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world Feb 02. 2022

15. 나 이직해도 될까?

가능성을 위한 선택 VS 나 자신을 위한 모험

나 이직해도 될까?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부른 배를 두드리는 신랑에게 나는 불쑥 얘기를 꺼냈다. 포지션 제안이 두 개 들어왔는데 둘 다 솔깃하더라. 하나는 업계가 마음에 들고 하나는 직무가 마음에 들어. 근데 나 이직해도 되려나? 신랑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자기가 원하면 당연히 이직해도 되지! 왜, 마음에 걸리는 포인트라도 있어?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내 커리어에 대한 결정인데도 신랑에게 허락을 구하듯 조심스럽게 말했을까? 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처럼 소심한 눈빛을 했을까? 이유는 하나. 이직은, 난임치료를 하고 있는 내게 어딘가 부담스럽고 죄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 해 전, 업계 탑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았었다. 나는 현재 회사에 대한 만족도와는 별개로 면접은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평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포지션에 지원했다. 그러나 1차 면접을 보기 직전에 스스로 면접을 포기해버렸다. 곧 시작할 시험관 시술에 이직이 방해거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 1년의 시간동안 회사의 배려로 나는 돈 걱정 없이 시험관 시술에 매진했다. 이차, 삼차, 그리고 사차. 이 쯤에서 조금 솔직해져보자면, 거듭되는 시술 실패보다도 훨씬 더 괴로운 게 바로 회사에서 배려랍시고 나에게 일을 덜 주는 것이었다.



나는 충분히 병원을 다니면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

나는 머리쓰는 일을 좋아하고 내 보고서를 완결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나는 야근을 해서라도 내 일을 끝내고 싶다.

나보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우리 팀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스트레스 받으면 애 안 생겨요. 일은 내가 하면 되니까 좀 쉬어요.’라는 팀장님의 말이 무척 듣기 싫다.

나한테는 일이 없는 게 스트레스라고.



 결국 시험관 시술은 연달아 실패했다. 그리고 이직도 업무 성과도 내지 못한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신랑은 난임치료를 하든말든 회사를 잘만 다닌다. 필요하면 이직도 하겠지. 그런데 나는 매번 입원과 수술를 위한 휴가를 밥먹듯 써야 하고, 일은 줄어들며, 언제 생길지 모르는 아기의 육아기간을 고려해 커리어플랜을 수정해야 한다. 이직도 승진도 더 어렵다.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 멀뚱히 서있는 신랑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기도 했다. 아. 신체적으로 아이를 출산해야 하는 여성은 나의 커리어를 내 맘대로 개발하는 것도 이렇게나 어렵다.



그냥, 이직할 용기가 안나네. 지금 이직하면 3개월은 회사에 집중해야 할텐데 그러면 우리 시험관 수술을 어떻게 해. 시험관 시작하면 병원도 주구장창 다녀야 하고 휴가도 내야 하는데 새 회사에서 그게 가능하겠어? 그리고..


신랑이 웃는다.


에고. 또 걱정부터 한다.


현실이 그렇잖아. 이직이랑 임신준비 둘 중 하나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둘 다 하는 건 욕심이지.


우리가 지난 1년 간 엄청 열심히, 후회없이 시험관 시술에 집중했잖아. 그런데도 아기가 안 생겼지.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안된다고 우리 늘 말했잖아. 역으로 보면 맘편히 갖고 이것저것 하고싶은 것 다 할 때 아기가 생길 수 있다는 거야.

나는 자기가 아기계획때문에 커리어를 성장시킬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이직도 하고 공부도 하는거지! 그러면서 틈틈이 아기를 위해 노력도 하고. 만약 아기계획때문에 이번에도 이직을 포기한다면, 1년 뒤 아기가 생기든 안 생기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어?

커리어랑 아기계획을 연계해서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았으면 해. 자기 인생이 우선이야!



아. 이게 맞다.

아이계획을 핑계로 현실에 안주한다면, 나는 아기가 생기면 생기는대로, 안 생기면 안 생기는대로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아이도 자기 때문에 일을 포기하는 부모보단 자기 덕분에 성장하고 행복해하는 부모를 원하지 않을까?






 2021년 11월. 나는 이직을 했다.


 커리어 확장을 위해 한 번쯤은 거치고 싶던 업계와 경험하고 싶던 직무를 모두 얻었다. 애정을 듬뿍 갖고있는 좋은 회사에서 더 좋은 회사로 왔다. 아직 입사한 지 두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헤매고 다니지만, 새로운 업무환경과 신선한 적응기간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이 설렘이 좋다.



 두어달 동안 시험관 시술을 쉬고 있다. 스스로 정한 업무 적응 기간이 끝나면 회사와 집에 보다 가까운 난임병원을 다닐 생각이다. 고민 끝에 과감히 이직을 결정했는데 신기하게도 여긴 오히려 난임치료를 병행하기 더 좋은 환경이다. 재택에 여러 복지 혜택까지 있으니까. 역시. 세상사 미리 겁부터 낼 필요는 없었다.



 일 년 후 더 성장해있을 나와 이를 기뻐할 가족들을 위해, 나는 후회없는 선택을 했다. 나 자신을 위한 선택. 

매거진의 이전글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