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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Aug 06. 2021

12.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 내일을 준비하는 법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



000님의 피검사 결과 수치는 3.1입니다.


 이식 후 열흘째 되던 날,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았다. 그 다음 날 오전, 엄마와 티를 마시고 있을 때 병원에서 보낸 피검사 결과 수치를 문자로 통보받았다. 3.1. 착상의 기준이라는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 나는 괜찮아 엄마. 어제 울만큼 울어서 눈물도 안난다. 라고 태연하게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 또다시 눈물을 삼켰다.


 이식 후 10일 경 시행하는 첫 피검사는 통상 결과 수치가 10 이상일 경우 임신이 된 것으로, 수치가 5 이상일 경우 착상이 된 것으로 본다. 수치가 너무 낮으면 착상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시험관 차수를 공식 종료한다. 만약 수치가 착상이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범위에 있으면 3-4일마다 한번씩 2차, 3차 피검사를 시행하며 수치가 2배 이상 오르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2차 피검사조차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낮은 수치를 받아버렸다.


안녕하세요, 000병원입니다. 000님 되시죠? 

아, 네…

피검사 결과 수치가 3.1 나왔어요. 0점대가 아니기 때문에 착상이 됐다가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경우 시험관은 종료되고, 수치가 0점대까지 안전하게 떨어진 것을 확인하면 의사선생님과 상의하셔서 2차 시험관 일정을 잡으시면 돼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아이쿠야. 내가 다니는 병원은 전화로 친히 확인사살까지 해준다.


이렇게 나의 파란만장한 첫 시험관 시술은 처참한 성적으로 끝나버렸다.


나는 실패에 익숙한 사람이다. 부정적인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잘한다. 그런데 이번 실패는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멘탈이 바스스 무너진다. 

차라리 임테기를 쓸지말지 고민하던 그 때가 좋았다.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을 수 있던 그 때가.





다음을 준비하는 법



선생님, 대체 왜 착상도 임신도 안 된 걸까요? 제 몸에 크게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다음번 진료 때 나는 교수님을 만나자마자 온갖 질문을 해댔다.


글쎄요. 수치가 3.1이면 배아가 자궁에 착상됐다가 떨어진 것으로 보여요. 000씨는 아직 젊고 나이가 어린 편이니 계속 시험관을 해봅시다.

제가 젊은 편인가요? 제 나이때는 보통 몇 번 째에 임신이 될까요?

그럼요. 40대 분들도 아주 많으신걸요. 000씨 나이면 보통 1-2회차때 많이 되시죠. 사람마다 다르지만요.

그렇군요.. 다음 차수는 언제쯤 시작하면 될까요? 

이렇게 시험관 한 번 끝났으니, 다음 차수는 좀 쉬었다 하는 게 좋아요. 몸도 회복을 해야 하거든요. 두 달정도 쉬면 좋겠어요. 다음 다음번 생리 후 3일 째 병원 방문하셔서 2차 시술 시작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다음 차수가 오기 전에 두달 정도 시간이 있으니 그냥 쉬기 보다는 뭐라도 하고싶은데요, 혹시 어떤 걸 하는 게 좋을까요?

자궁경을 한 번 해볼까 해요. 자궁경은 간단한 수술인데, 한 번 해서 유착된 부분도 떼고 하면 임신 확률도 높아지거든요. 도움이 될 거예요.


대화를 복기하고 있는 지금, 융단폭격 수준의 질문에도 친히 대답해준 교수님이 고마워진다. 나를 어르고 달랜 교수님 덕분에 나는 스무스하게 2차 시험관을 시도하게 됐다. 그리고 쉬는 두 달 동안 '자궁경'이라는 수술도 하게 됐다. 사실 자궁경이 뭔지는 잘 모른다. 허나 임신에 도움이 된다니 일단 시도는 한번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사실 병원에선 흔히 있는 일이고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돼요. 아직 어리잖아요. 괜찮아요.

그럴까요? 끝이 안 보여요 선생님.

조급해하지 말아요. 몸과 마음을 편히 해보세요. 일단 오늘은 피검사 한번 더 하고 갑시다. 피검사가 0점대로 잘 떨어져야 다음 시험관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나는 한 번 더 피를 뽑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은 마치 수능이 끝난 수험생들처럼 신랑과 함께 맥주도 마시고 맘껏 놀았지만, 허한 마음이 채워지는 데에는 아주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다음을 준비하는 방법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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