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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Jun 12. 2023

112만 5천원 받고 삽니다.

부부 육아휴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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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만 5천원을 받으며 살고 있다. 아니,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 중이니 정확히는 225만원을 받으며 사는 중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돈. 하지만 우리 둘의 월급에 비하면, 평소 소비패턴과 나가는 비용과 나가야 할 비용을 고려하면 결코 충분하다 할 수 없는 돈.



각기 다른 우리 부부의 육아휴직급여 지급일에 112만 5천원이 입금되면 한 달이 지났음을 실감한다. 갓 태어난 생명체에게 마음껏 사랑을 부어주고 세 식구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보자며 맘먹고 결정한 부부 육아휴직. 가족의 추억이 쌓이기 전에 통장부터 울 거다, 싸울 일이 비일비재할 거다, 둘이 휴직을 나눠쓰면 될걸 뭐하러 같이 쓰냐, 커리어 끝나고 싶냐 등등 주위에서 말도 참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민 없이 육아휴직을 결정했고 벌써 수 개월째 225만원을 받으며 살고 있다.



줄어든 돈, 아쉽다. 둘의 육아휴직급여, 부모급여와 아동수당을 합쳐 300만원 쯤 되는 수입으로 과거의 소비패턴을 지속하는 어려우니까. 아무래도 카드를 긁을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딱히 정리하지 않았던 가계 상태를 자주 점검해보게 된다.



그런데 수입을 포기하고 얻은 셋이 함께하는 시간은 비할 수 없이 귀하다. 수면 패턴이 잡힌 아가가 알람시계마냥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울어대면, 남편은 눈을 반은 감은 채 기저귀를 갈아주고, 나는 황급히 일어나 분유를 타는 일상. 남편이 수유 자세를 잡은 후 아기의 입에 젖병을 물리면 나는 두터운 베개를 남편 등 뒤에 받쳐주는 일상. 아기가 다시 잠들면 각자 할 일을 하다가 함께 점심을 준비하고, 식사 중에 아기가 깨면 남편이 아기를 바운서에 태운 후 발로 살랑살랑 흔들어주며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하는 일상. 혼자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장면 장면의 시퀀스.



과거로 돌아가 같은 질문을 받는대도 자신있게 답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손꼽을만큼 잘한 선택이라고. 112만 5천원이 찍힌 통장의 아쉬움은 아기가 보여주는 한 번의 웃음으로 한 큐에 사라진다. 몇 달 예약해야 하는 파인다이닝에서 몇십만원짜리 식사를 하던 때보다, 월급을 받고 명품관에서 플렉스하던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  내 인생에서 온전한 행복이 채워진 느낌인데, 적어진 수입이 대수인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가족들과 함께하는 매일.

우리는 지금,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넉넉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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