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vs 분유, 논쟁의 종지부
젖. 지읒 두 개가 위아래로 연결된 저 낯선 단어를 내생애 이렇게 많이 들을 줄은 몰랐다. 나에게 출산 전 젖은 암소의 우유통에 불과했으나, 출산 후엔 아기를 낳고나서 한 달 간 가장 많이 듣는 단어이자 슬픔, 갈등, 분열 등 온갖 감정을 터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맨 처음 젖 얘길 들은 건 병원에서였다. 퇴원일에 병실로 찾아온 간호사가 모유수유 교육을 한다며 나에게 젖을 짜보라고 했다. 뭘.. 짜요? 내가 당황하자, 간호사는 이제 아기를 출산한 지 3-4일이 되었으니 손으로 젖을 짜도 잘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 나오긴 나오더라. 나오긴 나왔는데.. 이번엔 양이 문제였다. 아무리 젖을 짜도 양이 늘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젖 양이 젖병 바닥만 깔릴 땐 왠지 모를 미안함과 죄책감에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우습다. 한때 애기 낳자마자 단유할거라고 떵떵거리던 사람이, 젖이 안나온다며 엉엉 우는 아이러니라니.
“아기 젖 먹여야지, 벌써 분유 먹이니?”
“젖 잘 안나와서 어떡하나. 모유촉진제 좀 먹어볼래요?“
어머님과 조리원 원장님의 단순한 물음도 내 가슴엔 비수로 꽂혔다. 한바탕 오열한 뒤 간신히 젖을 짜 신생아실로 젖병을 가져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콩알맘의 60ml 젖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보다 일주일이나 늦게 입소한 사람이 네 배나 많은 젖을 짠단 말인가.
조리원에서 나온 뒤에도 젖 얘길 참 많이 들었다. 대부분 터무니없는 곳에서,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40일 된 아기를 안고 동네를 산책할 때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가 “아이고 아가 참 예쁘네. 분유 먹이지 말고 젖 먹여.”라고 하실 땐 기가 막혀 헛웃음까지 나왔다. 아니 할머니, 저는 몰라도 제 젖은 알고 싶으신거예요?
분유 탄생 이래 계속돼 온 젖과 분유의 팽팽한 대결. 답을 찾지 못하던 나는 엄마의 조언을 듣고 마침내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저런 말들 신경쓰지마. 내 또래 어른들은 대부분 모유 먹이라고 해. 심지어 내 친구들도, 너 아기 낳았다니까 무조건 모유 먹이라고 시키라더라. 내가 딸이 원하는대로 하도록 두겠다고 했더니, 뭐 엄마가 그리 무책임하냐고 나한테 뭐라 그래. 신경 쓸 필요 없어. 모든 건 네가 결정하는거야. 요즘 분유도 얼마나 잘 나오는데. 너 공부도 해야 하잖아. 고생하지 말고, 힘들면 단유해. 하고싶은대로 해.”
그래. 엄마는 내 편이었다.
단유날 맥주파티만 기다리는 신랑도, 젖에 절대 집착하지 말라는 언니도 내 편. 내 찐 편.
이제 나만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단유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단유했냐고?
했다. 아주 우연하고 허무한 계기로 했다.
생소한 인체의 변화에 놀랐다가, 좀처럼 늘지 않는 젖 양에 오열했다가, 젖 먹이라는 주변의 오지랖에 분노했다가, 엄마 말을 듣고 단유를 결심했다가,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루에 한 번씩 콩알만큼 유축을 젖을 짜던 어느날, 아기에게 젖을 물렸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 그간의 고민과 휘몰아치는 감정이 무색할만큼 칼같이 단유했다.
그 날 단유 축하겸 친정 식구들과 마신 맥주는 다시 생각해도 참 맛있었다.
아, 아기는 분유를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누구보다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후후.