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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Aug 05. 2021

11. 이식 후 열흘, 피말리는 '기다림의 시간'

열흘 간의 길고 긴 기다림


- 열흘 뒤에 피검사하러 오세요. 피검사 수치로 임신 결과를 알 수 있으니까요.

 배아 이식을 마치고 수납하러 가는 길. 간호사는 열흘 뒤 병원 내방 일정을 잡아주었다. 피검사 전에 개인적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해봐도 무방하나, 이는 피검사보다 정확도가 떨어지니 맹신할 필요는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식 후 임신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열흘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시험관으로 배아를 이식한 사람들은 이식 후 한 달 간 무조건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한다. 자연 임신한 사람들과 달리 몸상태를 인위적으로 바꿨기 때문에, 임신 시 자연적으로 나와야 할 호르몬도 나오지 않으며, 아주 적은 스트레스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회사의 배려로 휴가를 많이 쓰고 업무량을 줄였다. 그랬더니 가뜩이나 느린 시간이 더욱 더디게 흘렀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21세기이건만,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도구, 이를테면 마술 돋보기나 현미경같은 것들은 여전히 세상에 없다. 아. 누가 그런 마법의 도구 하나 안 만들어주나.



 병원에서 처방한대로 하루에 세 번씩 질정을 넣었다(개인적으로 이 과정이 가장 싫고 괴로웠다). 커피는 줄였고, 열에 약한 배아를 보호하기 위해 추운 날에도 뜨거운 열기를 피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일기를 쓰고 독서를 하며 더딘 시간을 자꾸만 흘려보냈다.





임신테스트기, 써볼까 말까


- 임신테스트기 한번 써볼까?

 인고의 시간을 보낸 지 7일째 되던 날. 신랑이 무심한듯 시크하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사람이 질문의 무게와 깊이를,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란는 사실을.

- 3일만 더 기다렸다가 병원에서 확인하는 게 어때? 임테기보다 병원 피검사가 더 정확하다며.

- 그게 좋을까?


 서로 질문만 한다. 답을 못 내린다. 행여나 좋지 않은 결과로 상대가 상처받을까봐. 내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원래 나는 임테기를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쩌면 길지 아닐지 모르는 상태에서 희망회로를 마구 돌리는 지금이, 희망회로조차 돌릴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보다 나을지 모르니까. 이런. 말을 빙빙 돌려했다. 솔직히 겁이 난다.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마음 한 켠에선 천사인지 악마인지 헷갈리는 존재가 ‘그래도 임테기 한번 써봐. 혹시 모르잖아?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라며 나를 끊임없이 유혹했다. 확률은 반반. 아주 어쩌면, 내게도 첫 번째 시험관 시술에서 성공하는 기적이 일어날 지 모른다. 어차피 언젠가는 한번 마주해야 할 결과다.



- 그래. 임테기 한 번 써보자. 결과가 100% 확실한 것도 아니라면서. 그냥 테스트나 해보는거지 뭐.



나는 못이기는 척 화장실로 향했다. 신랑이 건넨 임신테스트기를 달랑달랑 들고서. 내 뒷모습이 신랑에게 어떻게 보였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로 가는 걸음걸음마다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제발!! 아 제발!! 제발 두 줄 보고 싶다!!





얼리, 시약선, 매직아이. 당신도 임테기의 노예가 되겠습니까



단호박도 이런 단호박이 없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너무나 뚜렷한 한 줄이다. 두말의 여지가 없는 한 줄.



- 에잇. 내인생에서 뭐 일이 쉽게 풀리는 적 있나. 이럴 줄 알았다. 맥주나 잔뜩 마시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 아직 가능성이 있잖아. 얼리 테스트기는 일주일만에 결과가 나오는데 일반 테스트기는 잘 안보인대. 우리는 일반 테스트기라 아직 몰라.

 신랑도 애써 태연한 척 한다.



 실망을 감춘 채 대자로 뻗어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 신랑이 핸드폰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온다.



- 여기 임신준비 카페인 것 같은데, 사람들이 올린 글 봐봐. 처음에는 한줄이다가 매일 체크하면 두줄이 보이고 점점 진해지는 경우도 있어. 그리고 이렇게 매직아이로 보면 두 줄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는데.. 이것 봐. 우리 테스트기도 매직아이할때 눈으로 잘 보면 한 줄이 더 보여.



 진짜다. 내 테스트기를 매직아이로 보니 얼핏 아주 연한 분홍 줄이 하나 더 보이는 것도 같다.



 알고보니 신랑이 알려준 카페에는 엄청나게 많은 임신테스트기 결과 글이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임테기 사진을 올리며 ‘매직아이로 보면 두 줄 맞나요?’, ‘이거 점점 진해지는 것 맞나요?’ ‘두 줄 보이실까요?’ 를 물었다. 그 뿐이랴. 어떤 사람은 임테기 제품 별 성능과 오차를 꿰뚫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시약선과 실제 임신줄을 귀신같이 구분했다.

 내가 맘편히 살던 시간에도 누군가는 수시로 임신을 테스트하며 타인에게 임신을 인정받고자 했다니. 마음이 아렸다.



 임신테스트기는 기상 후 아침 첫 소변으로 검사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신랑의 위로와 카페의 반전 성공 후기글을 읽으며 일말의 기대를 갖게 된 나는 다음날 오전 첫 소변으로 임신을 테스트해봤다. 그리고 여전히 매직아이로도 잘 보이지 않는, 단호한 한 줄을 확인했다.



 이 날 임신테스트기 결과를 보자마자 내가 눈물을 뚝뚝 흘려버린 건, 지금 생각하면… 이미 본능적으로 임신 실패를 직감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긋지긋한 배주사의 과정을 한 번 더 겪어야 한다는 괴로움과, 배아를 떠나보냈다는 절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주 막연한 기대, 슬픔, 괴로움과 절망감. 모든 감정이 집약된 열흘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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