여주면, 직원은 응시생임을 확인한 후 응시생의 표식인 주황색 종이밴드를 손목에 채워준다. 이 손목밴드가 있어야만 시험장을 들고 날 수 있기에, 밴드는 시험보는 양일 간 필수로 소지하여야 한다. 손목에 찬 밴드를 직원에게 차례로 보여주며 시험장 입구로 들어갔더니 다른 직원이 내 OFF된 핸드폰을 수거해 포켓에 넣어 잠근 후 포켓 째로 다시 돌려주었다. 시험이 완전이 끝나는 시간까지는 이 포켓을 열 수 없다. 외부와의 단절, 혼자만의 싸움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Armory에서 본 2월 시험 땐 모든 응시생들의 소지품을 가드가 일일이 확인하고 규정 상 반입 불가한 백팩의 경우 실내에 갖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다소 엄격히 제지했지만, 7월 컨벤션 센터 시험은 응시자 수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가드들의 검사나 제지가 거의 없었다. 듣던대로 약간은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생각하며 나는 배정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시험장 컨디션


체육관이나 다름없는 Armory이든 컨벤션 센터의 전시홀이든, Bar exam 시험 컨디션은 유사하다. 거대한 공간 한가운데 아주 긴 책상과 아주 딱딱한 의자가 놓여있고, 바닥에는 충분한 양의 멀티탭이 널려있다. 응시생들은 배정된 자리에 앉아 멀티탭에 노트북 전원을 꽂고 시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오전/오후 시험 때마다 각 섹션의 담당 직원이(프로덱터) 체크인을 하므로 응시생은 체크인때마다 seat ticket과 신분증을 매번 제시해야 한다. 질문 사항이 있을 때는 섹션 프로덱터에게 바로 문의한다.

시험장 곳곳에는 큰 모니터 시계가 있다. 속절없이 빠르게만 흘러가는 무서운 시계. Washington DC의 총괄 프로덱터는 여자 분인데, 시험장 맨 앞에 선 채 마이크를 들고 여러분 내년에 시험보러 또 오지 않으시길 바라요, 이제 화장실에 다녀오세요, 이제 마킹하세요, 5분 뒤 시험 시작합니다, 시험 30분 남았습니다, 등의 공지를 실시간으로 해준다. 시험의 모든 절차가 이 분의 지시에 따라 진행된다. 고로 총괄 프로덱터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컨벤션센터는 화장실이 앞 쪽에 위치해있다. 나는 이 날따라 긴장이 되어선지 유독 화장실을 자주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 번은 총괄 프로덱터가 "조금 후 시험이 시작한다"라고 언질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왔다. 심리적으로 살짝 쫄리긴 했지만 시험 중간에 가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은 칸 수가 많아 대기줄이 긴 시간에도 금방금방 들어갈 수 있었고 컨디션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 또한 Armory에서 느낀 화장실 컨디션과 비슷했다.


우스운 건 화장실, 실내 공간 뿐 아니라 노이즈 변수 또한 Armory와 유사했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번엔 실내 건물의 지하에서 시험을 보니 Armory에서처럼 비행기 소리가 크게 들리거나 자동차 경적이 끊임없이 울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오산이었다. 시험 중 갑자기 엄청나게 큰 사이렌 소리가 지속적으로 울려 내 머릿속 집중력이 와장창 깨지고 만 것이다. 1분 1초가 아쉬운 시험에서 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심지어 외부와 직접적인 창도 없는 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서. 나는 그 어떤 유리한(?) 조치라도 취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총괄 프로덱터는 추후 "이 정도 소음은 규정 상 다른 조치를 취할 원인이라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상황을 일축했다. 진정한 고수는 그 어떤 경기 중의 장애물도 이겨내야 한다고 어떤 유명한 축구선수가 말했던가. 아쉽게도 난 그 정도 능력을 가진 진정한 고수가 아니다. 그저 작은 장애물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수험생일 뿐. 갑작스런 충격에 놀란 정신머리를 다시 부여잡고 나는 열심히 시험을 이어갔다. 어디서, 언제 시험을 보든 예상치 못한 장애요인은 어느정도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장애요인에 흔들리지 않을 정신력을 갖추는 것이 수험생의 덕목인 듯 하다.





컨벤션센터 특장점


컨벤션센터의 특장점은 위치. 가까운 호텔을 예약해 점심식사 시간에 잠시 호텔 룸에 들어갔다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내게 심리적인 위안을 주었다. Armory의 경우 인근에 숙박시설이 없어 점심시간에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홀로 식어빠진 김밥을 먹어야 했다. 당연히 커피도 마실 수 없었고. 그런데 컨벤션센터에서 시험을 본 이틀 간, 나는 점심시간마다 호텔에 뛰어들어가 룸 내 전자레인지로 김밥을 데워 따뜻한 식사를 했고, 오전에 미리 타 놓은 커피를 시원하게 마셨으며, 편하게 화장실을 썼고, 잠시나마 공부한 내용들을 복기했다. 가용 가능한 점심시간이 짧아 룸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분이나마 내 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한국 고시 시험장과는 다른, 미국 bar exam 시험장 분위기


많은 수험생들이 미국과 한국의 고시 시험장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고들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의 고시, 그러니까 변호사시험, 회계사시험, 임용고시 등을 치러본 적은 없다.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시험은 여러 번 봤지만 각 언론사가 별개로 주최하는 시험이기에 그 중압감이 국가 고시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딱 한 번, 사법고시 시험 감독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시험기간 전에 다리를 살짝 흔들었다가 한 응시생이 태도를 지적하는 바람에 두 시간 이상을 얼음장처럼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잠시나마 국가 고시의 비장한 긴장감을 느낀 시간이었다.

그런데 DC bar exam 시험장은 2월의 Armory든, 7월의 컨벤션센터든 한국의 고시장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응시생들은 서로 인사를 주고받다가(어느 대학에서 왔어?), 교수님 정보를 교환하고(그 교수님 수업 진짜 헬이었는데, 그치?), 앞으로 진로를 상의한 후(이제 변호사 되면 뭐할거야? 나는 떨어지면 다른 주 한 번 보려고 등등), 급기야 known friend가 되었다. 첫 날은 모두 긴장해있지만 둘째 날은 다들 장소와 시험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상태이기에 더더욱 편안한 관계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프로덱터가 다리를 떨거나 책상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누구 하나 지적을 하지 않았다. 맞고 틀린 건 없고 그냥 다른 것이지만, 미국인 특유의 여유로운 마인드는 조금 부러웠다. 그것이 꾸며진 여유로움이든 의도적이고 억지스러운 여유로움이든간에 어찌됐든 서로 응원하고 긴장감을 풀어주는 무드는 좋은 거잖아?


나는 스몰톡에 작아지는 한국인이지만 그럼에도 양 옆의 어린 수험생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가벼운 대화를 조금씩 나누었다. 그 덕에 긴장감과 부담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수험기간이 길어지면서 경직보다 유연한 마인드를 갖추려고 노력한 것이 좋은 시험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가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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