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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May 19. 2023

18. 우리의 이야기가 희망이 되기를


0점짜리 피검사 결과를 받아들고 검사실을 나오던 그 날, 1차 피검사 수치부터 100이 넘었다며 들떠있던 한 부부를 우리는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정말이래? 진짜 다음주에는 심장소리 들린대? 정말 우리 아가 맞대?“

초음파 사진을 손에 쥐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한 남자가 미워보였다.



유모차를 밀며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여자,

병원을 마구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와 그 아이의 손을 꼭 잡도 있는 여자도 야속하게만 보였다.



나는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왜 저들은 제 기쁨을 숨기지 않는지.

나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 하루에 일곱 바늘의 주사를 맞고 피가 멎지 않아 고생하는데, 왜 이미 예쁜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이 여기에 와있는지.

왜 세상이 나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는지.

세상은 흑빛이고 병원 안은 캄캄했다.

나는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래서,

나 또한 마냥 맘편히 웃고 기뻐할 수 없었다.




“저기 아기집 보이죠? 한 명이네요. 축하합니다.“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음 주에는 난황이 보일거고, 아기 심장소리는 그 다음 주에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보통 아기 심장이 가장 먼저생기거든요. 오늘은 산모수첩이랑 임신확인서 드릴게요. 일주일 후에 만나요.“


28로 시작한 피검사 수치는 단박에 200을 뛰어넘었다. 임신테스터 속 두 줄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선명해졌다.

여섯 번의 시험관을 거치면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렸던 임신 판정. 초음파 속 작은 점처럼 보이는 0.71cm의 아기집.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실들이 믿기지 않았다.

임신한 사람만 들어간다는 비밀의 방에 들어가 산모수첩을 받아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기쁨보다 놀라움 두려움에 가까웠다.



한 주 뒤 진료 땐 초음파에서 반지처럼 생긴 난황과 작고 반짝이는 점을 봤다.


“밝게 반짝이는 게 아기 심장이에요. 지금은 90bpm정도로 뛰네요. 다음 주에는 더 빠르게 뛸 거예요.”


마음을 추스르면서 보낸 한 주의 시간 덕일까, 유달리 반짝이는 심장을 마주해서일까. 이 날은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 내 안에 또다른 생명이 생긴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그렁그렁 났다.

하지만 초음파 사진을 들고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 나는 주변의 어두운 눈빛을 마주해야 했다.




난임병원을 다니면서 수많은 일을 보고 겪었다.


바로 앞 환자가 마취약 부작용으로 실려가기도 했고,

외국인 환자들이 통역사를 붙여 어렵게 진료받기도 했다.

눈이 퉁퉁 불은 채로 진료실을 나가는 부부를 보는 것은 예삿일.

나 또한 시술 후 지혈이 되지 않아 화장실 바닥에 피를 철철 흘렸고, 몇 통의 피를 한 번에 뽑은 뒤 어지러워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누가 이들의 눈빛을 비난할 수 있을까.

기쁜 일에 축하해주지 못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욕할 수 있을까.


그 날 병원에서 마주친 어두운 분위기는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난임병원을 졸업하는 날, 우리는 여러 사람의 간절한 소원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병원 입구의 소원나무를 지나 병원을 나왔다. 기쁘면서도 무거운 마음이었다.


나는 기도했다.

임신 기간동안 아기가 뱃속에서 건강히 자라기를.

그래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희망이 되기를.

그리고 나무에 달린 저 간절한 소원들이 모두 이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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