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돈" 이야기
불편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돈" 이야기
미국변호사 시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예비 수험생들이 미국변호사 공부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이곳 저곳에 질문을 올린다. 미국변호사 시험 관련 카페나 블로그에 돈 관련 글이 유독 자주 올라오는 것은 그만큼 질문이 쏟아지기 때문일 터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돈이 얼마나 드는지부터 알아봤었다. 그러기에 오늘은 조금은 불편하지만 필수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미국변호사 준비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 아주 가벼운 시험을 준비한다 하더라도 교재 구입, 강의 수강, 스터디 공간 확보 등의 단계에서 돈이 계속 소비되는데, 하물며 물가 비싼 미국의 국가(state) 시험을 준비한다니 말해 뭐하겠는가.
응시 자격에 필요한 비용
미국변호사 시험은 본격적인 공부 시작 전, 응시 자격을 갖추는 단계에서부터 큰 돈이 줄줄 나간다. 예를 들어보자. Washington DC 주의 변호사 시험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법학 학사 수업을 83학점 이상 확보하여야 하는데, 학부에서 법학과 수업을 아주 넉넉히 들어두지 않은 이상 추가 학점 확보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사이버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 학점은행 기관 등에 입학해 모자란 법학 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이 때 해당 기관의 입학비와 등록금, 교재 비용 등이 발생한다.
본격적인 금전 부담은 다음 단계에서 시작된다. 시험 응시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법학사 83학점과 더불어 미국 로스쿨의 JD(법학박사)/LLM(법학석사) 또는 인가받은 비학위 프로그램 등을 통해 법학석사 26학점을 취득해야 한다. 미국 현지에서 로스쿨에 입학해 JD/LLM을 수강하려면 몇 천만원~수 억원의 학비와 체제비가 든다. 설사 미국까지 가지 않고 한국에서 미국 로스쿨 수업을 듣는다해도(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는 길은 있다!) 못지 않게 상당한 비용 부담이 따른다. 가령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에서 JD를 이수하려면 직장생활 병행이 불가하고 3년간 전업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학기 당(!) 900~1,000만원 수준의 등록비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카이스트 MIP-Northwestern University dual degree 프로그램을 이수할 경우 다행히도 직장생활과 병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학비는 카이스트 수업에 2년 간 대략 2천만원, LLM 수업에 2년 간 대략 50,000불이 든다. 게다가 1년에 한 번씩은 미국 시카고에 있는 본교에 가서 LLM 수업을 들어야 하니, 전체적으로 약 1억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비학위 프로그램 또한 학위 프로그램 정도는 아니더라도 학점 당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시험 응시 비용
위에 서술한 응시 자격 확보 비용과는 별개로, 변호사 시험 응시 절차 또한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시험 접수 비용은 Washington DC 기준 400불 내외. 여기에 평판조회 조사 비용 900불 정도도 추가로 결재해야 한다. 에세이 writing 과목을 치루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는데, 미국은 이 150불 가량의 설치 비용도 추가로 요구한다. 처음 시험을 볼 때 시험 위원회에 내는 비용만 1,500불, 그러니까 대략 200만원이 넘어가는 셈. 게다가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해당 주로 직접 가야 하는데, 수험생들은 이 때 드는 항공비(대부분 안전과 편의를 위해 대한항공/직항 노선을 선호한다)와 숙박비(대부분 시차 적응을 목적으로 시험일 포함 최소 1주일 이상 머문다), 체제비를 어림잡아 500만원 정도로 잡는다. 물론 한 번에 붙으면 500만원으로 끝나지만 나처럼 초시에 붙지 못한 사람들은 방문할 때마다 500만원 정도를 또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휴가를 쓰기 위해 회사에서 눈치를 보고 가족들,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은 덤. 아. 다시 생각해도 참 어려운 길이다.
공부 비용
이제 마지막으로 순수하게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만 생각해보자. 공부를 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기에 비용도 이렇다 할 표준이 없다. 분명한 것은 이러나 저러나 역시 돈이 계속 들어간다는 것이다. 미국 학생들이 많이 듣는 유료 강좌를 들어도(바브리 기준 수백~수천 불), 한국 유명 강의를 들어도(사설 아카데미 또는 개인 과외, 비용 천차만별)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맨 처음 입문 단계에서만 에어클래스라는 플랫폼에서 비교적 저렴한 기초 강의를 들었는데, 이것도 수강료가 당시 100만원 쯤 했다(참 강의 내용이 좋았는데.. 지금은 강의를 중단하셔서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네). 요즘에는 adaptibar, Uworld 등 온라인에서 객관식 문제를 셀프로 풀고 채점하는 유료 프로그램이 인기다. 이 프로그램들도 400~500불 정도 지불해야 이용 가능하며,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비용은 더 늘어난다. 게다가 문제집, 모의고사, 에세이 등을 구매할 경우 개당 비용이 100~200불은 가뿐히 넘는다.
이 쯤 되면 미국변호사 시험은 돈으로 사는 시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정말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많은 돈을 내고도 시험에 붙지 못한 사람들이 실제로는 아주 많다는 것이다. 온라인에는 미국 변호사 시험은 쉬운 편이다, 나도 붙었으니 야너두 할 수 있다, 나는 운 좋게 초시에 붙었고 주변이 다 그랬다, 라는 글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내가 만난 합격자들은 큰 한 방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가령 현재 한국 또는 다른 나라의 변호사이거나, 라이센스는 없더라도 충분한 법무 경험을 갖고 있거나, 특별하게 똑똑하고 시험에 강하거나, 아주 분명히 논리적이거나, 영어가 능통해 언어적 허들이 없거나 등등) 정말 죽을 만큼 애를 쓰고 "더는 못하겠다"며 마지막까지 몰아친 사람들이 합격했다. 심지어 저 한 방을 갖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합격이 절대 쉽지 않았다고 답했다. 오죽하면 하버드 JD 출신 중에서도 bar exam 탈락자가 생길까.
결국 이 시험은 돈 만으로도, 공부 만으로도 되기 힘들고, 결국 돈과 공부가 모두 최대한으로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승산이 있는 시험이라 하겠다.
돈, 배짱, 용기, 자신감, 그리고 절박함
내 친한 친구의 인상적인 수험 준비 스토리가 기억난다. 그녀는 국내 명문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는데 막상 금융공기업에 들어가보니 이 길이 죽어도 아닌 것 같아서 퇴사를 했다. 이후 서른살 즈음 행정고시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고, 부모님께 "3년 간 3천만원만 투자해달라. 3년 만에 합격하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하고 3천만원도 돌려드리겠다."라고 부탁을 드렸다. 부모님은 기약없는 수험생활이나 한도없는 카드값이 아닌, 딸의 제약 있는 야심찬 인생 계획에 3천만원을 기꺼이 투자하셨다. 어떻게 됐냐고? 친구는 행정고시 1차를 가뿐히 통과했지만 2차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공부하던 중 마음에 맞는 남자분을 만나 결혼을 했고 멋진 가정을 일궜다. 물론 부모님의 투자 비용은 열심히 번 돈으로 돌려드렸고. 지금 그녀는 언제 고시를 준비했냐는 듯 편안하고 안정적인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당시 나는 친구의 현명한 계획에 감탄했다. 만약 친구가 초반에 공부 자금을 받아두지 않았다면 친구는 공부하는 매 단계마다 부모님께 돈을 받아야 했을 것이고, 그 때마다 스트레스와 심리적 부담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과감하게 1회성으로 투자를 유치했고, 그로 인해 공부기간 동안은 비용의 부담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멋진 전략인가!
미국 변호사 시험에도 친구와 같은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 매 순간 매 단계마다 막대한 비용이 나가기 때문에, 아직 공부 여건이 녹록치 않다면 일단은 미국변호사 공부를 시작할 금전적/시간적 여건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여건이 마련된 후엔 비용에 얽매이지 않고 매 순간 공부에 도움이 되는 최적의 방향을 만들어가며 올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많은 비용을 써가면서, 멀리 타지에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혼자 멘탈을 붙들어매고, 유독 조명이 어두운 미국 호텔방에서 마지막 스퍼트로 공부를 한 뒤, 한참 어린 20대 중후반 미국 수험생들과 당락을 겨루는 체급과 깡다구를 키울 수 있다.
해외 변호사 시험을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해요?
호주 변호사 시험 공부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길을 묻는 회사 후배에게, 나는 "현실적으로 시간과 돈, 가족의 응원과 지원 여건이 마련된 이후에 수험 기간과 비용에 한도를 정해두고 시작해야 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 친구의 걱정처럼 적어도 매 단계마다 나가는 돈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 아직은 시험을 시작할 단계가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이 시험은 설령 억 단위의 돈이 든다 하더라도 도전해볼 깜냥과 배짱, 용기, 자신감, 절박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